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유산위주의 전시에서 탈피해 활력 넘치고 가변적인 무형문화유산을 포함해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든다면 더욱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박물관과 무형문화유산(museums and intangible heritage)'을 주제로 한 제20차 세계박물관대회의 기조연설에서 임돈희(동국대 사학과)교수가 발표한 내용이다. 지난 2일(토)부터 8일(금)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130여개 국가에서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개최됐다. 1946년 창설된 ICOM은 유네스코의 협력기관으로 박물관의 현안 논의와 국제적인 협력 촉진의 역할을 하며 3년마다 총회를 갖는다.

이번의 서울 총회는 유네스코가 지난 해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채택한 이래 처음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관심을 더했다. 협약에 따르면 무형문화유산은 집단공동체에 의해 환경에의 대응 및 역사적 교류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물질문화와 문화적 공간에 이르는 범위를 포함하며 공유하는 집단에게 정체감과 연속감을 제공한다.

이처럼 무형문화유산은 인간문화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상징하며 유형문화유산을 생산하는 바탕이 되지만 그동안 유형문화재에 비해 소홀히 다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한국에서 무형문화유산을 주제로 총회가 열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며 “한국은 무형문화유산 보호와 보존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왔다”고 평가한다. 그 예로 우리의 ‘인간문화재’ 제도가 유네스코 제142차 집행위원회에서 무형문화유산 보존에 권장할 만한 것으로 채택된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무형문화유산 보존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인가. 스미소니안 연구소 민속박물관장인 리처드 커린 박사는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데 박물관보다 더 나은 기구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박물관이 기술을 축적하고 여러 자원을 이용해 문화적인 다양성과 전통의 연속성 및 문화적 창조성을 증진시키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커린 박사는 무형적 성격을 최대한 보존한 박물관으로 국립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의 예를 제시한다. 이 박물관은 공개 전시 공간 외에 제 3의 건물에 문화자원센터를 건립해 이곳을 방문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개인적으로 유물을 연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커린 박사는 이를 새로운 박물관 상으로 제시하며 제 4의 박물관으로 일컫기까지 했다.

한편 박물관 무형문화유산 보전 방법에 대해 ‘박물관, 무형문화유산, 그리고 휴머니티 정신’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 마키오 마츠조노 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장은 “개인적· 사회적 정체성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된 무형문화유산은 언제나 역동적”이라며 “무형문화유산을 기록할 때는 그것의 살아있는 특성을 간과해선 안 되며 같은 문화유산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존될 수 있음을 분명히 설명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성문법이 융통성을 발휘하던 관습법을 대체하면서 혼란이 야기된 케냐의 경우를 상기시키며 무형문화의 특징을 배제한 채 고정된 기록만을 중시하는 데 따르는 문제점을 경고한 것이다.

이처럼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논의된 이번 서울세계박물관대회는 세계무형문화의 실질적인 연구와 교류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한 이 논의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박물관은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요, 무형문화유산은 문화의 다양함과 생동감을 제공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에 따르면 "박물관(meseum)은 예술의 여신 뮤즈(muse)의 전당이란 뜻이지만 뮤즈의 어머니는 기억의 여신 므시모시네(mnemosyne)”로 “박물관은 이제 뮤즈의 전당에서 므시모시네의 전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예술의 전당에서 기억의 전당으로. 세계화와 다원주의의 물결 속에서 박물관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그 근저에는 무형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기억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재창조할 힘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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