재정 지원 바탕으로 자율적 운영

학력 신장·교육 격차 해소

자율형 공립고 아쉬움 보완되나

 

  최근 고교체제 개편 과정에서 ‘협약학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월 “2024년부터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기업과 교육청 등이 협약을 맺는 공립고를 시범 운영할 것”이라 밝혔다. 2월에는 교육부가 “일반 공립고등학교 교육의 역량 강화를 위해 미국의 협약학교인 차터스쿨(Charter school)과 영국 아카데미 등 외국 모델을 참고해 학교 운영방식을 혁신하겠다”고 전했다. 공립학교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에 협약형 공립고가 늘어날 전망이다.

 

  차터스쿨의 이상과 현실

  미국 차터스쿨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과 교육의 지역 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고안된 대안학교다. 1991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설립안이 법으로 채택된 이후 꾸준히 입지를 다졌다. 지난해 12월 기준 미국 전역에 있는 차터스쿨은 7821개로, 370만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차터스쿨의 핵심은 자율성 보장이다. 운영 주체는 설립자와 분리되며, 사립학교처럼 교육내용과 방법을 비롯한 운영 전반을 자유롭게 꾸릴 수 있다. 대부분의 미국 차터스쿨은 다른 학교와 달리 정부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고, 학교의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학생들에게 별도의 교육비를 받지 않고 정부의 자금을 바탕으로 운영이 된다는 점에선 공립학교와 유사하다. 정부 외에 기업이나 비영리 단체가 협약을 맺고 후원금을 낼 수 있으며 일부는 운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학부모 단체와 교사, 기업 등이 각 지역 교육청과 계약을 맺어 학교 설립을 할 때도 있다.

  자율적인 운영에 따른 책임도 명확하다. 학업성취도 향상이 중요한 만큼 학생들의 성적이 부진한 학교에는 지원이 중단된다.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차터스쿨은 학교가 학생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학교의 교육력을 향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원이 중단돼 쉽게 폐교될 수 있다는 특성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차터스쿨은 교육의 지역 격차 해소 기여를 위해 설립됐다는 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지역 거주민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모집 인원을 넘게 되면 추첨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단점도 존재한다. 등록금 부담이 없지만, 정부 자금이나 후원금만으로 운영돼 운영자금이 부족한 상황에 닥칠 때도 있다. 몇몇 차터스쿨은 상가의 한 층을 빌려서 사용하는 등 부족한 기반시설과 폭 좁은 교육 커리큘럼으로 인해 비판 받는다.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교사를 고용하기 위해 교사 당 학생 수를 늘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교사를 임용하기도 한다. 정부 지원을 받지만 사립학교처럼 운영되기 때문에 자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단점도 생긴다. 자율성이 도리어 해가 되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육 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오히려 차터스쿨이 위치한 지역이 어딘지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지방정부학회 <지방정부연구> 제24권 제1호에 수록된 ‘차터스쿨 도입이 공교육의 형평성에 미치는 영향: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정부를 중심으로’(이승주, 박소영. 2020.05)에 따르면,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일수록 성적은 하향분포를 보였다.

  현재 미국에서는 차터스쿨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교육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부작용은 없을지 충분히 고려한 뒤에 시범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자율형 공립고, 취지 좋았으나 아쉬움 남아

  국내에 미국 차터스쿨과 유사한 학교로는 자율형 공립고등학교(자공고)가 있다. 일반 공립학교와 자율형 사립학교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재정의 경우 일반 공립고와 동일하며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자유로운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은 사립학교를 닮았다. 현재 국내에는 73개의 자공고가 운영되고 있다. 부산, 대구 등의 광역시부터 경남, 충북과 같은 도 단위의 지역까지 비교적 넓게 분포한다.

  국내 자공고는 기존의 획일화된 공립학교를 개혁하겠다는 취지로 2010년 처음 설립됐다. 일반 공립고보다 학습환경이 잘 조성되며 다양한 활동을 접할 수 있다는 게 차별점이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자공고인 원묵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나연(16·여) 씨는 “강연회를 자주 개최하고, 정기적으로 교사·학생이 함께하는 독서 활동도 있다”고 말했다.

  자공고 지정 초기에는 눈에 띄는 학업성취도 향상이 나타났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진행한 학교 향상도 평가에서 자공고는 평균 0.42%의 향상도를 기록하며 자사고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역 간 교육격차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성열 교수는 “지역 격차는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며 “학교 자체 요인을 개선해 교육력을 높이는 자공고는 교육의 지역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은 초창기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열악한 학교들을 자공고로 지정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자공고는 미국 차터스쿨에 비해 온전한 독립성을 확보하진 못했다. 현재 자공고의 지정·운영은 초·중등교육법에 의해 규정된다. 기본적인 지정 기간은 5년이며, 규정에 따라 교육부가 선정한 학교 중 일부를 교육감이 자공고로 지정한다. 연장 여부 역시 평가를 바탕으로 교육감에 의해 결정된다.

  몇몇 제도적 혜택을 제하면 자공고도 일반 공립고와 다를 바 없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재학 중 자공고로 전환된 창원중앙고등학교 졸업생 허승준(27·남) 씨는 “막 설립됐을 땐 기대가 컸는데 자율형 공립고의 특성을 뚜렷하게 체감하진 못했다”고 전했다. 서울의 일부 자공고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서울의 자공고 18곳이 자발적인 일반고 전환을 결정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2013년 이후 일반고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 정책이 추진되며 일반 공립고와 자공고의 차별성이 미미해졌다”며 전환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은 2019년부터 3년간 9개의 자공고 지정을 취소하고 올해도 2개의 학교를 일반 공립고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임태희 교육감 취임 후 고교 다양화를 강조하며 자공고를 임의로 폐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내 자율형 공립학교 특징
국내 자율형 공립학교 특징

 

  정부의 새로운 협약학교 예고

  계속해서 자공고들이 운영을 종료하는 상황에서 교육부는 또 다른 형태의 차터스쿨인 ‘협약학교’를 계획하고 있다. 혁신도시에 협약형 공립고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기업과 연계해 민간에 자율성을 부여하면 지역 명문고가 생겨날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지난 1월 대통령실 업무보고에서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기업과 교육청이 함께 운영하는 공립고를 추진하겠다”며 협약형 공립고를 재차 언급했다. 공기업과 공공기관 등이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형태로 자금을 대는 방식이 주요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으로 부산시교육청은 지역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산업은행,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자율형 공립고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학교에 대해 여러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핵심인 ‘자율성’은 보장·확대할 방침이다. 기존의 자율형 공립고와 미국의 차터스쿨처럼 학생 선발과 교사 채용, 교과과정 전반에 자유를 부여했을 때 나타날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자율권은 확대되는 동시에 그것을 향유하려는 구성원의 의지가 강해져야 한다”고 짚었다. 자유로운 운영이 가능한 상황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미국 차터스쿨처럼 학업 역량에 대한 책임을 교사 중심으로 바라본다면 대립이 발생할 수 있다. 교원의 끊임없는 역량 강화는 필요하지만, 교사의 권리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창원 진해고등학교 교사 A씨는 “대학 입시에 초점이 맞춰진 사회에서 수업에 대한 과한 부담과 학업성취도에 대한 결과가 교사의 몫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새로운 형태의 학교와 체제를 만들 때 기존에 존재하는 교육정책과 충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존 자공고의 경우 교육과정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4에 따라 자율 운영이 가능했으나, 2025년 3월부터는 그조차 사라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도입한다면 관련 법령이 제·개정돼야 한다. 학교 신설을 억제하는 분위기도 새로운 고교 설립에 제동을 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학교 설립 자체보다는 기존의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강인성(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책을 상품처럼 내기보다는 교육 이념을 분명히 설정하고 그에 맞는 교육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원묵고등학교를 졸업한 정구서(18·남) 씨는 “사립과 공립 사이에서 애매한 지위를 갖지 않도록 확실하게 정책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약학교 모델을 활용한 고교 개혁의 구체적 청사진은 아직이다. 교육부는 “미국 차터스쿨 뿐만 아니라 여러 외국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며 “여러 교육 전문가와의 논의하고 있어 아직 확답을 주긴 어렵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상반기 중 최종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글|김영은 기자 kimoo@

인포그래픽|김성민 기자 meenyminym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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