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강 병장의 말년 휴가. 군복도 벗지 않고 만난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은 고려대에 실험 기사 채용공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20일 남짓의 휴가 동안 그는 면접까지 본 후 복귀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다음 날인 7월 1일부터 고려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강윤종 공과대학행정팀 차장은 지난 35년간 고려대를 위해 헌신했다.

 

  학생과 함께한 현장 전문가

  화학과 실험 기사 시보로 고려대와의 긴 인연이 시작됐다. 교수 한 명당 대학원생을 한 명밖에 뽑지 못했기에 학교는 실험을 보조할 인력을 고용했다. “당시에는 이과대학 전체에 대학원생이 60명 정도뿐이었어요.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실험을 돕는 게 주 업무였죠.” 그는 학생들과 함께 청계천 상가에서 부품을 사고, 밤을 지새우며 실험 장비를 만들었다. 현재 ‘삼성통닭’이 있는 자리에는 목욕탕이 있었다. 장비를 만지며 밤을 지샌 날에는 학생들과 같이 목욕하고 국밥을 먹은 뒤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는 4년 뒤 재료공학과(현 신소재공학과)에 정규직 실험 기사로 발령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학과 전체가 공학관으로 이사 갔을 때였다. “완공 소식을 듣고 처음 건물을 찾아갔을 때 실험실에는 전기가 아예 들어오지 않았어요. 전기 설비가 실험용이 아닌, 사무실 용도로만 마련된 상태였습니다.” 전기 기사 자격증이 있던 그는 직접 전기 시설을 설계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거의 3개월은 집에 못 갔죠. 실험실 장비 구동을 마쳐야 학생들이 실험할 수 있고, 그래야 졸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신공학관이 건설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잦은 사건 사고도 힘든 일 중 하나였다. 한 달에 한 번은 화재 경보가 울렸다. 다행히 학생들이 크게 다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실험실이 다 타버려도 좋으니까 괜히 불 끈다고 소화기 들이밀지 말라고 했어요. 가스가 많으니 빨리 대피하지 않으면 위험하잖아요. 정말 다 타면 뭐 아쉽게 된 거죠.”

 

  소중한 인연 찾아준 고려대

  강 차장은 학생들과의 추억이 많다. “가장 고마웠던 것 중 하나는 바쁘고 어려울 때 학생들이 나서서 도와줬던 거예요.” 그는 고려대에서 근무하면서 총 4번의 허리 수술을 했다. 그때마다 교수와 학생들이 십시일반 도왔다. “실험실 관리가 제 업무 중 하나였어요. 출근을 못하는 동안 학생들이 저 대신 장비를 점검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더라고요.” 그가 퇴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 각지의 졸업생이 찾아왔다. “전라도나 경상도에서도 달려와서 같이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눴어요. 찾아와준 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제가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강 차장 역시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신소재공학과는 MT를 갈 때 DB김준기문화재단의 후원을 받는다. “1년에 1억원 정도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면 7년째죠.” 10년을 지원받기로 약속했지만, 지난해 임원진과 만나 기한을 10년 연장했다. “학생들에게 있어 MT는 소중한 추억인데, 더 좋은 환경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고려대에서 근무하며 소중한 인연을 만들기도 했다. “생물학과에 근무하시는 선생님과 결혼까지 했어요.” 당시에는 직원끼리 결혼하면 한 사람이 퇴사하거나 세종캠퍼스로 내려갔어야 했다. 결혼을 위해 아내가 큰 결단을 내렸지만, 2년 후 규정이 사라졌다. 

  35년의 긴 시간을 뒤로 한 채, 그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한다. “젊은 나이에 입사해 어느덧 예순이 돼갑니다. 밖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학교에만 있었죠. 막상 나가려고 하니까 좀 서운하네요.” 그는 퇴직 후에도 바쁘게 살아갈 계획이다. “자녀들은 1년 정도 쉬라고 했는데, 한두 달 놀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하더라고요. 태안 바닷가에서 아버님이 하시는 양식장을 도울 것 같아요.”

  정든 직장을 떠나며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다. 그는 진정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잘 영위하기를 바랐다. “학부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선택을 해서 들어왔을지라도 앞으로의 진로는 스스로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만 오래 일할 수 있습니다.”

 

글 | 장우혁 기획1부장 light@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