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대학 부설 연구소

동아시아 넘어 아세안, 중동까지

오는 8월 탄생 100주년 행사 예고

 

 

  본교 아세아문제연구원(원장=이진한 교수, 아연)은 한국 최초의 대학 부설 연구소로 1957년 설립 후 아시아 지역의 종합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설립 시에는 공산권 국가 연구에 집중했다면, 현재는 동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까지 폭 넓게 연구하고 있다. 아연 설립은 김준엽 전 총장의 주요 업적 중 하나다. 본교를 대표하는 종합 연구소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아연은 김 전 총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 김준엽 전 총장과 아연의 관계는

  “‘아연이 곧 김준엽 선생님’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만큼 선생님을 빼고는 아연의 역사를 설명할 수 없어요. 김준엽 선생님께선 1957년 아연 설립에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미국 포드재단으로부터 연구 지원비를 받아오지 않으셨더라면 아연을 세울 수 없었을 겁니다. 중앙도서관이나 법대 건물이 생기기도 전의 일이죠. 당시 대학들이 학생 육성에만 힘썼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1대 소장은 이상은 선생님이셨고, 1969년부터 김준엽 선생님께서 2대 소장으로 역임하셨습니다. 설립 당시에 김준엽 선생님 나이가 마흔도 되지 않으셔서 소장직을 맡진 않았지만, 실질적 소장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상은 선생님께선 한국철학을 전공하셨으니 당시 아연의 주요 역사 연구들은 김준엽 선생님께서 주도하셨다고 봐야죠. 이후에도 여러 해외 재단으로부터 연구 지원비를 받는 데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당시에 중국의 공산화가 진행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했음에도 아시아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공산권 국가와 구한국(舊韓國) 연구에 앞장선 곳이 아연입니다. 김준엽 선생님께선 외국 재단의 지원을 받아 북한 자료와 구한국 외교문서를 정리해 활자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셨습니다. 1958년에는 국내 대학 연구소에서 발행한 최초의 학술지 <아세아연구>를 창간했습니다. 다양한 세계 석학들을 모아 여러 학술행사를 진행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본교 출신뿐만 아니라 서울대, 연세대 출신 박사들이 아연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생님 덕에 아연은 당시 한국을 뛰어넘어 동아시아 최고의 연구기관이었습니다.”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설립된 1957년 당시의 모습. 중앙도서관이 건립되기 전이라 황량한 벌판에 아연 건물만 우뚝 서 있다. 왼쪽부터 김준엽 전 총장, 초대 소장 이상은 교수, 부소장 조기준 교수.

 

  - 현재 아연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연구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규모도 커졌고요. 예전엔 공산권 국가들과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뤘습니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우리나라와 교류하는 국가가 늘어나며 아시아의 다양한 지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졌습니다. 아연 산하에는 중국연구센터, 일본연구센터, 아세안센터 등 11개의 연구센터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동·이슬람센터가 설립됐어요. 앞으로는 아세안이나 중동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전에 비해 연구가 소홀하다고 느껴져 아세안과 중동 지역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연구 역시 이뤄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준엽 전 총장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가 진행된다는데

  “김준엽 선생님이 태어나신 해는 1920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도 2020년에 김준엽 선생님 탄신 100주년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기획이 무산됐습니다. 이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 김준엽 선생님께서 실제 태어나신 해는 1923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본육군전시명부>에 있는 1923년 8월 26일이 정확한 생일이신 거죠. 선생님께서 어린 나이에 교수 생활을 하시다 보니 호적상의 나이를 늘린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꽤 많았습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8월 25일부터 31일까지를 ‘김준엽 주간’으로 지정하고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학부생, 대학원생, 교우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기획 중입니다. 학부생을 대상으로는 김준엽 선생님의 저서 <장정>을 주제로 한 동영상 경연대회와 인문학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대학원생을 대상으로는 ‘1980년대 대학의 역할과 김준엽’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준비 중입니다. 교우회와 협력해 26일에는 교우들이 김준엽 선생님을 기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김준엽 주간 동안 본교 박물관에선 특별 전시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올해 초 유족분들께서 김준엽 선생님의 유품을 기증해주셨습니다. 기증해주신 유품과 아연이 보관하고 있는 여러 자료를 모아 전시를 열 계획입니다.

  많이 바쁘시더라도 학생들이 꼭 한 번 시간을 내 김준엽 선생님 기념행사에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관련 전시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죠. 아연에도 편히 들려 구경하셨으면 합니다. 추후 아연 건물에 김준엽 선생님 전시실을 꾸밀 예정입니다. 고민이 있을 때면 언제든 찾아와 여러분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 원장님께서 기억하는 김준엽 전 총장은

  “참 바른 분이셨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입학하던 해 신입생 환영회에 총장님이 오셔서 인사하셨던 게 첫 기억이네요. 아무래도 총장님께서 사퇴하시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군사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학생들을 보호하시려던 모습에 많은 학생이 총장 퇴진 반대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직접 수업을 듣지는 못했지만 총장님께서 퇴임하신 후에도 사학과 제자로서 명절 등에 종종 찾아가 인사드리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옛날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광복군 활동, 사모님을 만나게 된 사연, 총장 시절… 비슷한 얘기였지만 항상 재밌게 말씀해주셨죠.

  미래에 대한 비전도 대단하셨습니다. 김준엽 선생님의 다른 큰 업적이 중어중문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창설하신 일입니다. 당시만 해도 냉전 시대에 공산권 국가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어요. 선생님의 혜안이 정확하게 들어맞아 중어중문학과나 노어노문학과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던 때에 중국, 소련과 수교를 맺게 되며 본교 졸업생들이 큰 활약을 했죠.”

 

  - 우리가 김준엽 전 총장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스승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본받을 만한 사람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젊은 세대들이 김준엽 선생님을 마음속의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선 항상 편한 길을 두고도 옳은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젊은 시절엔 광복군으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셨습니다. 수많은 정치권의 제안에도 학자와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셨죠.

  고려대를 강하게 만든 것은 선후배와 사제 간의 끈끈한 사랑입니다. 훌륭한 스승인 김준엽 선생님에 대해 많은 학생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 조형준 기자 jun@

사진 | 문원준 사진부장 mondlicht@

사진제공 | 아세아문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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