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원에서 다양한 종족의 고산족 아이들과 생활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종족별로 존재하는 다채로운 문화와 언어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귀로 통해 듣는 것보다 눈으로 현장을 바라보고, 직접 체험하는 것이 더욱 탁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었다. 그러던 차에 훈련원의 총 책임자인 김성희 선교사가 아이들의 부모들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더불어 고산족 마을을 다니면서 치약, 비누등 위생용품을 나눠주는 일을 한다고 해 나 역시 가정 방문에 동행하게 됐다.
 
제일 먼저 찾아가게 된 곳은 ‘치완’ 이라는 학생의 마을이었다. 현재 훈련원에는 아카족, 라후족, 리수족, 몽족, 카렌족 등 5개 부족 출신의 아이들이 40명 가량 있는데 치완은 이 중 몽족 출신의 유일한 학생이다. 몽족은 태국 북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고산족 중 카렌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산족인데, 메오(Meo)족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의 조상은 중국의 남부지역인 원난성에서 왔다고 하는데, 실제로 얼굴을 보았을 때도 남방민족의 이국적인 느낌보다는 북방민족의 기질이 흐르는 느낌이 든다.

치완의 마을은 라오스와 태국이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는 국경지역 근처인 치앙콩(Chiang Khong)이란 곳에 자리 잡은 산족 마을이다. 훈련원에서 치앙라이까지 가는 길은 도로가 깔려있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지만, 치완의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길의 요철이 너무 심해서 머리를 자동차 천정에 부딪치면서 몽족이 사는 마을로 향했다.

2시간 정도 걸려서 치완의 집에 도착했다. 처음 몽족 마을에 당도했을 때,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책으로 보았던 산족의 마을과는 달라 여러 의문이 들었다. 특히, 고산족들은 대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는데, 더운 기온 때문인지 집의 바닥을 땅에서 일정 거리를 띄운 채 만든다고 들었다. 하지만 치완의 집을 비롯해 다른 몽족들의 집들중에서도 그런 모양새를 한 집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우리나라의 초가집 마냥 벽을 토담으로 쌓고 땅 위에 바로 집을 세운 모양새였다. 나중에 선교사는 그것이 몽족 특유의 가옥을 짓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내가 알던 사실과 다른 모습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후에 설명을 듣고 그들의 주거방식을 알고 나니 한국의 시골에서 보던 집과 비슷하단 느낌이 들어 외려 친근감이 들었다.

치완의 부모는 일을 하러 밭에 나가서 바로 뵐 수는 없었다. 대신 조카들과 동생들 대 여섯명이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이 나를 또 놀라게 만들었다. 나의 편견이 또 한 번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전까지 고산족들은 문명의 이기와 떨어진 생활을 하며 전기나 수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풍족한 생활은 아니지만, 산족들의 일부는 전기와 수도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훈련원과 같은 기관을 통해 교육을 받거나 태국의 정식 학교의 교육을 어느 정도 받으면 행정적으로도 태국 국민으로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나의 생각과는 다른 풍경들이 끊임없이 다가오자 당황한 나는 혼자서 마을을 잠깐이나마 둘러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한 손에는 사진기를 들고 마을 안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마을은 위치만 산 중에 있을 뿐이지 여느 시골 마을의 풍경과 다름이 없어보였다. 몇 가지 물건들로 가게의 구색을 갖추고 있는 곳도 한 군데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모습을 신기하게 둘러보면서 사진기를 들고 자신들의 모습을 담아가는 이방인을 한 번 쓰윽 쳐다보고는 다시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사실 몽족의 마을에서 내가 이색적으로 기억에 남을 어떤 것을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산족의 마을을 방문하면서 나는 스스로 큰 반성을 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됐다. 나는 고산족의 마을을 방문하기 전 이들의 생활과 모습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내 머릿속에서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 부분 왜곡되고, 나의 기준에서 재단 돼버리고 말았나. 몽족 마을을 다녀온 후 나는 직접 목도하고 경험하기 전에 나만의 판단으로 타인의 판단해 버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달았다. 게다가 내가 항상 부대끼고 함께 생활해야하는 이들은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생활해온 이방인들이 아닌가. 가정 방문을 마치고 몽족 마을을 내려오면서 나는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풍경들에 내 기준으로 판단을 하며 미리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눈으로 직접 현장을 보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견 없는 눈을 길러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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