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지 씨는 고려대 간호학부 재학 중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 사명감을 느낀 때는 간호사로 고대안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였다. 안산병원에는 외국인 환자가 많다.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부부의 아기들은 임신 중 관리를 잘 받지 못해 조산아와 기형아로 많이 태어나요. 600g밖에 안 되는 아기가 3kg로 자라서 퇴원할 때 보람이 컸죠.” 그렇지만 회의감도 컸다. “아기가 고통스러운 치료로 고생만 하다 죽을 때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에서 배운 사람 중심의 간호학은 허상에 불과했죠.”

  이 씨는 간호사로 4년간 일하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학부 시절 오원옥(간호대 간호학과) 교수의 ‘아동간호학’ 수업을 들으며 교수의 꿈을 키웠던 그는 2021년 고려대 대학원에 입학해 오 교수의 제자가 됐다.

  “공대 친구들은 2년 만에 졸업하길래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예상과 달리 그는 한 학기를 더 다닌 후 석사 과정을 마쳤다. 연구에 필요한 설문조사 표본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신생아집중치료실 간호사가 150명 정도 필요했어요. 안산병원에만 간호사가 50명이었으니 고대병원 세 곳에 연락을 돌리면 충분할 거라 막연히 생각했죠. 그런데 실제로 설문에 답해주는 사람은 병원당 3명 남짓이었어요.” 턱없이 부족한 숫자에 이 씨는 전국의 간호학과 대학원에 연락해 응답자를 모았다. 졸업이 미뤄지면서 당초 계획한 미국 유학도 올해 9월로 미뤘다. 출국 전까지는 지도교수를 도와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은지 씨는 연구와 현장을 모두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간호사 업무도 되게 재밌거든요. 임상 현장을 완전히 떠나고 싶지는 않아요. 현실과 동떨어지면 현장에서 진짜 필요한 걸 놓칠 수 있으니까요.” 미국행을 결정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간호사당 환자 수가 적어서 제가 바라던 사람 중심 간호가 보편적이에요. 교수가 간호사를 겸직할 때도 많고요.”

  지난주 이 씨의 메릴랜드대(University of Maryland) 박사 과정 합격 소식에 대학원 동기들은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누구보다 요란하게 축하해 주겠다’며 커다란 호랑이 인형을 해외 직구까지 해줬어요.” 백호 인형은 간호대 조교들에게 물려줄 예정이다.

 

글 | 추수연 기자 harvest@

사진 | 염가은 사진부장 7rr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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