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나 교수생활이나 다 똑같더라고요. 인간관계는 결국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진 허승철 교수가 28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고려대를 떠난다.

 

  노문과 학생, 우크라이나 대사가 되다

  허승철 교수는 1977년 고려대 문과대학에 입학했다. 당시는 계열별로 학생을 모집했다. “문과대 신입생 190명 중 저를 포함한 5명만 노문과를 선택했어요. 신설된 지 3년밖에 안 됐고 냉전 시대였으니 인기가 없었죠.” 작은 학과였기에 더 끈끈했다. “선후배 모두가 서로를 알고 지냈어요. 지금은 정원이 30명까지 늘었지만, 노문과의 좋은 전통이 이어지길 바라요.”

  학부 졸업 후 국비유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냉전 시대였기에 구소련권 국가로의 유학은 불가능했다. 슬라브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도 미국에서였다. “당시 지도교수님께서는 체코분이셨어요. 언어를 하나둘 공부하다 보니 폴란드어, 불가리아어 등 6~7개의 슬라브어를 구사하게 됐어요.” 우크라이나어는 하버드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로 지내며 익혔다. 

  고려대 교수 부임 2년 차인 1997년,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우크라이나어 강의를 개설했다. “대우그룹이 우크라이나에 자동차 공장을 짓는 등 우크라이나와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였어요. 대우자동차나 우크라이나 대사관으로 취직한 제자들이 꽤 됐죠.”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우크라이나 대사를 지냈다. “우크라이나에 체류하는 무국적 고려인 국적 문제 해결에 가장 힘썼어요. 구소련권 국가 최초로 한국인 무비자 입국도 실현했습니다.” 귀국 후에도 공공외교와 문화외교에 힘쓰고 있다. 한러 공동주관 민간 대화채널 ‘한러대화’의 사무국장을 맡으며 매년 학술회의를 열고 있다. 러시아·동유럽 관련 저서 및 번역서도 어느덧 50권을 넘어간다.

 

  졸업 후 진로까지 함께 고민

  허승철 교수는 수업에 들어오는 모든 학생과 한 번 이상 면담을 진행한다. “연구실을 찾아오면 기말 보고서 주제를 점검해준다고 매 학기 학생들에게 공지합니다. 면담 시간의 절반 이상은 학생에 대한 얘기를 들어요. 고민은 없는지, 진로는 무엇인지 묻고 학생의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해 주죠.” 한 학기에 5번 찾아온 학생도 있다고 허 교수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면담을 통해 학생들의 취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었어요. 시대가 너무 어려워졌잖아요. 한러수교 직후에는 노문과가 취업이 잘 됐죠. 제가 공부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는 2005년 교내 최초로 취업 특강을 추진해 2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2022년부터는 진로지도 멘토링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취업이 막히자 노문과 학생들의 취업이 더욱 어려워졌어요. 분야별 선배를 1대1로 이어줘 1년 정도 코칭을 부탁했어요. 퇴임 후에도 멘토링은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동유럽경제학회도 결성했다. “경영학회 면접을 봤다가 떨어지는 노문과 학생들이 많더라고요. 지역학은 우리가 전문인데 푸대접받을 이유가 없잖아요. 동유럽 취업 길도 점점 열리고 있어요. 삼성SDI와 SK온은 헝가리에 공장을 지었고, LG에너지솔루션도 폴란드에 공장이 있죠.”

  허 교수는 제자들에게 캠퍼스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한다. “시류를 쫓아가지 말고 정말 나에게 맞는 일이 뭔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인턴도 해보고 교환학생도 가보고 책도 읽고요. 아니면 저를 찾아와도 좋습니다. 집이 가까워 한동안은 이 학교를 떠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도서관에 있을테니 언제든 연락하세요.”

 

글 | 조형준 편집국장 jun@

 사진 | 진송비 기자 bshn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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