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장으로 취임 후 중앙광장을 조성했습니다. 중앙광장을 만들게 된 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2005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재단에서 200억원을 출연하면서 시작한 사업입니다. 착공 당시 학교 대운동장의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캠퍼스에 자동차가 가득해 면학 분위기가 흐려지는 데다, 도서관 시설이 부족해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대운동장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전문가들과 상의해 마스터플랜을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기존 안암캠퍼스의 축인 본관, 서관, 대학원도서관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축이 될 수 있는 건물을 구상했습니다.

그 결과 광장을 조성해 지하에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 광장 왼쪽에 백주년 기념관을 짓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개교 120주년을 기념해 중앙광장 오른쪽에 루브르박물관의 피라미드처럼 석조건물이 아닌 첨단의 초현대식 건물을 짓고 싶습니다.

일반 학생, 교수들도 중앙광장을 재단에서 지었다는 걸 잘 모를 것입니다. 인촌 선생이 그랬듯 우리 재단은 앞에 나서서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뒤에서 조용히 학교 운영을 돕는 전통이 있습니다. 재단에서 홍보할 수도 있겠지만 조용하게 실천할 뿐이고, 저도 그렇습니다. 

△ 재단은 100주년 이후의 학교발전을 위해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고려대학교는 이용익 선생부터 손병희 선생까지 제1단계와 인촌 선생이 인수한 다음 지금까지의 민족고대로서 정착된 제2단계를 거쳐 왔습니다. 이제 제3의 도약을 이뤄 민족고대 100년에는 세계고대 1000년으로 가야합니다. 2005년 5월 민족고대를 마감하고, 금년이 새천년의 원년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 하드웨어는 이 정도로 하고, 소프트웨어를 강화해야 합니다. 가령 가난하지만 유능한 학생들을 위해 어떻게 장학제도를 개선시키느냐, 그리고 교수들에 대한 연구비를 어떻게 평가해 지원하느냐 등의 문제 말입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재단은 100주년 행사가 어느 정도 마쳐지는 금년 하반기에 발전위원회를 다시 설치할 계획입니다.

예전에 고대 발전위원회가 있었지만, 재작년에 총장 선임문제 때문에 위원회를 중단했습니다. 당시 이준범 전총장이 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해서 여러 의견이 나왔고, 나는 이사장이지만 위원회의 자율성을 위해 전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장기 발전계획과 장학금 지급, 교수 연구지원 및 평가방안을 마련해 내실있는 학교 발전을 도모할 계획입니다. 학교와 재단이 합심을 해야지 않겠습니까? 진정한 고려대학교의 글로벌화를 위해 이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 측면에 치중해 세계 수준의 대학을 위해 교수들의 연구비지원과 학생들의 장학지원에 힘쓰겠습니다.

   
△건물같이 하드웨어적인 것 외에 재단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재단은 440억원의 기부금을 유치해 백주년 기념관을 오는 5월에 개관해 고대에 헌정할 예정이고, 녹지캠퍼스에 262억원을 들여 다목적 종합체육관을 지난 가을부터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단이 학교나 학사운영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도 중요한 것은 보고를 듣습니다.

학교를 위해서 뭔가 큰 덩어리의 내용을 해야지, 깊이 들어가면 학교 운영에 관여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이러한 형태는 좋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아웃라인만, 큰 그림만 제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재단에는 학교의 중요사항을 논의 결정하는 이사회가 있고, 산하에 사무국이 조직돼 기본 재산의 관리와 각종 수익사업을 개발 운영합니다.

△ 현재 후생복지기금은 재단에 전입됐다가 전출금으로 재투자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내 수익사업 기금을 운영하는 데 있어 재단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과거 관련 법률에서는 재단은 수익사업이 법적으로 허용이 됐고, 학교는 수익사업을 법적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래서 재단을 통해서 학교에 돈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돈이 직접 오가는 것이 아니고, 서류상으로만 오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랬을 때 재단의 이점은 학교에 주는 전입금의 수치가 약간 올라가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없앴습니다.  관련법이 바뀌었기 때문에 작년말부터 대학 후생복지사업을 독자적인 사업자로 등록해 회계처리토록 했습니다. 그래서, 후생복지부에서 시행하는 학내 수익사업 기금은 재단과는 완전히 별개로 학교에서 관리합니다.

 △ 최근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립학교법은 위헌소지가 있고, 악법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사립학교법 개정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재단에서는 학교를 간섭하거나 ‘이 학교는 내 꺼다’라는 식의 소유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대는 사립학교 연합에 가입도 안했고, 심지어는 박홍 전서강대총장이 동참하자고 할 때도 난 안했습니다.

최근에는 대학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에도 투자하는 학교재단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재단은 재단 소속의 중앙중학교에 60억원을 투자해 교사(校舍)를 새로 지었고, 중앙고등학교의 2008년 개교 100주년을 위해 150억원을 들여 체육관, 정보관을 건설중입니다.  법이 통과되든 안 되든 나는 용기를 갖고 학교 발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촌선생의 교육이념입니다.

△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해방이 됐습니다. 해방되던 날 고창 조그만 읍내에서 중학생들의 시가 행진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인 저는 그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뜻도 모르는 노래를 배웠는데, 알고 보니 그게 ‘적기가'였습니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중학생중에 김길삼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읍내에서 40리길인 무장면에 있는 그 친구 집에서 밥 한끼 얻어먹고 곤히 자는데 길삼이랑 매형이랑 다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길삼이 매형이 ‘저놈은 반동이니 죽여야 한다’고 했고, 길삼이는 엉엉울면서 ‘아니다. 살려주라’고 해서 살았습니다. 그때 만약에 김길삼이가 '저놈 반동맞소'하면 난 죽는거였습니다. 그 당시는 패전한 일본 군인에 미군 좌익 우익까지 시골도 상당히 혼란스러워습니다. 그렇게 죽을 뻔한 경험과 더불어 몸소 밑바닥 인생을 터득했습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학교에는 여학생도 없고 정말 막걸리 고대였습니다. 하루는 졸업사진을 찍는다고 짚차에 11명이 타고 이화여대를 향했습니다. 그런데, 안암동 로타리에서 버스를 피하려다가 그만 굴러떨어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전 외환은행장을 지낸 홍세표씨가 같이 있었습니다.

△ 재단이사장님이 기억하시는 인촌, 일민 선생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인촌선생은 내가 볼 때, 인자하시고, 온화하시고, 다정다감하시고, 손자로서 그런 기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매사에 엄격하셔서 난 무서워했습니다. 아마 우리 아버지가 장자(長子)기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엄격히 교육받고 자란 탓 일 겁니다. 또 우리 아버지는 나를 그런 식으로 교육시킨거죠. 내 동생한테는 안 그랬습니다. 그것이 장자를 훈육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 평소에 즐기는 취미생활은 무엇입니까?
-저는 ‘소리’를 아주 즐깁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당시에 돈화문 건너편에 있던 국악원에서 국악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소리랑 피리, 꽹과리 등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습니다. 한이 맺혀 오장육부에서 나오는 소리를 술 한잔을 치면서 하곤 합니다. 국악 발전을 위해 1980년에 국악중학교를 만들었고, 1991년에는 극단 미추와 소리꾼 200여명을 데리고 구소련의 11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국악극 ‘아리랑’을 공연했습니다. 한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저녁을 먹여주면서 국악공연을 보고오라고 채근하곤 했습니다.

△학내구성원들에게 당부의 말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2005년은 고려대학교가 개교100주년을 맞는 해이자 우리 고대가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학교와 교우회, 그리고 재단의 노력과 투자, 관심에 힘입어 이제 고려대학교는 국내 최고의 교육시설과 가장 쾌적한 교육환경을 갖추게 됐습니다. 특히 어윤대 총장을 중심으로 학교 구성원들이 노력해 학교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우리 고대 가족 모두는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에 안주하지 말고 모두가 변화와 개혁에 앞장서야 합니다. 교수님들은 각 학문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문적 성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학생 여러분들은 국제 감각과 정보화 능력을 두루 갖춘 지구촌의 리더가 되도록 힘을 다해야 합니다. 최초의 모교출신 이사장으로서 부끄럼이 없도록 학교 발전을 위해 나도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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