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청보리미디어 대표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청보리미디어 대표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날까? 누구나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 봤겠지만 마음에 드는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망설임에서 시작된 물음이기에 A를 택하자니 B가 아쉽고 B를 고르자니 C가 눈에 밟히는 갈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 심해지면 나한테 선택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까지 든다. 

  이럴 때 크게 고민할 필요 없다. 옛사람들이 남긴 고전 속에 해답이 들어 있다. 소문난 식사의 기본은 맛있게 먹는 것이다. 짜장면과 짬뽕을 놓고 갈등이 생길 때 짬짜면으로 해결하듯 딱히 소문날 만한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비빔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굳이 밥이 아니라도 비빈 음식이라면 모두 오케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 나름의 근거가 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비빈 것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설사 옛 석학이 남긴 말이라도 개인적 입맛에 지나지 않는데 억지로 대표성을 부여하며 고전 속  명언인 양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우리나라 음식은 원칙적으로 특별한 맛이 없는(無味) 밥이나 국수 같은 주식에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함께 먹음으로써 최고의 맛(至味)에 이르는 융합의 음식이다. 각각의 음식을 따로 먹더라도 결국은 입속에서 모두 섞이는 것이 우리 한식의 특징이다. 한 가지 음식의 맛을 즐긴 후 접시를 치우고 또 다른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서양 음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니 성호 이익은 한식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며, 비빔밥은 근본과 통한 음식이니 잘 먹었다고 소문날 자격 있다.

  음식 취향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비빈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성호 이익이 아니라 공자, 맹자가 다 나서서 맛있다고 설득해도 소용없다.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조선 후기의 지성, 다산 정약용의 조언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그의 문집인 『여유당전서』에 다산이 유배지에 있을 때 두 아들에게 교훈을 적어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사람이 사는 동안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성실함인데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며 “가장 나쁜 것은 하늘을 속이는 것이고 다음은 임금과 어버이를 속이는 것”이라며 글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다만 한 가지 속여도 좋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기 입”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 줬는데 아무리 하찮은 음식이라도 먹을 때 즐거우면 된다며 여름에 상추로 쌈을 싸 밥을 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자신의 입을 속인 방법이라고 했다. 여름 쌈밥이라면 정약용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 속아 넘어갈 만하다. 

  한식의 본질을 담은 비빔밥도 맛있고 입을 속이는 것도 좋지만 잘 먹었다고 소문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참고할 만한 옛글이 또 있다. 청나라의 한림원 학사를 지낸 장영이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이라는 글을 남겼다. 12가지 조건이 합쳐져야 밥이 맛있다는 뜻이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고 요리를 잘해야 하며 계절에 맞춰 먹어야 하고 식사 때를 맞춰 먹어야 한다는 등 11가지 조건에 더해 마지막 조건을 갖춰야 맛있는 식사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화룡점정의 조건은 좋은 짝(侶)과 함께 먹으라는 것이다. 가족이나 연인, 혹은 친구나 파트너가 됐건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라면 맛있는 식사가 된다. 과연 그럴까 싶으면 오늘 당장 실천해 보기를 권한다. 궁금증을 참으면 병 된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청보리미디어 대표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