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사태에 “은행 믿기 어려워”

책임 공방 속 제도 개선 시급

독과점 풀고 금융 선택지 넓힌다

 

지난 18일 금감원장과 주요 은행장의 간담회가 열린 은행회관에서 홍콩 증시 관련 ELS 투자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8일 금감원장과 주요 은행장의 간담회가 열린 은행회관에서 홍콩 증시 관련 ELS 투자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에 대한 국민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은행이 판매에 열을 올렸던 간접투자상품 곳곳에서 천문학적 손실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증권 지수 HSCEI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에서 올해에만 6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사태를 마지막 교훈 삼아 금융사 옥죄기로 일관해 온 정부의 방침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진단이 뒤따른다.

 

  뒷북 치는 정부에 소비자·금융사 불만

  금융감독원은 1월 8일부터 두 달간 11개 주요 판매사를 조사해 홍콩 증시 관련 ELS에 조직적 *불완전 판매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11일 발표된 금융감독원의 ‘홍콩 H지수 ELS 검사결과(잠정) 및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면 은행 본사는 영업점 직원들의 ELS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은행원 성과평가지표에서 ELS 판매 실적을 대폭 늘렸고, 영업점에선 △설명 의무 위반 △투자 성향 부적합 고객에 상품 판매 △판매 과정 녹취 미흡 △위법적 대리 가입 등이 이뤄졌다.

  금융감독원은 판매 부실 사례가 적발된 만큼 은행이 손실 배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은행이 배상 기준으로 참고할 수 있도록 구체적 배상 비율 설정 방법을 제시했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권고사항이지만 금융감독원이 은행에 최대 7조 5000억원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는 엄포를 놓자 은행들은 자율 배상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이 22일 이사회에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기준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하나은행 역시 27일 이사회를 열어 자율 배상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정부의 개입에도 피해 배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피해자 박선옥(여·47) 씨는 “원금 전액 배상이 아니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이용찬(생명대 식품공학23) 씨는 “홍콩 증시 관련 ELS에 투자해 절반 가까이 손실을 봤다”며 “위험을 감수한 것은 맞지만 은행을 믿고 또 간접투자상품을 이용할 수 있을지 꺼려진다”고 이야기했다.

  금융상품 손실이 반복될 때마다 금융사를 압박해 배상을 이끌어 내기보다 장기적으로 문제 예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평균수명이 늘며 유복한 노년을 위해선 금융상품 투자가 불가피한데 대규모 손실이 반복되면 소비자의 불신이 커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진희(여·53) 씨는 “은행에 예금을 들러 갔다 창구 직원이 ‘홍콩이나 중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손해 볼 일은 없다’길래 믿고 맡겼다”며 “한 지점에서만 23년을 거래해 이렇게 손실 위험이 큰 상품을 추천하리라 생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최연승(이과대 물리23) 씨는 “은행 창구에서 파는 금융상품인데도 잊을 만하면 대규모 손실이 반복되니 금융업계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믿음이 안 간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은행회관에서 진행된 주요 은행장 및 금감원장 간담회에서 홍콩 증시 관련 ELS 사태 피해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농협 이용자도 보호해야

  정부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융소비자 보호법)’이 시행되며 도입된 금융상품 청약철회권이 대표적이다. 금융상품 청약철회권은 원금이 무조건 보장되는 예·적금을 제외한 모든 금융상품의 가입을 일정 기한 내 위약금 없이 취소할 수 있는 권리다. 최태훈(보과대 바이오의과학17) 씨는 “금융상품을 가입할 때면 현장에서 설명을 다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나중에라도 가입을 취소할 수 있게 해 줘 다행”이라 말했다. 시행 3년차인 지난해엔 5조5511억원의 철회가 신청돼 첫해 신청 금액의 2배를 넘었다. 강성광 서울보증보험 역삼하나대리점 대표는 “시중은행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선 금융상품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 외 그릇된 선택을 무를 수 있는 권리도 확대해야 함을 느꼈다”며 “제도가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민동원(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의 금융 불신은 판매사가 그 상품이 어떤지 소비자가 잘 알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거나 장밋빛 미래만 전달하는 데서 비롯한다”며 “금융상품의 특성에 따라 청약철회권의 구성을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 보호법의 개선도 필요하다. 현행 금융소비자 보호법의 적용 대상엔 농협, 신협, 수협과 같은 상호금융기관은 빠져 있다. 김석주(경영대 경영24) 씨는 “농협을 오랫동안 이용해 왔는데 농협 이용자라는 이유만으로 피해가 발생할 때 구제 대상에서 빠지는 건 불합리하다”고 전했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 연구위원은 “법 적용 대상을 상호금융권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긍정적”이라면서도 “상호금융기관은 판매 원칙 준수가 어렵지 않은 일반 소비자 대상 예금·대출 상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어 법 적용에서 빠진 부분을 마냥 비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상호금융기관은 설립 근거가 되는 법률이 제각각이라 감독에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NH농협은행은 홍콩 증시 관련 ELS 불완전 판매를 비롯한 여러 비위 정황이 적발됐지만 금융감독원은 조사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감독 권한이 농림축산식품부에 있고, 같은 법 제12조에 따라 산업 자본이 금융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 예외로 인정되는 탓이다. 정광민(포항공과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상호금융기관은 조합원들 간 신뢰와 유대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부실 운영의 책임이 매우 모호하다”며 “상호금융기관이라 해서 일반 금융사와 운영 사업, 대상 고객 등에 별반 차이가 없어 규제 방식을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간 경쟁으로 이자부담 줄여야

  피해 구제뿐 아니라 일상과 맞닿은 금융 곳곳에서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정부가 개선 필요성을 느낀 부분은 고금리 기간 높은 대출 이자로 은행들이 손쉽게 돈을 벌 동안 소비자들이 고통을 겪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시중은행이 **예대마진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전체 수익의 91%에 달한다. 5대 지방은행은 그 비중이 96%이다. 국회는 2018년 ‘은행법’과 ‘보험업법’을 개정해 연봉이 상승하는 등 사정이 변하면 소비자가 금융기관에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가 은행별 금리를 쉽게 비교하고 대출을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인프라도 1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은행들은 전체 금리인하요구의 27.4%를 수용해 평균 0.42%의 금리를 깎아줬다. 양철원(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리인하요구권과 대환대출 인프라의 도입으로 대출을 공급하는 은행끼리 경쟁이 활성화되면 금리를 낮출 수 있다”며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정부는 독과점 체제를 풀어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계획도 갖고 있다. 소비자가 돈을 빌리러 갈 수 있는 은행 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상반기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케이뱅크,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에 이어 인터넷전문은행 신규 인가도 추진 중이다. 노진우(경영대 경영20) 씨는 “기존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후 은행 간 모바일뱅킹 경쟁이 치열해진 것을 체감했다”며 “매일 이자를 줘 청년층의 관심을 끌었던 토스뱅크의 입출금통장과 같이 청년 모바일뱅킹 이용자를 겨냥한 상품이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소비자의 선택지가 는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권흥진 연구위원은 “경쟁이 심화되면 ‘금융소비자 보호법’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일단 팔고 보자’ 식의 유인을 만들 수 있어 소비자 보호가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불완전 판매: 금융사가 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판매원칙을 지키지 않거나 허위·과장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오인하게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예대마진: 은행이 대출자에게서 받은 이자와 예금자에게 지급한 이자의 차이.

 

글 | 이경준 기자 aigoya@

사진 | 한희안 기자 onefrea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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