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난해 세계기부지수 88위

코로나19 등 경제적 요인 영향

“문화적으로 기부 정착시켜야”

 

  연말이 되면 곳곳에서 나눔과 기부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한국 기부문화는 지난 10년간 정체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월 발표한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GDP 대비 민간기부 비중은 2011년 0.79%에서 2021년 0.75%로 소폭 하락했다. 같은 기간 참여율은 36.4%에서 21.6%로, 기부 의향은 45.8%에서 37.2%로 하락하면서 전체적인 기부문화 역시 위축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조사한 한국의 세계기부지수는 조사 대상 119개국 중 88위였으며 2021년엔 110위로 사실상 꼴찌를 기록했다. 기부문화 침체 원인으로는 △경제적 여유 부족 △문화적 배경 결여 △기부단체의 낮은 투명성이 제시된다.

 

  기부하기엔 경제적 여유 없어

  국내 기부문화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경제적 여유 부족이 거론된다. 통계청 ‘기부 여부 및 기부하지 않은 이유(2023)’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기부하지 않은 이유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답변이 46.5%로 가장 많았고, ‘기부에 관심이 없다’는 응답이 35.2%로 뒤를 이었다.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빙코리아 2022’ 보고서는 2008년, 2014년, 2017년, 2020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2008년과 2014년엔 각각 경제위기, 개인 기부금 세제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같은 경제적 영향이 있었다. 2017년엔 대통령 탄핵 후 정부 관련 재단 스캔들과 새 정부의 기업기부 정책 영향, 2020년엔 코로나19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엔 코로나19가 기부에 타격을 줬다. 보건복지부 ‘사회보장 대국민 인식조사(2020)’에서 코로나19 이후 생활 수준 변화에 대해 1.8%가 ‘매우 나빠졌다’, 32.1%가 ‘나빠졌다’고 답했다. 가정의 소득에 비해 지출은 덜 줄어 체감 경제 수준이 낮아진 것이다. 이민영(고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기부 중단 원인이 됐다”며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개인은 기부 중단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고 전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민간기부 활성화 방안으로 △기부금 세제지원 확대 △공익법인 규제 개선 △생활 속 기부문화 확산을 꼽았다. 보고서는 “2014년 공제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된 후 개인 기부금 규모가 하락했다”며 주요국과 유사한 소득공제로의 재전환, 세액공제율 인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세액공제는 세율을 곱해서 나온 세액에서 일정한 금액을 줄이는 방식이기에 세율을 곱하기 전 소득 금액을 줄이는 소득공제에 비해 고소득자에게 불리하다. 미국, 영국, 일본은 기부금 전액에 대한 소득공제 방식의 세제지원을 하고 있다. 법인 기부금에 대한 비과세 한도 역시 원인 중 하나다. 박철(글로벌대 융합경영학부) 교수는 “세제 지원을 탈세나 기부금 관련 부정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감시할 사회적 비용이 많이 소요돼 지원 혜택을 줄인 것”이라면서도 “조세 저항이 있는 개인, 기업 등이 세금으로 나갈 부분을 기부금으로 지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 전했다.

 

  문화적 요인도 크게 작용

  기부는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으로 이뤄지진 않는다. 공동체 인식을 포함한 문화적 부분도 큰 역할을 한다. 기독교 등의 영향으로 서구는 이웃에게 은혜를 베푸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반면 한국은 남에게 베푸는 문화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세제규제 이외에 “선진국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기부를 실천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며 교육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철 교수는 “한국의 기존 공동체 문화는 ‘끼리끼리’의 성격이 있다”며 “모르는 사람을 도와줘야 기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유교의 입신양명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의 사회적 관습에서도 기부선진국과 차이가 난다. 박 교수는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의 내복을 사주는 문화가 있는데, 서양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생 기부할 모금 단체를 찾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민영 교수는 “미국은 문화적으로 시민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훈련이 잘 돼 있어 시민이 기부를 통해 자발적으로 문제 해결에 관여하는 문화가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기부단체 투명성 높여야

  기부단체의 투명성과 신뢰도 역시 기부문화 확립에 중요하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서 기부하지 않은 이유의 3번째로 많은 응답(10.9%)이 ‘기부단체 등 불신’이었다. 더나은미래와 굿네이버스가 국내 성인남녀 104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기부단체 선택 기준 중 ‘투명성과 신뢰도’가 68.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민영 교수는 “기부단체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도는 기부 참여, 기부액 증액, 정기적 기부 결정에 있어 중요한 변수”라며 “비영리 기부단체 역시 생존과 목표 달성을 위해 투명성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오용 재단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는 책 <내 기부금, 어떻게 쓰이는지 아시나요>에서 “기부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데, 신뢰의 기반은 투명성이고 투명성의 시작은 정확한 정보의 공개”라며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공익법인들이 관련 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준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는 공익법인들의 법 준수 여부를 제대로 감독하고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가이드스타는 비영리단체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사업 운영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비영리단체 평가지표를 개발하는 단체다. 우현희 한국가이드스타 연구원은 “불우이웃에게 가는 기부금은 10% 정도라는 댓글도 봤는데, 일부 비리나 횡령이 있는 단체에선 그럴 수 있으나 데이터로 보는 현실은 다르다”고 전했다. 불우이웃에게 장학금을 주고 식사를 제공하는 것만이 공익사업이 아니라, 이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정책 연구, 대중 인식 개선을 위한 외부 홍보 캠페인 등이 모두 공익사업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기부금품법은 모집 기부금에 따라 운영비 사용 한도를 15%로 정하고 있다. 지난해 국세청 공시 공익법인 결산서류 기준, 기부금 수익 상위 20개 법인의 공익법인 분석 결과 공익법인 사업수행비는 95%로, 일반관리비와 모금비로 사용되는 비중은 5% 전후다. 우현희 연구원은 “일반관리비와 모금비 같은 간접비는 공익사업의 지속가능성과 효과적인 성공을 위해 반드시 발생하는 비용”이라며 “간접비 없이 무급 자원봉사자로만 조직을 운영한다면 공익사업의 지속성이나 사업을 책임지는 자가 불분명해지고, 효과적으로 사업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공익법인들이 이런 필요성을 대중들에게 계속 홍보하고 운영비의 사용 내역을 자세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모금을 유도하기 위해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위 ‘빈곤 포르노’ 홍보 방식에 많은 이들이 피로를 호소하기도 한다. 자극적으로라도 홍보해야 하는 모금 단체의 현실도 있지만, 인종 차별과 인권침해라는 지적 역시 많다. 박철 교수는 “썩은 물을 마시는 그림을 위한 연출은 인권침해, 아동 학대”며 “비참한 아프리카 어린이 모습을 계속 노출하는 등 부정적인 관념을 생산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당신도 기부할 수 있다

  돈이 많아야만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년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소소한 기부는 많다. 재능 기부가 대표적이다. JUMP는 기존 공급자 중심의 교육 봉사가 아닌 수요자 중심 교육 봉사 활동을 중시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청소년과 센터관계자가 원하는 대학생 봉사자를 직접 선발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의헌 JUMP 대표는 기부문화가 더 발전하기 위해선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의헌 대표는 “10년 넘게 비영리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나중에 큰돈 벌면 기부하겠다’는 사람 치고 실제로 기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가진 것이 부족해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고대생이 교육 봉사를 하겠다고 하면 누구나 반기고 환영할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이민영 교수는 “MZ세대는 개인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 아동 청소년, 동물, 환경 분야 등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직접 관여해 기부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며 “현금이나 현물 기부에 머무르지 않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기부와 봉사의 결합을 다양하고 참신한 방식으로 시도한다”고 전했다.

  구글 플레이 ‘2021년 올해의 베스트 앱’ 사회공헌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빅워크(Bigwalk)’는 걸음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빅워크 앱을 설치하면 이용자의 걸음 수가 측정되고, 그만큼 기업이나 캠페인 등에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박철 교수는 마케팅 컨설팅 강의에서 학생들이 취약계층의 자립 자활을 지원하는 자활공동체를 돕는 재능 기부를 하게 했다. 박 교수는 “장부를 제대로 쓸 줄 모르고 원가 계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컨설팅, 고객관리, SNS 만들기 등을 지원했다”며 “본인 전공을 활용해 새로운 사람들을 도울 재능 기부 방식은 얼마든지 있다”고 전했다.

  우현희 연구원은 “‘나눔’은 강요할 수 없기에 기부자와 기부단체의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며 “기부단체는 후원자 모집에 급급해 자극적인 모금 광고를 하기보단 모집 주체, 목적, 사용처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건강한 모금 광고를 한다면 기부자와의 신뢰도가 향상될 것”이라 조언했다.

  이민영 교수는 “기부가 더 이상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기부의 과정에서 기부자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며 “기부가 좋은 시민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금: 법인의 순자산을 감소시키는 거래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비 금액.

 

박지후 기자 fuji@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