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화돼 유명무실한 예비군법

놓친 강의 필기 돈 주고 구해

총학·병무행정팀에 제보 가능

 

예비군 출석 인정 이외에도 학습자료 제공 등 다양한 학습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역으로 들어가는 군인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예비군 출석 인정 이외에도 학습자료 제공 등 다양한 학습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역으로 들어가는 군인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지난달 27일 한국외대에서 한 학생이 예비군 훈련에 참여해 수업 참여 점수가 깎였다. 지난해 서강대, 성균관대 등에서도 예비군 학습권 침해 사건이 일어났다. 고려대도 지난해 예비군 훈련으로 불이익을 받아 국방부에 민원을 접수한 사례가 있었다. 예비군 학습권 침해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실제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출석 인정 외에도 학습자료, 녹화 강의 제공 등 학습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되풀이되는 예비군 학습권 침해

  대한민국 군인은 전역 후 민간인 신분이 되지만, 병역의무는 계속된다. 전역 후 8년 차까지 예비군에 편성된다. 평소에는 민간인이지만 예비군 동원령이 발동되면 군인으로 소집된다. 4년 차까지 예비군 훈련은 동원훈련과 동원 미참가자 훈련(동미참훈련)으로 나뉘며 매년 참석해야 한다. 동원훈련은 23일간 군부대에 입영하며 동미참훈련은 하루 8시간씩 4일 출근한다. 초과학기자가 아닌 대학생 및 대학원생은 학생예비군 제도를 이용해 학교가 지정한 훈련장에서 하루 8시간 기본 훈련을 받아 대체할 수 있다. 고려대 학생예비군(연대장=김상수)1년 중 한 학기를 선택해 하루 동안 경기도 고양시에서 훈련을 이수한다.

  학기 중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 그날 강의에 갈 수 없지만, 출석은 인정된다. 예비군법 제10조의 2(예비군 동원 또는 훈련 관련학업 보장)는 '등학교 이상의 학교의 장은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거나 훈련을 받는 학생에 대하여 그 기간을 결석으로 처리하거나 그 동원이나 훈련을 이유로 불리하게 처우하지 못한다' 규정한다

  하지만 출석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7월 부산대의 한 강의 공지사항에는 예비군 훈련 등으로 결석하시는학생들은 시험을 잘 봐 보충하시면 됩니다라는 내용이 올라왔다. 논란이 일자 예비군 훈련을 출석으로 인정하겠다는 새 공지가 올라오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지난해 11월 서강대에서는 사전 공지 없이 퀴즈 시험이 진행돼 예비군 훈련 참석 학생들이 응시하지 못했다. 해당 수업 교수는 퀴즈는 미리 공지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해당 학생들에게 0점을 부여했다. 논란이 커지자 서강대 측은 재시험을 결정했으며 해당 교수도 사과문을 발표했다. 같은 달 성균관대의 한 교수도 출석 점수를 감점하며 조국과 가족을 지키는 일이니 헌신하고 인내로서 받아들이시라고 말했다.

  올해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의 한 학생은 외국어센터 강의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예비군 훈련으로 출결을 인정받지 못해 1등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학생 항의에 담당 교수는 내부 규정상 유고 결석은 인정되지 않으며 예비군법보다 센터 규정이 우선한다고 답했다. 여론이 나빠지자 학교 측은 정정 조치에 나서 해당 학생은 1등 장학금을 받았다. 같은 달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에서 예비군 훈련 이수를 이유로 수업 참여도 감점 사례가 나와 논란이 반복됐다.

  고려대도 예비군 차별을 피해 가지 못했다지난해 예비군 훈련으로 퀴즈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한 학생이 0점 처리를 받아 국방부에 민원을 넣어 정정 조치가 이뤄졌다. 2017년 이후 국방부에 접수된 첫 불이익 조치 사례다

  고려대는 결석 학생이 출석 인정 요청서를 제출하면 교원 재량으로 출석을 인정해주는 출석 인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예비군 훈련, 병역 시험 응시 등 병역 관련 사유도 고려대 포털 사이트(KUPID)수업’ 항목에서 '수업활동-출석인정 신청페이지로 들어가 관련 증빙 서류를 제출하면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예비군 훈련 관련 출석 인정 여부는 국가법령으로 정해져 반드시 출석으로 인정해야 한다.

 

  출석 인정만으로는 학습권 보장 못 해

  예비군 훈련을 받는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면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예비군법 15(벌칙) 8항은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거나 훈련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불리한 처우를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처벌이 이뤄지는 일은 거의 없다. 지난달 작성된 국방부의 ‘2017년 이후 대학들의 예비군법 제10조의 2 위반사례 접수 건수와 조치 현황에 따르면 예비군 학습권에 불이익을 준 이유로 형사 제재가 이뤄진 적은 없었다. 국방부에 접수된 고려대 1건도 점수 정정에 그쳤으며 처벌로 이어지진 않았다. 김상수 고려대 예비군연대 연대장 겸 병무행정팀장은 국방부에서 연락을 받아 해당 단과대에 사실 관계를 확인 후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점수 산정 방식을 조정했다병무행정팀도 자발적으로 조치할 수 없는 사안은 고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행 예비군법은 불리하게 처우하지 못한다고만 명시해 학습권 침해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 예비군 훈련 대상자의 수업 결석 처리는 가장 좁은 의미의 학습권 침해로 인식됐다. 사범대 18학번인 A씨는 예비군 훈련을 이유로 결석 처리되거나 보충 시험을 못 보게 하는 등의 명백한 불이익 조치는 목격한 적 없지만, 학습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곤 느끼지 않는다강의를 녹화해 올려주는 교수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놓친 시점에서 진행한 강의 내용이 시험에 출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 A씨는 다른 학생에게 녹음이나 필기를 부탁해야 했다. 그는 녹음을 부탁해도 PPT와 같이 진행되는 수업이라 부정확한 내용을 보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든 자료를 추가로 찾아야 했다고 전했다. 김민성(사범대 영교19) 씨는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가 없다면 학습에 불편을 겪는다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수업 대신 훈련을 가는 것이라면 학습권은 학생이 아닌 학교 차원에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과대 20학번인 조모 씨가 수강하던 강의도 예비군 훈련 참석자가 절반 이상이면 휴강이었지만 참석자가 적으면 그대로 진행됐다. 조 씨는 예비군 훈련이 중간고사 직전이어서 해당 강의 내용은 시험에 나올 확률이 높다관련 부분을 혼자 공부해야 했으며 교수가 어느 부분을 강조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놓친 강의를 따라잡기 위해 온라인에서 해당 날짜 필기나 녹음본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예비군 훈련 때문에 수업을 듣지 못해 녹음본이나 수업 필기를 사고 싶다라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녹음본과 필기는 커피 기프티콘이나 현금으로 거래된다

 

교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예비군들이 놓친 강의를 따라잡기 위해 필기와 녹음본을 구하는 글이 있다.
교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예비군들이 놓친 강의를 따라잡기 위해 필기와 녹음본을 구하는 글이 있다.

 

  53대 서울총학생회(회장=박성근, 서울총학) 새솔은 예비군 학습권 보장과 관련해 출석 인정, 녹화 강의 및 PPT, 수업자료 제공 등 공약을 이행하려 학교 측과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 이승민 서울총학 권리복지국장은 의사와 무관하게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도 학습권 침해인데, 수업자료를 받지 못해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돼 공약을 준비했다강의자료 제공 관련 규정이 없어 교수님들께 자료 제공을 강제할 순 없지만 줌(ZOOM)으로 녹화만 하면 되고, 교수님들은 조교를 대동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 부담이 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김태일(정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은 몰랐으나 예비군 훈련자들을 위해 녹화 강의를 올려줬다면서도 "강의 녹화 등을 의무화하기보다는 교수 재량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공과대 B 교수는 과반수가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면 휴강이나 보강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총학은 학교 측과 협의해 학생처장 명의로 모든 예비군 동원 학생의 출석을 인정할 것을 교수에게 전송했으며예비군법의 내용을 상기시키고 자발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이승민 권리복지국장은 학교 측과 추가적인 협의를 통해 학습자료 제공을 사실상 강제할 만큼의 정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 논의 중이라 전했다.

  정부에서도 학생예비군 학습권 보장에 나섰다. 교육부는 지난 14일 전국 대학에 예비군 학습권 보장 관련 내규 마련을 강조한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예비군 훈련 참여로 인한 출석·성적처리 등에서 불리한 처우 방지와 학습자료 제공 등 학습권 보장을 위한 학내 규정에서의 근거 마련 등이 포함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식 개선'

  학생들은 예비군 학습권 보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식이라며 입을 모았다. 공과대 20학번인 조모 씨는 학교나 교수들은 군필 학생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출석 인정 등을 배려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문과대 19학번인 이모 씨는 예비군에 대한 관심이 많이 부족해 다소 허탈하다예비군 동원이 의무인 것은 맞지만 공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민 권리복지국장은 학습권 침해의 주요 원인은 예비군 학생들에 대해 출석 인정만 하면 법적 의무는 모두 충당했으니 그만이라는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군인에 대한 부족한 사회적 인식과 예우가 학내까지 전파됐기에 단순히 법적으로 교수들을 강제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관련 부처의 미온한 대처도 지적됐다. 사범대 18학번인 A씨는 국방부는 예비군을 못 가는 사람을 잘못 고발해놓고도 사과 없이 취하만 한다그에 반해 학습권 불이익 사례는 수면 위로 불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님에도 본격적으로 국방부가 시정 조치를 한 것은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예비군 학습권 침해로 인해 최근 처벌받은 대학은 없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예비군 훈련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2022년에 훈련 불참으로 벌금형 처분을 받은 사람이 928명에 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된 바 있다이외에도 예비군 불참자에 대한 국방부의 고발 건수는 20199214, 2020117, 202138, 20223074건에 달했다. 예비군 훈련 불참에 대해서는 수백에서 수천 건 형사 고발이 이뤄졌지만, 참여로 인한 불이익에 대한 법적 보호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려대 병무행정팀은 공문을 발송해 예비군 학습권 보장 관련 내용을 학사팀과 단과대에 계속해서 알려왔다. 캠퍼스 내 게시판에 부착되는 예비군 공지 대자보에도 학습권 보장을 강조하는 문구가 포함된다. 김상수 병무행정팀장은 학습권 침해가 일어나는 이유는 의도적이라기보다 예비군 학습권 보장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해 몰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지적됐다. 고려대 예비군연대 손병기 참모는 “2020, 2021년은 예비군 훈련이 진행되지 않아 이때 들어온 교수들은 법률적인 내용을 몰랐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비군 훈련으로 불이익을 당했을 경우에는 고려대 병무행정팀이나 국방부 민원실에 제보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김상수 병무행정팀장은 후속 조치보다는 사전 예방을 통해 어떤 이유에서의 불이익도 방지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며 휴일 예비군 훈련과 전국 단위 예비군 훈련 등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글 | 박지후 기자 fuji@

사진 | 김태윤 사진부장 orgnmind@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