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내 몸에 온전치 못한 곳이 있다는 이상 신호이다. 때문에 통증으로 인한 아픔은 단순히 견디기 어렵고 괴롭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아픈 곳을 치료해 달라는 자가 신호로서 긍정적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끼면서도 치료를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내 몸의 이상신호가 신호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그리고 결국에는 아무리 열심히 이상 신호를 보내도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해낼 수 없기에 우리의 몸은 신호 보내기를 멈추고 만다. (너무 비유적으로 쓴 느낌이 드는데, 우리 몸의 통증에 대한 처방과 치료가 없이 그대로 방치만 해둔다면, 결국 그 아픔에 무디어져서 아픔조차 느끼지 못한 채 만성적으로 병을 안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곳에서 아픔에 너무도 무던해진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일전에 고산족 중 하나인 라후족 마을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이 계획돼 라후족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들과 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의 일정 중에 포함되는 활동 중 하나는 의료 활동이었다. 물론 현재 훈련원에는 장기간 의료 봉사만을 목적으로 계신 의사나 간호사는 없어서 의료 활동이라고 해봐야, 선교사의 간단한 진찰과 마을 사람들이 토로하는 자각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비상약들을 준 것이 전부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나누어 주는 몇 가지 비상약들이 평소에는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자신들의 아픔에 대해 들어주고 처방을 내려주는 이들이 없었던지라, 의료 활동을 계획한 날 당일에는 정말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치아가 누렇다 못해 검게 삭아버려 더 이상 치아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된 할머니, 몸의 사지는 너무도 가늘고 빈약한데 유난히도 배가 두툼하게 부어올라있는 어린 아이, 귀가 계속 아프시다길래 귓 속을 살펴보는 의료 기구를 사용해 안 쪽까지 살펴봤더니 피고름이 엉겨 붙어서 곪아가고 있는 할아버지 등등 진료와 보살핌이 너무도 절실한 이들이 우리들을 찾아왔다.

 그런데 그들에게 약을 주고 몇 가지 처방들을 내려주면서 내가 눈여겨 듣고 본 것은 ‘아픔’ 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었다. 내가 봤을 때는 정말 통증을 크게 호소해야만 할 것 같은 상흔들과 병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파온 기간도 짧으면 한두달, 길면 몇 년들이었음에도 자각증상을 이야기하는 그들은 전혀 아픈 사람들 같지 않게 느긋해보였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마 그들은 자신들 몸의 통증에 대해 무던해져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약으로 치료를 하기보다는 (사실 치료를 받을 기회도 적거나 없지만) 단지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않을 때까지 참아내는 방법을 익혀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태국은 의료 보건 서비스가 낙후한 편은 아니다. 현재의 정책으로는 태국 국민으로 증명되는 주민등록증이 발급됨과 동시에 의료보건카드가 지급되는데 그 카드를 사용하면 태국의 국립병원에서 30바트(바트는 태국의 화폐단위, 1바트는 대략 한화 30원 정도)의 비용으로 대부분의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물론 적용대상에서 벗어나는 질병들도 있다) 이런 사정임에도 사실 이 정책은 태국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태국 북부의 소수민족인 고산족들에게는 전혀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그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정책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에게 위에서 언급한 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그들을 모두 태국 국민으로서 인정을 해야하는지의 여부가 걸린 다소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소수민족이기는 해도 태국 국경 내에서 생활을 하는 그들에 대한 태국 정부의 좀 더 큰 관심과 보호 및 배려의 정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아픔을 감내하고 그것에 무던해지는 것은 결코 ‘인내’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체념’의 침묵인 것 같았다.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 권리, 건강한 삶을 영위할 권리가 보장될 때에 그들은 자신들의 몸이 보내는 아픔의 호소에 온전히 반응하고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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