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내세운 규제 완화 급물살

“도시를 보는 시민의식 변해야”

 

  지상 7층 규모로 건축 허가를 받았던 고려대 서울캠퍼스 정운오 IT 교양관이 지난달 공사 중 건축 계획을 지상 10층으로 변경 인가를 받았다. 당초 부지가 자연경관지구에 속해 7층을 초과할 수 없었지만 서울시는 지난달 6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반도체공학과 등 첨단학과에 지상층 연면적의 65%가량을 배정하는 조건으로 규제를 풀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지방 정부로 토지 규제 권한의 이양을 과감히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지자체 주도의 개발 규제 완화가 늘고 있다. 규제 완화가 공공의 이익으로 귀결되도록 도시 정책·도시민의 인식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공익 시설엔 과감한 혜택”

  지난해 7월 서울시가 개정한 ‘도시계획 조례’의 핵심은 2022년 발표한 ‘대학 도시계획 지원방안’을 근거로 대학이 첨단 기술 산학협력 시설을 설치하면 이를 공익적 성격으로 보고 규제를 푸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용적률 규제를 상업 지역에 버금가는 1000%까지 허용한 점이다. 서울 내 대학의 98%가 용적률 200% 이하 용도지역에 위치한 현실을 고려하면 규제 완화 혜택이 매우 크다. 이건원(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 소재 대학은 지방 대학에 비해 낮은 용적률과 층수 제한으로 공간 확보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용을 쓰고 있다”며 “규제 탓에 멀쩡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기도 한다”고 짚었다. 수혜 대상인 서울 소재 대학들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기준 고려대를 포함한 서울 소재 8개 대학은 서울시에 혁신성장구역 설치를 조건으로 용적률 규제 완화를 요청한 상태다. 김충호(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비영리 목적의 도시개발 규제 완화는 증대되는 공공이익을 고려할 때 합리적”이라며 “서울 땅값이 급등해 교지 부족에 허덕이는 대학들에 규제 완화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발 규제 완화가 공공성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운오 IT 교양관이 증축되며 미래융합기술관으로 이어지는 6m가량의 길은 하루 종일 햇빛이 들지 않게 됐다. 원정연(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골목이 그림자에 갇힌다면 도시 환경은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며 “용도 지역이 동일함에도 주거 시설과 달리 대학 건물엔 일조 관련 규제들이 적용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 분석했다. 원 교수는 “캠퍼스 개발의 공익성을 위한 당면 과제는 자연캠의 심각한 공간 부족 해결이지만 장기적으론 개발 규제를 풀었을 때의 영향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17개 지자체, 개발 심의 공개 안 해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는 모두 개발 심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13조 제2항에선 회의록 작성은 원칙으로 하나 회의록 공개는 심의 안건 당사자가 공개를 요청하는 때에만 지자체 재량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개발 심의 과정이 즉각적으로 공개되면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우려가 있어 전면 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기도청 도시정책과는 “심의 과정을 개방하진 않지만 도시계획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위원의 3분의 2를 민간 위원으로 구성해 심의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규모 이권이 걸린 개발 행위 인허가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도시 정책의 민주성이 담보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수기 광주광역시의원은 “지방 도시계획위원회가 행정 당국의 눈치를 보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은 근본 이유는 심의 과정이 깜깜이로 운영된 탓”이라 설명했다. 

  지자체의 개발 행위 인허가에 주관성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점도 문제다. 개발 행위의 심의 과정에선 인허가 조건을 두고 사업자와 인허가권자 간 줄다리기가 이뤄지는데 이때 건축물의 공익성 등을 둘러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원정연 교수는 “서로 다른 도시의 개별성을 고려할 때, 도시개발 심의의 조건이 완전히 객관화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원 교수는 “도시개발 심의에 참여하며 개발 업자의 로비를 여러 차례 마주했다”며 “시공사 결정을 위한 공개 입찰 규정 등이 매우 꼼꼼히 갖춰져 있지만 부정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 정책, 정치 셈법에서 벗어날 길

  그간 국내 도시 정책은 지역 정치권력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서울시의 도시 정책이 박원순 시장 하에서 ‘재생론’을 따랐지만 오세훈 시장 취임 후 ‘개발론’으로 즉각 선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다니엘(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박원순 시장이 도시재생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2013년 고려대에 도시재생협동과정이 설립되는 등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지만 지역 정치 집단이 바뀌며 서울시는 모든 정책에서 도시재생이란 이름 자체를 없앴다”고 말했다. 정치 셈법에 좌우되는 도시 정책은 일관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0년대 후반 이후 서울주택도시공사와 같이 정치와 분리된 도시개발 공기업이 설립됐다. 그러나 해당 기업 경영진은 서울시장 등 정치 세력이 지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과 시민들의 도시개발에 대한 인식 변화 병행을 제안한다. 김갑성(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계획을 수립할 때 각종 위원회 심의를 통해 공공성을 검증하지만 사후 검증 절차는 없다”며 “시작부터 완성까지 단계별로 사업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면 사업 주체와 정치권 간 부정을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오다니엘 교수는 “‘부동산에 투자해 돈을 벌겠다’와 같은 개인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아직은 시민들이 도시개발이 미칠 공공이익의 변화를 판별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도시의 주인인 시민이 도시개발 과정에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진교진(부산대 건축학과) 교수는 “시민들과 지자체가 서로 무엇을 해주기만을 바라기보다 도시계획의 주체로 협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경준 기자 aig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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