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이며 언론이며 연일 ‘출산율’ 문제로 시끄럽다. 합계출산율이 1을 하회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인구는 2020년 역사적 고점을 찍고 2021년부터 하락 전환됐다. 인구통계의 장기적 추세를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에 출산율이 유의미하게 반등하지 않는다면 급격한 인구절벽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에 정부는 역사상 마지막으로 70만명 이상이 태어난 1990년대 초반생에게 희망을 걸고 다양한 정책들을 내걸고 있다.

  나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1990년대 초반 ‘가임기 여성’이다. 얼마 전 결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출산을 삶의 계획에 포함할지 고민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느껴지는 주된 감정은 불안감이다. 결혼하면 으레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당연했던 윗세대와는 달리, 현세대에게 결혼과 임신, 출산은 온전히 ‘선택’의 영역이다. 선택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아이 키우는 즐거움)는 상상하기 어렵고 무형적이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가처분소득, 여유로운 저녁 시간, 커리어에 대한 집중 등) 출산 이후의 삶을 막막하고 불확실하게 만든다. 이는 ‘출산 이후에 나, 혹은 나의 아이가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삶을 살면 어쩌나’라는 상대적 비교에서 기인하는 불안감이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근대의 물질주의적 사회에서는 육체적 생존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동시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필수품”으로 꼽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초등학생, 중학생 사이에서 해외여행과 체험학습을 가지 않는 학생들을 ‘개근 거지’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런 사회에서, 확고한 물질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확신 없이 아이를 낳는 결정을 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결국 출산율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기적인 현금성 지원책과 더불어, 구조적으로 사회에 만연한 비교심리와 이에 기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정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적 환경에 내몰기보다는 철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 창의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 낳는 것을 통한 정서적·무형적 가치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공공 마케팅이 필요하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긴 싸움을 앞두고 있다.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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