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심리학의 길로

문제에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조금은 저지르면서 살자”

 

허태균 교수는 청년들에게 “인생에서 진심으로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살라”고 말한다.
허태균 교수는 청년들에게 “인생에서 진심으로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 착각 속에 빠져 산다.” 허태균(심리학부) 교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착각에 집중해 사람 간의 관계를 분석한다. 그는 35년 동안 함께한 심리학을 통해 관계의 오류를 찾고, 이를 착각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최근에는 <유퀴즈 온 더 블록>, <어쩌다 어른> 등 다양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인들의 특징’을 강조하며 심리학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운과 고민 따른 심리학자의 길

  허태균 교수는 학창 시절 심리학에 큰 관심이 없었다. “대학 원서를 쓸 당시 심리학과에 올 마음이 없었어요. 다른 과를 쓰고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어요. 부모님께서 어차피 1지망에 붙을 테니 2지망으로 심리학과를 써보는 게 어떠냐고 하셨죠. 근데 운명의 장난인지 1지망에 떨어지고 2지망에 붙은 거예요.” 그는 입학 후 심리학의 매력에 빠졌다. “처음에는 1년만 다녀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너무 재밌었죠. 전공 공부를 하며 더욱 심리학에 흥미를 느꼈어요.” 그는 지금까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학부를 졸업한 허 교수는 심리학의 본거지인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허 교수는 유학 시절 사회심리학 중 ‘사회인지’와 ‘귀인’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사회인지는 사회적 맥락에서 인상 형성, 판단, 의사결정 등을 연구하는 분야예요. 그중에서도 사람의 행동 원인을 찾는 ‘귀인’을 주로 연구했어요. 귀인이란 어떤 사건이나 행동이 일어난 원인을 찾는 과정을 말해요. 그 원인을 찾는 과정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유학생 허태균은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했다. “심리학은 재밌었지만, 박사과정 전 고민이 많았어요.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온다는 생각도 있었고, 심리학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죠.” 고민이 끝나기도 전, 박사과정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던 그에게 또 다른 고민이 덮쳤다. “컨설팅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취직하면 교수 연봉의 4~5배를 벌 수 있다고 컨설팅 업계 선배가 말했죠. 들어보니 연말에 턱시도 입고 송년 파티도 한다더군요. 그렇게 살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지금의 길을 선택했어요. 컨설팅 회사에 가면 학자만큼 제가 좋아하는 심리학을 활용하진 못할 것 같아서였죠.”

  2002년부터 한국외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허 교수는 2005년 고려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교직에 있던 그는 학생들의 사고를 키우는 데 집중한다. “대학이 지식을 전달하는 곳인지 종종 고민합니다. 지식은 인터넷에 다 있으니까요. 대학은 지식보다는 학생들한테 고민하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봐요. 그게 제가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경험이죠.”

 

  행복에 무뎌진 한국인들

  허태균 교수는 유학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와 동양과 서양의 심리구조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한국의 현상을 발견했어요. 최근 얘기하고 있는 ‘한국인의 심리’도 이때 연구하기 시작했죠.”

  허 교수는 한국인의 심리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 중 하나로 자극을 꼽았다. “우리는 1달에 1번 맛집 가고 1년에 2번 여행 갔을 때나 SNS에 게시물을 올려요. 하지만 아는 사람이 100명이면 매일 그런 게시물을 확인하니 나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내 인생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죠. 현재 우리 사회는 너무 자극이 많은 시대입니다. 남의 자극까지 보면서 살 필요는 없어요. 자신의 시간을 충실하게 써야 해요.” 자극에 과하게 노출되면서 행복에 무뎌진 사회가 된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과거에는 공무원이 되거나 내 집을 마련하면 성공했다고 잔치도 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거로 잔치하면 비웃음당하죠. 웬만큼 가져도 가진 것 같다고 느끼기 힘들어요. 서로 기뻐해 주고 축하해 줄 일도 많이 줄었죠.”

  또 다른 영향으로는 취업 문제를 제시했다. 최근 청년들의 상황은 취업난을 넘어 취업 포기의 단계로 악화되고 있다. 허태균 교수는 그 원인으로 ‘모순적 사회구조’를 꼽았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어가지만, 대학 졸업장이 굳이 필요한 직장은 40%를 넘지 않는다고 해요. 대학을 나온 젊은이의 절반은 본전 찾을 일이 없다는 얘기죠.” 그는 기성세대들이 현 사회구조에 대한 개선을 회피하고 있다고 느낀다. “청년들이 배가 불렀다며 욕할 일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예요. 장기적 계획이 아닌 단기적으로 하는 처방들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심리적으로도 학습된 무기력이 나타나기도 하고 우울증, 불안도 늘어나겠죠.”

  무기력에 빠진 청년들에게 그는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확실성(Risk)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취하는 거예요. 피해야 하는 것은 위험(Danger)이죠. 불확실성이 커진 세상에 확보된 건 하나도 없어요. 인생의 모든 걸 계산하고 살 수는 없는 거예요. 저는 심리학을 공부할지도 몰랐고, 공부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뭘 먹고 사냐고 걱정했어요.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조금은 저지르면서 살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착각이 필요한 관계

  허태균 교수는 주변 인간관계를 ‘착각’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보통 좋은 척, 화난 척하며 살아요. 상대방을 볼 때 진실을 본 것처럼 착각하지만 대체로 진실은 본 적이 없는 거죠.” 착각이 가진 통념도 지적했다. “인간은 원래 착각으로 먹고사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다 될 것 같다는 착각, 대학에 들어와서 좋은 학점으로 졸업하면 잘될 것이라는 착각이요. 나쁜 게 아니에요. 착각이 없다면 시작이 안 되거든요.” 하지만 그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그런 착각을 보기 어렵다고 전한다. “지금은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서 잘될 거라는 착각, 괜찮을 거라는 착각을 보기가 힘들어요. 과감하게 내딛지 못하죠.”

  이어 사람들이 성공에 대한 ‘인고의 착각’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버티면 성공이 올 것이라 기대해요. 예를 들면 교육을 더 받으면 가능성이 더 열린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교육이 필요한 직장에 대한 기회가 열리는 건 맞지만, 교육 없이도 갈 수 있는 직장들이 더 많아요. 교육을 받을수록 길이 좁아지는 거예요. 사실 인내하고만 있다면 보상이나 성공과는 먼 헛된 노력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허 교수는 ‘같아질 수 있다는 착각’이 세대 갈등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너무 빨리 발전해 세대 간 차이가 심할 수밖에 없어요.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를, 자식 세대도 부모 세대를 이해 못 하는 거죠. 우리 사회에 세대 갈등이 있는 이유는 어설프게 같을 수 있다고 착각해서 그래요.” 허 교수는 조부모와 손주의 관계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주를 다른 세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나의 작은 공통점만 발견해도 기뻐하죠. 손주가 파김치를 좋아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얘가 나를 닮아 파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해요. 반면에 부모님들은 본인들이 파김치를 싫어하면 ‘너는 누굴 닮아 파김치를 좋아하냐’고 물어봐요. 부모들은 자식은 나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하나의 차이점만 발견해도 갈등이 생기는 거죠.” 허 교수는 같아지려는 노력을 버려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한마음이 되기를 원해요. 둘은 전혀 공존할 수 없어요. 갈등을 없애는 방법은 한마음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다름을 인정하고 그냥 두는 거죠.”

 

글|도한세 기자 dodo@

사진|염가은 기자 7rr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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