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에서 일했던 할머니들을 돕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999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던 중 성매매와 관련된 논문을 쓸 기회가 있었다. 그 계기로 기지촌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마침 평택에는 경기 북부 지역과는 달리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이 마련돼있지 않아 2001년 평택에 햇살 센터(이하 센터)를 짓게 됐다.

△센터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정부 지원은 없나.
-처음 센터를 짓기 시작할 때부터 회원들의 회비와 성금으로만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들을 모시고 사는게 아닌 쉼터의 개념이기 때문에 정부에 신고를 하지 않아 정부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센터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할머니들이 젊은 시절 받았던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고자 전문 강사들을 초빙해 미술치료, 춤치료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병원들과 연계해서 할머니들에게 무료 치과 진료를 실시한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자원 봉사자들은 치매나 우울증에 대한 건강 강연 및 상담을 해주고 있다. 안정리를 비롯한 송탄 지역의 혼혈아동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기지촌에서 일하다가 나와 다른 일을 하시는 할머니들이 있나.
-현재 평택 지역에 기지촌에서 젊었을 때부터 일했던 80명 정도의 할머니들이 계신다. 정부 보조금보다 기지촌 클럽에서 일을 하는 게 그나마 그나마 더 많을 돈을 받을 수 있어서 지금도 기지촌에서 일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많다.

△센터를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
-센터 활동을 하면서 할머니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해 섭섭함을 토로하시는 할머니들을 볼 때 힘들다. 또 할머니들을 위해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싶은데 경제적 여건에 한계가 있어 다 하지 못할 때가 아쉽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자원 봉사자들의 사랑과 열정이 나를 활기차게 한다. 두 세 시간을 넘게 걸려 찾아와 도움을 주고 있는 봉사자들이 많다. 또 센터에서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때 힘이 난다. 작년 12월, 34년 전 입양 보냈던 아들과 재회해 기뻐하시던 배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현재 할머니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
-2003년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라 동두천, 의정부 등에 있던 미군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했다. 이 때문에 부대 인근의 주택 수요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집값이 상승해서 35만원 정도의 정부 보조금으로는 방세를 내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임대 아파트 등의 형태를 통해 할머니들의 주거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
-기지촌 할머니들은 한·미 양국의 정치적 상황에 의한 시대의 희생양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주한미군 재배치로 늙어서도 쫓아내는 격이 되고 있다. 여성부에도 기지촌 할머니들을 위한 제도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이들을 위한 보상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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