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점당 5만6500원

사립대 처우개선 정부 예산 ‘0’

“열악한 처우는 교육 질 악화시켜”

 

 

  올해 고려대에서 열린 1만6227학점의 강의 중 25.3%는 강사가 진행했다. 비정규직 교원인 강사는 대학에서 매주 정해진 시간에 강의하며 시간(1학점)당 강의료와 방학 중 임금을 받는다. 이들은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거나 강의를 전업으로 삼아 생활한다. 시간당 강의료는 생계유지에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고려대 강사의 1학점당 기본 강의료는 5만6500원으로 16년 동안 6200원(12.3%) 올랐다. 고려대 교무처는 2010~2013년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학부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난을 호소하며 강의료 인상이 어렵다고 밝혔다.

  20세기에도 강사 처우는 열악했지만 교수 임용의 문이 좁지 않았기에 대학 강사는 전임교원(교수)이 되기 전 거쳐 가는 단계로 여겨졌다. 고려대에서 30여 년간 강의 중인 문과대 A 강사는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선배들은 석사과정에 들어갈 때 *전임강사가 돼 정년을 보장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1세기, 상황은 역전됐다. 1996년부터 10년간 대학 80개가 늘며 박사학위 취득자가 대거 배출됐다. 2006년 대학 증가세는 멈췄고, 교수의 길은 도리어 좁아졌다.

  1997년부터 2010년까지 대학 5개에 출강하던 故 서정민 강사는 54건의 교수 논문대필 사실을 폭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를 계기로 교원 지위 회복과 처우 개선책이 담긴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 논의가 떠올랐다. 2019년 8월 시행된 강사법은 올해로 5년 차를 맞았지만, 고려대 강사들은 여전히 낮은 강의료와 불안정한 신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가 37% 오르는데 시급 12% 상승

  고려대 ‘강사임금 지급 지침’ 제3조 제2항에 따라 정규학기 강의료는 ‘교직원 보수 책정(안)’에 명시된 시간당 강의료에 총 강의 시간을 곱해 산출한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올해 시간당 기본 강의료는 5만6500원이다. 다만 강의 언어, 정규·계절학기, 수강생 규모 등에 따라 강의 시간이나 시간당 강의료를 가산할 수 있다. 올해 고려대 강사 837명은 5만6500원(전체 강사 81.6%)부터 9만8033원(전체 강사 0.5%)까지 평균 5만9040원을 받았다. 

 

 

  시간당 강의료는 물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2008년 10월 대비 37.3% 상승했지만, 강의료는 2008년 5만300원에서 12.3% 인상됐다. 4년제 국공립대 평균인 9만1200원과도 차이가 컸다. 국립대 강사 강의료는 정부가 일부 지원한다.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 제2항에 따라 올해 정부는 국립대에 ‘시간강사 처우개선비(강사 강의료·방학 중 임금·퇴직금)’ 1623억원을 지원했다. 교육부는 강의료 최저 하한선 지침도 제시한다. 배진수 교육부 대학운영지원과 사무관은 “강의료 하한선 지침은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으로 실질적 결정은 총장이 한다”며 “올해 지침은 9만6500원”이라고 밝혔다.

  고려대 강사들은 강의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예대열(고려대·문과대학) 강사는 “6학점을 강의할 때 한 달에 약 120만원씩 들어왔다”며 “강사법상 한 대학에서 6학점까지 강의할 수 있어 3~4개 대학에 출강해야 겨우 생계유지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논문을 많이 써야 하는데, 여러 대학에 출강하다 보니 연구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문과대 임모 강사는 “국립대에서 강의할 때 시간당 9만6500원을 받았고, 사립인 서강대·성균관대에서도 6만원 이상을 받았다”며 “주변 사립대와 비교하면 고려대는 중하 수준”이라 지적했다.

 

  “등록금 동결돼 인상 어려워”

  사립대는 재정 확보 어려움의 이유로 학부 등록금 동결을 제시한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반값 등록금’ 정책을 추진했고, 2010년에는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각 대학이 등록금을 직전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만 올릴 수 있도록 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의 평균 명목 등록금은 2008년 673만원에서 지난해 679만원으로 6만원 올랐지만, 같은 기간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979만원에서 1850만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는 국가장학금 II유형과 재정지원사업 대상 대학을 선정할 때 등록금 관련 평가지표를 추가해 사실상 동결을 강제하고 있다.

  강사 노동조합은 강의료 인상을 두고 대학과 협상한다. 노조와 대학이 협상 끝에 임금협약을 체결하면 1년, 임금과 단체협약을 함께 체결하면 2년간 인상된 강의료가 적용된다. 현재 고려대엔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전강노) 고려대분회가 있으나 코로나19에 조합원이 상당수 이탈한 상태다. 마지막 강의료 협상은 2010년 9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진행됐다. 학교 측은 재정이 부족해 강의료를 쉽게 올리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 1월 11차 회의록에 따르면 명순구 당시 교무처장은 “요즘 한국 모든 대학이 그렇듯 고려대도 사정이 좋지 않다”며 “올해 직원과 교수 임금도 동결하려 하고, 국립대 수준으로 강사 강의료를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김영곤 당시 전강노 대표와 고려대는 15차례에 걸쳐 임금 및 단체협상을 벌였지만, 학교 측은 논의를 미뤘다. 2012년 3월 7차 협상에서 명순구 교무처장은 “2011년에 강의료를 1500원 인상했고 직원노조 교섭이 이미 진행돼 임금인상은 논의할 조건이 아니다”며 “2013년 강사법이 시행되면 강사가 일종의 ‘비정년트랙 교원’이 되므로 그때 가서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김영곤 전 대표는 전국 4년제 대학 총장이 모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강의료 결정에 영향을 행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진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 성균관대분회장은 “성균관대 측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로 임금 협상에서 인상을 회피하지만, 사립대 인건비 결정 권한은 총장에게 있고 ‘눈치 보여서 못 올려 주겠다’는 말은 ‘올려주기 싫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곤 전 대표는 고려대 교무처의 ‘비박사 강사 임용제한 지침’ 발표 직후인 2013년 2월 강사직에서 해고됐고 지금까지 협상은 열리지 않고 있다.

  사립대학들의 강의료 인상 거부에 김진균 분회장은 “수도권 대형 사립대들은 정원 외 입학생 확대로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응수했다. 등록금 동결이 시작된 2009학년도 대학입시부터 각 대학은 재외국민·외국인·농어촌 지역 학생 등을 모집 정원의 11%까지 정원 외로 선발할 수 있게 됐다. 수도권 사립대들은 ‘정원 외 모집’을 확대했다. 2016년 9월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3~2016년 전국 일반대학교 입학전형 유형별 선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들은 정원 외 모집으로 2013년 대비 23%의 신입생을 더 뽑았다. 2016년 고려대도 2013년 대비 280명(46.3%)의 신입생을 더 선발했다. 김 분회장은 수익사업을 비롯한 등록금 외 수입이 늘어난 점도 언급했다. 등록금 동결 직후인 2012년 ‘대학 자율화 추진계획’이 발표돼 학교법인의 수익사업 규제가 완화됐으며 실제로 전국 4년제 사립대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 연간수입 총액은 2013년 2471억원에서 올해 3424억원으로 증가했다.

 

  “사립대도 국립대처럼 지원해야”

  정부는 강사법 안착을 위해 2019년부터 3년간 사립대 강사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의 70% 수준을, 1년 연장된 지난해엔 약 50%를 지원했다. 교육부는 올해도 사립대학에 267억원을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기획재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아 해당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고려대 사범대 B 강사는 “강사법이 보장하는 ‘방학 중 임금’은 방학 두 달간 5~10만원밖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이 학교 예산을 많이 잡아먹는 만큼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강사 처우 보장에 부담을 느낀 대학들은 강사를 줄였다. 2019년 10월 고려대 교무처가 주재한 ‘강사법 시행예정 관련 논의사항’이 담긴 대외비 문건에는 ‘시간강사 채용 극소화’를 목표로 한 강사법 대응 방안이 담겼다(본지 1864호 ‘강사법 대응 문건 파장 교무처 “논의중”’). 박만섭 당시 교무처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강사법이 시행되면 연 55억원 정도가 추가로 들어갈 것”이라며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더라도 한시적이라면 대학이 다시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강의료를 받은 고려대 강사는 2019년 927명에서 2020년 621명으로 감소했다.

  고려대 강사들은 사립대학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A 강사는 “국립대든 사립대든 고등교육은 다음 세대의 역량을 키우는 ‘백년대계’의 일”이라며 “항상 정부는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듯 갖은 이유를 들어 재정 지원을 볼모로 사립대를 협박한다”고 지적했다. 임모 강사도 “올해 교육부가 추진하는 ‘글로컬대학’ 사업에 선정된 10개 대학 중 7개가 국공립대”라며 “사립대도 국립대 수준으로 지원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배진수 교육부 사무관은 “사립대 강사 처우개선 사업은 3년 한시였는데 1년 연장된 것”이라며 “사립대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고, 정부에서 지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강사의 열악한 처우는 고등교육의 질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예대열 강사는 “생계와 신분이 불안정한 강사는 연구에 전념하기 어렵다”며 “내 생활뿐 아니라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에게 악영향을 줄 것”이라 말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김 분회장도 “학문과 교육을 전임교원만큼의 안정성 속에서 추구한다면 훨씬 높은 성취를 만들 수 있다”며 “이대로라면 학생들은 학문을 미흡한 방식으로 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사들이 처우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강노 대표직을 맡고 있는 임모 강사는 “강사들이 요구하지 않으면 학교 측에서 자발적으로 강의료를 올려줄 리 없다”며 “같은 생각을 가진 소수라도 모여서 이야기하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전임강사: 2012년 7월 폐지돼 조교수로 통합된 직급으로,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와 더불어 전임교원 직급의 하나였다. 과거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전임강사는 조교수 승진까지 최소 2년의 근무 기간이 필요했다.

 

글 | 정세연 기자 yonseij@

인포그래픽 | 은서연 기자 silverbell@

일러스트 | 송민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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