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답안지와 원고지, 자기소개서 등 채워나가야 하는 여백들은 항상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강의가 지루할 때 빈 연습장 한쪽에 재미로 그린 만화 주인공이나, 빈 편지지에 좋아하던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써 내려갈 때는 오히려 빈칸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나 과제, 포트폴리오 같은 것들은 합격과 탈락, 정답과 오답,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지양해야 하는 표현과 지향해야 하는 표현을 고심해 단어와 접속사, 조사를 조합하다 보면 한 글자를 쓰는 것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미혼이라는 내 상태도 그렇다. 내 나이 서른, 어제만 해도 함께 소환사의 협곡을 누비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밥 먹자는 연락을 핑계로 청첩장을 안겨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변인들의 결혼 여부 빈칸이 채워질수록 내 빈칸은 도드라져 보인다. 미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자가, 자차, 목돈, 명품 ···. 무수한 체크리스트의 빈칸들은 나의 30년을 초라하게 만든다.

  다행인 건 빈칸들이 주는 나름의 설렘이 있다는 거다. 결정되지 않은 상태의 설렘 말이다. 나는 누구랑 결혼하게 될까? 어떤 차로 어디를 가게 될까? 어떤 아파트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아마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의 빈칸을 채울 무렵부터, 우리는 이 빈칸들을 먹이 삼아 꿈을 꿔 왔을지 모른다. 빈칸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했다. 이미 채워져 한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칸들에는 나의 소중한 시간과 그 칸들을 채우기 위해 했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 빈칸에 잡아먹히지 말자고 다짐한다.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는 빈칸의 무한한 가능성 중에서, 한 개의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제각기 다른 문제의 OMR 카드를 채워가고 있다. 빈칸이 있어서 신경 쓰이더라도 다른 문제를 풀고 와서 채워도 된다. 이 시험의 제한 시간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다. 미처 채우지 못한 빈칸의 존재감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미 채운 나름의 정답들을 보면 된다. 한순간의 실수든, 고심 끝의 결정이든 인생의 선택들이 모여 당신의 인생을 그 나름대로 채우고 있을 테니 말이다. 마치 한 폭의 점묘화처럼.

 

<밴달, 팬텀 그리고 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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