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보장된 노조 정치활동

‘탈이념·탈정치’ 제3노조 등장

“노조, 공동체 위해 더 노력해야"

 

지난 5월, 민주노총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 시위를 진행했다.
지난 5월, 민주노총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 시위를 진행했다.

 

  노동조합(노조)은 노동자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단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양대 노총’이라 불리며 국내 대표 노동단체로 자리 잡았다. 각 총연맹 산하에는 여러 노조가 속해 있다. 양대 노총은 노동자 권익을 위해 힘썼으나 과도한 정치적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강성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올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회찬재단이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동 조사에서 응답자의 51.4%가 ‘노동조합이 노조 간부나 일부 노동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답했다.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응답은 11%에 그쳤다.

  양대 노총의 과도한 정치성을 비판하는 흐름에 따라 제3지대에 새로운 노조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출범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새로고침)’가 대표적이다.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등이 포함됐다. 양대 노총에서의 탈퇴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 대산지회, 한국전력기술, 포스코지회 등에 이어 쿠팡 노조는 “상급단체인 공항항만운송본부는 정치적 활동에 더 집중하고 있다”며 지난 6일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노조 정치활동을 보는 시선들

  새로고침, 쿠팡 노조 등은 기성 노조의 문제점으로 과도한 정치활동을 지적했다. 노조가 노동자의 근로 환경, 처우 개선 등 노동조합원(노조원) 권익 향상보다 정치적·이념적 행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탈원전을 지지하는 민주노총 방침이 문제가 되면서 원전 전문 회사 한국전력기술 노조는 지난 5월 “원전 설계 기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을 떠날 수밖에 없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도 “특정 집단을 위한 하부조직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며 6월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포스코 자주노조를 출범했다. 안동시 공무원 노조도 전국공무원노조 단위에서 진행한 이석기 해방 운동,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안 총투표를 정치적 중립을 위해 거부하며 지난 8월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했다. 허소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선국장은 “민주노총의 이념 자체보다 노총 활동과 노동 권익의 연관성을 노조원들이 와닿을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조직 내에서 논의하면 될 사안인데 관련 논의가 다소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노조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양각색이다. 경영대 21학번인 조모 씨는 “중앙광장에서 본교 미화 노동자 집회를 본 적이 있다”며 “노조는 회사 내 위계질서 아래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노동제공자의 의견을 대변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수현(중앙대 경영23) 씨는 “노동자도 권리를 찾아 일하며 적절한 대우를 받는 게 중요한 사회이므로 노조는 꼭 필요하다”며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길거리 시위가 불편하진 않다”고 밝혔다. 21살 대학생 안모 씨는 “귀족노조를 위해 기업이 쓸데없는 지출을 한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며 “노조 자체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극단적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노동자 권익 향상 위해 정치 필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는 노동조합을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 단체”로 정의한다. 같은 조항에서 ‘주로 정치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하면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고도 규정했다. 과거 노동조합법 12조는 공직선거에서의 특정 정당 지지,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행동 등 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1960년대 군부 치하에서 노동법이 개정되며 노조 정치활동이 제한된 것이 시초였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에야 해당 법이 위헌이라 결정했다. 헌재는 “노동단체가 단지…‘근로 조건의 향상’이라는 본연의 과제만을 수행해야 하고 그 외의 모든 정치적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에 바탕을 둔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은…헌법상 보장된 정치적 자유의 의미 및 그 행사 가능성을 공동화시키는 것”이라며 정치 의사 형성과정에서 노동조합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봤다.

  이종선(노동대학원) 교수는 “전국 단위의 노조 중앙 단위가 정책 안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건 자연스럽다”며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해선 제도적인 개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정치 채널이 필요한 것”이라 설명했다. 정병기(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시장과 정치는 분리하기 어려운데, 노동과 정치 역시 마찬가지”라며 “단순히 종업원이 아닌 시민으로서 노동자가 공동체 이익을 위해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한·미연합훈련 반대 등 노동과 관련 없는 정치활동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사범대 19학번인 최모 씨는 “노조가 같은 입장인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이해가 되나 간혹 사회적 약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헷갈리는 메시지도 있었다”고 전했다. 박현미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한반도 전쟁위험 고조로 국방예산이 증가하면 꼬박꼬박 원천징수를 당하는 노동자가 재정부담을 많이 지게 된다”며 “전쟁이 일어나면 산업현장의 노동자 다수가 전쟁터로가게 되니 남북관계 개선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국가의 행위를 반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조가 관련 활동 이유나 배경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확보하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정치활동의 필요성은 양대 노총 강령에도 반영됐다. 한국노총 강령은 “우리는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을 결합하여 노동자의 경제, 사회, 정치적 지위를 개선”하고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민족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명시했다. 민주노총 강령 역시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밝혔다.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로”

  최근 양대 노총과 달리 ‘탈정치·탈이념’을 추구하는 제3노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지난 2월 발대식에서 “조직된 사업장 내 불합리함을 타파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의 권익 향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노동조합의 주된 역할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유준환 새로고침 의장 겸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위원장은 “사무직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는 등 여러가지 맥락에서 탄생한 노조인데 보수 언론에서는 우리를 양대 노총 비판에 주로 활용한다”며 “정치적 메세지를 내지 않는 다른 노선의 노동 조합으로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새로고침에 소속된 올바른노조는 지난 9일 공사 내 안전 인력 감축 반대를 이유로 민주노총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참여한 서울 지하철 파업에 불참하며 독자 노선을 걸었다. 송시영 올바른노조위원장은 “사측과 양대 노총 간 협의에는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며 “이 파업은 명백한 정치 파업”이라 주장했다. 이태호 올바른노조 대외협력국장은 “노동자 임금과 처우 향상은 뒷전이고 밖에서 주한미군 철수, 한미연합훈련반대, 이석기 석방 시위만 벌이면 소속 직원들은 뭐라고 생각하겠나”고 지적했다.

 

  제3노조 정치적 이용 우려도

  제3지대 노동조합이 정치적 공학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중기(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민주노총을 잡기 위해 국민노동조합총연맹(국민노총)을 만드는 등의 시도가 계속 있었다”며 “MZ 노조의 등장과 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 배경에는 정치적 공학이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노총은 2011년 탈이념 노선을 주장하며 출범했다. 그러나 2018년 국가정보원과 고용노동부가 민주노총을 와해하기 위해 ‘건전 노총 설립 프로젝트’로 국민노총 조직을 주도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박현미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40·50대, 제조업, 생산직, 남성 중심의 기존 노조가 젊은 세대 및 다양한 산업·업종의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면서도 “정부의 각종 정책협의기구 등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양대 노총 참여를 제한·배제하고 MZ 노조지원이나 정책기구 참여 등을 독려, 포섭하려는 것은 노조 간 갈라치기를 위한 것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준환 새로고침 의장은 “올해 초 주로 보수 언론, 경제지 등에서 인터뷰가 오고 양대 노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며 정치 공학이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며 “우리가 그들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69시간제나 *노란봉투법에 대해 정부 입장에서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고침은 지난 3월 정부의 ‘주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노동자의 근로조건 최저기준을 상향해 왔던 국제사회의 계속된 노력과 역사적 발전 과정에 역행, 퇴행하는 요소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노란봉투법 역시 지난 7월 “국제노동기구 협약 및 주요 선진국입법례 등 국제사회 노동 기준에 부합한다”며 찬성했다.

  언론에서 자주 쓰는 ‘MZ 노조’라는 용어 자체도 당사자들은 반기지 않는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조직임에도 2030세대만 받아준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 위한 노력 이어져야”

  노중기 교수는 노동조합 인식 부족의 원인으로 언론의 편향성과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를 꼽았다. “프랑스·영국 언론에 비해 한국 언론은 노조 파업의 이유보다 시민의 불편, 경제적 피해에 집중한다”며 “강성 귀족노조 같은 인식엔 언론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강성 귀족노조는 이미 충분히 좋은 처우를 누리면서 지나친 요구를 하는 노조를 부르는 멸칭이다.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으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이중시장구조를 심화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노 교수는 “사회에서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지난 25년간 싸워온 사회단체는 노조밖에 없다”며 “1999년 민주노총이 합법화됐을 때 비정규직 노조원은 조합원의 5%도 안 됐지만, 현재 30%로 30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박현미 연구조정실장은 “양대 노총은 미조직, 취약계층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 투쟁은 물론 노동자 전체의 노동 조건을 저하하는 악법 저지 투쟁 등을 통해 사회발전에 앞장섰다”며 “이런 법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들은 기득권층으로 비난받는 조직노동자만이 아닌 미조직, 중소 영세 등 취약 노동계층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자녀 우선 채용 역시 노조에 대한 주된 비판 중 하나다. 노중기 교수는 “현대차·기아차 노조의 자녀 우선 채용 제도는 노동 탄압의 보상 차원에서 이뤄졌다”며 “근 10년 간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지만 문제 제기가 계속된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는 지난 4월 “노조를 비난하고 싶다면 관련 단체협약으로 장기근속·정년퇴직자 자녀를 채용했다는 유의미한 통계나 사례를 제시하라”며 “사라진 것과 다름없는 관련 조항을 단체협약으로 둔 노동조합 수는 비난의 논거가 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동조합 역시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이종선 교수는 “노총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노조 차원에서 전략, 정책을 가지고 산업별 교섭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위 노조 위원장의 영향력이 강한 기업별 교섭에서 산업별 교섭으로 전환해 대기업노조 외의 다른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병기 교수도 “노조는 이익단체적인 활동으로 비치는 것에서 탈피하기 위해 사회 봉사 활동, 지역 활동 등을 통해 공동체의 정의를 위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미 실장은 “노조가 이기주의 집단, 귀족노조라는 비판은 노조 약화를 노리는 보수 언론 등이 만들어낸 성과물이기도 하다”면서도 “그 주장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노조는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노동자를 조직하며 이들의 실질적인 이해와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체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 개정으로 사용자 범위의 확대, 노동쟁의 범위의 확대, 불법쟁의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엄격한 증명책임 부과를 골자로 한다.

 

글 | 박지후 기자 fuji@

사진 | 고대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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