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연구창작 병행

동시대성으로 관객과 소통

“한국 극작가 노벨문학상 기대”

 

홍창수 교수는 “동시대성은 관객의 공감을 얻어야 이뤄진다”고 말했다.
홍창수 교수는 “동시대성은 관객의 공감을 얻어야 이뤄진다”고 말했다.

 

  “나도 공모전에 도전한다. 학생들도 와서 작품을 내라.” 홍창수(문스대 미디어문예창작전공) 교수가 전공 수업 때마다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홍 교수는 창작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희곡을 창작하고 연구하며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과 소통을 이어갔다. 20여 편의 순수 창작 및 번안과 각색을 맡고 <한국 근대희극의 역사>, <한국근대 희극전집>, <윤조병의 전집: 희곡>을 출간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한 그는 1월 한국극작가협회 대한민국 극작가상을 수상했다. 홍 교수는 “창작은 고통의 연속이자 즐거움”이라며 “창작 정신을 지닌 한국 극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희곡에 눈뜬 대학 시절

  홍창수 교수는 유년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고등학생 때 문예반에 들어갔어요.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집필한 정희성 시인과 소설 <대학별곡>을 쓴 김신 작가도 우리 동아리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문예반에서 창작의 즐거움을 알기 시작했다. “시를 쓰고 문학을 읽으며 문학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특히 창작에 매력을 느꼈어요.” 문학 창작에 대한 애정은 대학에 와서도 계속 됐다.

  사실 홍 교수는 대학 진학 전까지 희곡을 잘 알지 못했다. “대학 초반엔 주로 전문 시집들을 읽었어요. 그런데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하고 보니 드라마가 영미문학의 주를 이루더라고요.” 여석기(문과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의 ‘현대 영미 희곡’ 과목을 비롯한 전공 수업은 홍 교수의 희곡 공부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로 현대 영미를 대표하는 명작 단막극을 읽었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희곡 분야에 개안했죠. 희곡뿐만 아니라 희곡 작가의 존재도 인지하게 됐습니다.”

  그는 학부 4학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결혼했지만, 문학도의 꿈을 위해 취업 대신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시와 희곡 중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희곡을 택했어요. 창작 욕심도 있었고, 국문학을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학부 전공인 영문과가 아닌 국문과를 선택했습니다.” 대학원 진학 후 국내 문학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졌다. 고려대 출신 문학가들의 덕도 많이 봤다. “오탁번, 김인환, 김명인 같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많은 선후배가 시인이나 비평가, 연구자로 맹활약하셨어요. 덕분에 현대문학의 르네상스처럼 좋은 풍토에서 공부하고 창작할 수 있었습니다.”

 

  창작과 연구로 지새운 희곡 인생

  대학원 졸업 후에도 희곡에 대한 열정은 지속됐다. “희곡을 포함한 드라마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가 갈등한다는 전제 아래 쓰이는 문학 갈래이자 공연 대본입니다. 제게 창작은 갈등을 전제하는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희곡은 사회 문제에 대한 제 의식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죠.”

  홍 교수는 희곡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창작에도 몰두했다. 여러 작품을 집필했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무대에 온전하게 실현하긴 어려웠다. “제 데뷔작인 <오봉산 불지르다>의 초연은 현재와 다른 연출가와 극단에 의해 공연됐습니다. 판소리 실험극으로 올리고 싶었지만, 당시에 소리꾼들이 한두 달 연습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 판소리 배우를 구하기 힘들었어요.” 그의 첫 작품은 판소리가 아닌 민요조로 진행됐다. 홍 교수가 완강한 고집이 아닌 유연한 사고를 택한 덕이었다.

  홍 교수는 작품을 공연으로 원활하게 올리기 위해 2009년 극단 ‘창’을 설립했다. 창립 공연은 <오늘 나는 개를 낳았다>였다. “극단을 운영하면서 예산 지원을 직접 신청하고 원하는 작품을 올릴 수 있었어요.” 홍 교수는 극단 운영 과정에서 신작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극단은 신작을 보유해야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종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 작품, 극단, 스태프에 대한 평가를 받아 다른 극단과 경쟁해야 합니다.”

  쉴 틈 없이 달리던 그는 체력의 한계로 극단 대표에서 물러났다. 대신 창작에 몰두했다.

 

  관객에게 질문하는 동시대성

  홍창수 교수는 시사극부터 역사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희곡을 창작하고 무대에 올렸다. 각기 다른 내용과 배경을 지닌 작품 모두 동시대성을 담으려 노력했다. “작품이 흥미 있겠단 생각으로는 동시대성을 확보하지 못합니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동시대성이 실현돼요.” 그는 동시대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대표작 <누란누란>을 꼽았다. 지방대와 인문학의 몰락에 대한 경고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홍창수 교수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의 근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학문 행위입니다. 대학이 과연 어떤 공간이냐는 물음을 던진 거죠. 인기 학과는 존립에 문제가 없겠지만 비인기 학과는 존폐 위기에 처할 만큼 대학도 학문도 생존을 위한 경쟁의 장에 서 있어요.”

  홍 교수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비판 의식이 사회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되길 원했다. “대학이 기업과 같다면 대학의 존재 이유는 없을 거예요. 대학 자체의 생존 문제가 아니라 거시적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 문제와 연결 지어 고민할 문제죠. 학문 탐구와 이윤 추구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문제의식으로 삼았어요.” 이런 현실을 반영한 <누란누란>은 인기에 힘입어 2021년도 초연 이후 올해 6월과 7월에도 공연됐다.

  홍 교수는 2002년에 공연된 역사극 <수릉>에서도 관객의 공감에 초점을 둬 동시대성을 형성하고자 했다. “시대극은 역사를 현재로 호출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동시대성 역시 관객의 공감을 얻어야 이뤄져요. 역사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죠.” <수릉>의 중심인물인 공민왕의 개혁 실패는 현대인에게 질문으로 돌아온다. “주체적 입장에서 강대국 사이의 균형 외교를 취해 국가 미래의 발전적 관점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풀어나가는 미래지향적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창조 정신과 희곡의 미래

  25여 년간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전공에서 제자를 양성한 홍창수 교수는 제자들에게 ‘창조 정신’을 강조한다. “작가는 먼저 자신의 문제부터 들여다봐야 해요. 새로운 것을 멀리서 찾지 말고 나, 내 집단, 사회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창조 정신의 일환으로 제자들에게 적극적인 창작 활동을 장려한다. “나도 공모전에 작품을 내니 너희들도 공모전에 작품을 내라고 말해요. 게다가 희곡 공모는 신인과 기성 작가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죠.” 홍 교수는 작품 평가에는 스승과 제자가 없음을 강조한다. “제자가 붙고 제가 떨어져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요. 후배나 제자들과 함께하는 경쟁은 제가 스승이라는, 빛깔 좋은 권위를 내려놓고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방법이죠.”

  홍 교수는 현재 새로운 작품 창작을 하고 있다. 연출배우 협업 같은 무대화 과정에서 본래 내용이 변하기도 하는 희곡은 공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희곡을 쓰는 행위는 시를 쓰는 행위와 사뭇 달라요. 많은 인물을 엮으며 사건을 만들고, 구성을 짜고, 주제를 고민하는 극작의 창조 과정은 길고 복잡하고 지난하지만, 관객들이 작품에 공감할 때 즐거움을 느껴요.”

  홍 교수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Jon Fosse)에 주목했다.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욘 포세뿐만 아니라 극작가로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외 작가들은 많습니다. 해럴드 핀터, 다리오 포, 월레 소잉카, 사무엘 베케트 등이 있죠. 서양에서 희곡과 연극은 문학과 공연예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요.” 홍 교수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양의 상황과 한국 사회를 함께 바라봤다. “요즘 K-드라마와 K-무비 열풍을 보면 조만간 한국의 극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과 믿음이 생깁니다.”

  한국 희곡의 발전을 위해 홍 교수는 극작가들이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해야 관객들이 극장을 많이 찾는다고 강조한다. “영화가 탄생하고 아날로그 연극은 뒷전으로 밀려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은 지가 오래됐습니다. 그러나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직접 대면해 인간의 삶을 전달한다는 특성 덕분에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좋은 희곡이 많고 계속 탄생하고 있으니 영상 매체만 찾지 말고 좋은 연극들을 많이 보면 좋겠습니다.”

 

극단 ‘창’의 창립공연 '오늘 나는 개를 낳았다'.
극단 ‘창’의 창립공연 '오늘 나는 개를 낳았다'.
지방대와 인문학의 몰락을 다룬 '누란누란'.
지방대와 인문학의 몰락을 다룬 '누란누란'.

 

글 | 현준선 기자 jsjs@

사진 | 김태윤 사진부장 orgnmind@

사진제공 | 홍창수 교수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