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방식 두고 대립 첨예

‘깜깜이’ 유보통합에 속 타는 현장

“장기 계획 갖고 정책 시행해야”

 

지난달 29일 서울시 중구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한 어린이가 보호자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 중구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한 어린이가 보호자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친 통합기관을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유보통합)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교육 당국은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들은 정부가 현장과 소통하지 않고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한양제일유치원 교사 이현령 씨는 “유보통합을 시행한다고만 발표하고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어떠한 공문과 지침도 받지 못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유보통합 취지엔 ‘대체로 동의’

  현행법상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각각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서 관리한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학교로 인정되지만 어린이집은 보육 기능을 담당하는 사회복지기관으로 분류된다. 현재 0~2세의 영아는 어린이집에만 등록할 수 있으며 3~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중 한 기관을 선택할 수 있다. 3~5세 유아는 2022년 기준 52.5%가 유치원에, 41.7%가 어린이집에 취원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설립 방법, 정부 지원금, 관리 기준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시설 처분이 자유로운 어린이집과 달리 유치원은 매매·담보·임대가 모두 금지된다. 유치원은 5160m²의 체육장을 포함해야 하지만 50인 미만의 어린이집은 보육실과 놀이터를 갖출 의무가 없다. 교육·보육료와 서비스에서도 격차가 존재한다. 학부모부담금이 거의 없는 어린이집과 달리 지난해 서울 시내 사립유치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는 매월 29만9000원을 유아교육비로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비용의 차이가 질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김승희(광주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가정어린이집과 같은 일부 어린이집은 인적·물적 인프라가 유치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현장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현행 체제로 발생하는 교육 격차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유보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대욱(경상국립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교육 서비스 차이가 크기에 유보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기백 대변인 역시 “유보통합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간의 교육 격차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보가 분리된 현재 교육과정이 아동의 안정적인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 한 어린이집의 A원장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분리돼 있으면 교육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며 “안정적인 영유아 교육을 위해 유보통합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유보통합이 교육 서비스의 질을 저해하는 ‘마이너스 통합’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서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B원장은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유치원 모델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소규모 어린이집이 없어져 학부모의 선택권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통합 기관의 기준을 유치원보다 낮게 설정하면 교육의 질이 하향평준화 될 수 있다. 최성균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 사무총장은 “유치원의 경우 원아들의 교육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설립 조건이 까다로운 반면 어린이집은 자유롭게 임대와 매매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현실과 타협해 유보통합기관의 기준을 완화한다면 학부모가 요구하는 질 높은 상향통합과 반대로 갈 것”이라 전했다.

 

  교사 자격요건 두고 유-보 간 갈등 심화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교사의 자격 조건과 지위 보장 문제는 유보통합 당사자들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치원 교사는 유아교육과 등 관련 학과를 졸업해 임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반면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일정 수준의 학점을 이수하면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자격요건을 달성한 후 유치원 교사는 교원으로, 어린이집 교사는 근로자로 분류된다. 현재까지 교사 자격의 통일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유치원 교사들은 대체로 유보통합 후 교사 지위가 획일화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집 교직원의 유보통합 찬성 비율은 78.9%에 달했지만, 유치원 교직원의 경우 28.2%만이 찬성 의견을 밝혔다.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갖고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교사 C씨는 “보육교사 3급은 교육원을 통해서 1~2년이면 딸 수 있다”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구분돼야 하는 것처럼 유치원 교사와 보육교사는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균 사무총장은 “현재 어린이집 교사 중 당장 유치원 교사가 될 수 있는 분들은 극히 적다”며 “단순히 유보통합으로 같은 지위를 보장해달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봐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에는 유아교육단체를 중심으로 유보통합에 반대하는 집회가 수차례 이뤄지기도 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유치원 교사와 유사한 업무를 담당함에도 동등한 지위와 처우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박명희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집도 엄연히 교육과정이 존재하고 교육 활동을 진행하는데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어 단순히 보육 시설로만 인식하시는 경향이 있다”며 “유보통합이 되면 어린이집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B원장은 “어린이집 교사들이 전부 유아교육과 재교육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유치원 쪽에서는 보육 전공을 우습게 여기고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 해법 요구에 정부는 침묵 일관

  당초 교육부는 지난해 말까지 유보통합의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교육부는 통합 모델에 관해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B원장은 “많은 어린이집 교사들이 새롭게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해하고 있다”며 “교육부에서 보도자료도 내질 않으니 알고 있는 대표자들을 통해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떠돌아 혼란이 가중되기도 한다. 어린이집 교사인 D씨는 “유보통합이 된다고는 하지만 통합의 각론에 대해 현장에선 ‘카더라 통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불편을 토로했다. 박명희 원장은 “어린이집 교사들 사이에서 다시 대학에 들어가 교직을 이수해야 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며 “교직 이수 없이 어린이집에 온 교사들 입장에선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라 말했다. 김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정책홍보국장은 “모델 발표를 미루는 이유조차 말하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소문만 가득한 상태에선 유치원·어린이집 모두 불안하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예산 역시 마련되지 않았다. 육아정책연구소의 보고서 ‘유아교육·보육 통합 재정확보 방안 모색(2022)’에 따르면 유보통합에는 15조2000억원 규모의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부가 올해 사용할 예산 95조7888억원 중 유보통합에 책정한 금액은 ‘0원’이다. 교육부는 보건복지부로부터 보육 예산을 이전받기만 했을 뿐 유보통합을 위해 국고 지원을 확장하진 않았다. 유보통합에 필요한 예산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통해 충당하라는 것이 교육부의 유일한 방침이다. 김승희 교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대부분이 교사 월급과 같은 경직성 예산으로 쓰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사용하기 어렵다”며 “유보통합특별법과 같은 형식으로 별도의 재원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정부조직법만 개편해 놓은 상태”라고 언급했다. 교육계 관계자들도 유보통합을 위한 정부의 예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기백 대변인은 “시설 개선, 교원 처우 개선, 통합추진 인력 등 비용이 들어갈 곳이 많은데 교부금에만 의존하면 유아교육이 퇴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다솜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 위원장은 “많은 교육청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잉여금까지 끌어 쓰는 상황에 교부금만으로 유보통합까지 해결하라는 것은 사실상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마저도 지난해 대비 7.5% 삭감됐다.

  관계자들은 교육이 ‘백년대계’인 만큼 성급하지 않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성균 사무총장은 “유치원은 130년 가까이 자체적인 교육 기준을 운용해 왔는데 유보통합으로 1~2년 사이에 합친다는 것은 무리”라며 “장기적으로 긴 호흡을 가지고 통합해야 한다”고 전했다. 오랜 기간 분리돼 성장해 온 두 기관이 결합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기백 대변인은 “지금 당장 통합 모델을 확정하더라도 다음해부터 바로 유보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B원장은 “유보통합에 현장의 의견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다”며 “정부는 밀어붙이기 방식이 아닌 10년, 15년을 바라보고 천천히 진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윤태욱 기자 yoonvely@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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