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서 기자
     나윤서 기자

 

  신문사 생활을 시작한 후 유독 이런저런 물건을 깜빡하는 실수가 늘었다. 지난 학기 동안 두 손을 다 꼽아야 셀 수 있는 개수의 우산들에 이어 필통과 핸드폰까지 잃어버리고 나선 내가 ADHD인가 의심하기도 했다.

  이런 고민을 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최근 스스로를 ADHD라고 의심해 병원을 찾는 성인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ADHD 증상으로 진료받은 성인 환자가 지난 5년간 5배로 급증했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 결과도 있다. 그러나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 중 실제 ADHD가 아닌 경우도 많다. 여러 정신과전문의가 이들 중 상당수가 ADHD는 아니지만 동시에 여러 업무나 학업을 수행하느라 집중력과 주의력이 떨어진 상태라고 지적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을 자초해 고통받는 경우를 가리켜 ‘스불재’라고 한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재앙을 부르는 사람들은 우선 자기객관화 능력이 부족하다. 내 경우, 물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신문사 일과 개인 취미생활을 병행하려다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학기 내내 학업은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고, 과제를 제때 내지 못해 교수님께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경쟁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도록 장려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황당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없는 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치·의전·허식을 이유로 매일 평균 2시간 반을 가짜노동에 소비하고 있다. 나 역시 신문사의 방학 출근 동안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괜히 편집국에 남아있었던 적도 있고, 질문지와 이메일의 사소한 양식에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시간을 낭비한 적이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재앙은 ‘스스로’ 불러왔다는 점에서 남 탓하기 어렵다.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कर्)’, 한자어로 ‘업(業)’이라는 말이 있다. 내 번뇌는 내가 지은 업에 따른다. 괜한 욕심을 부추기는 사회를 비판해 보기도 하지만, 내가 스스로 재앙을 부른 이유는 어쨌든 하고 싶어서다. 일단 감당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고군분투하자. 카르마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나윤서 기자 n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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