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역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15분정도 들어가면 '안정리'라는 동네가 나온다. 여느 시내와 다를바 없이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닌다. 이런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이곳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는 외국인들 때문일 것이다. 이 마을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앞으로 용산기지의 이전으로 더욱 확장될 K-6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그리고 부대 앞에는 어김없이 미군들을 위한 '기지촌'이 있다. 기지촌, 그곳은 여성들의 고통스런 숨소리에 침묵을 강요했던, 역사의 그늘이 서린 곳이다. 기지촌을 둘러보기 전에 평택의 '햇살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기지촌 클럽에서 일하다 나이가 들어 일을 할 수 없게 된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이다. 단 한푼의 정부지원 없이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만 운영하는 이곳은 센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마침 설을 맞아 할머니들에게 떡과 고기를 나눠주기 위해 한 자원봉사자가 와 있었다.

할머니들에게 전달할 음식을 들고 센터를 나서자 새로 지은 듯한 빌라들이 보였다. 깔끔하고 세련된 외관이 센터를 찾아오면서 봤던 낡은 상점들과 상당히 대비됐다. 용산기지가 이전되면 미군들이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그들을 위해 땅주인들이 새로 지은 것이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 미군가족이 차를 타고 빌라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기지촌 할머니들 사이에서 총무할머니라 불리는 분이 "돈 있는 사람들이 원래 있던 집 없애고 비싼 건물을 지어서 우리가 살 곳이 없어" 라며 한탄을 한다.

음식을 실은 차가 센터에서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클럽들이 늘어선 골목에서 선다. 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는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기 위해서이다. 기지촌 할머니들은 정부지원금 월 2~30만원 으로는 방세 내기도 힘들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클럽에서 일을 하고있다. 민간인은 클럽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총무할머니가 클럽안에 들어가더니 할머니 한 분과 함께 나오신다. 음식을 받은 할머니는 너무도 고맙다며 몇 번이고 인사를 하신다.

클럽가에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니 낡은 집들이 나온다. 한눈에 보기에도 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집들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한 할머니께서 나오신다. 연탄과 낡은 방 한칸이 눈에 들어온다. 집을 나서면서 총무할머니는 "너희들 연탄 봤지? 이렇게 산다. 정말 살길이 막막해" 하시며 집 앞에 새로 짓는 빌라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신다. 한때 '달러를 버는 애국자'라 치켜세우고 미군들을 위한 매너교육까지 실시하며 여성들의 성매매를 부추겼던 정부가 이제는 그들의 최소 생계조차 외면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자 클럽들이 간판의 불을 켜면서 화려한 기지촌이 드러났다. 버스에서 내릴 때 봤던, 낮에는 지극히도 평범했던 그 거리였다. 이제 일 할 준비를 하는 것인지 짧은 치마에 야한 옷차림을 한 여성들이 눈에 띈다. 최근에는 기지촌 여성중 30%만이 한국여성이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러시아나 필리핀등 동남아 여성이라고 한다. 
기지촌의 또다른 세태이다. 이들은 대부분 개발도상국의 여성으로 돈을 벌기 위해 위해 브로커를 통해서 단체로 입국을 한다. 그러나 입국한 후에는 여권을 뺏기고 기지촌에 팔려오는 것이다.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업주에게 임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여성의 고용은 브로커가 업주에게 여성들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업주는 여성들의 임금을 브로커에게 지불하는데, 브로커는 그 임금을 여성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여성들은 성매매나 주류판매에 따른 수수료만을 받으며 일을 하는 것이다.

   
클럽주변에는 모텔이나 호텔이 굉장히 많다. 그곳에서 흔히 '2차'라고 하는 성매매가 이뤄진다. 기지촌의 클럽은 다른 클럽들과는 다른 또 하나의 모습을 갖고있다. 그것은 1층으로 된 클럽 위에 또 다른 건물이 붙어있는 것이다. 클럽과는 별도로 일반 건물처럼 보이는 그것은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서 '위층'이라고 불린다. 아예 클럽 내부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는 것이다. 포주가 여성들에게 "위층으로 가라"고 말하면 여성들은 무조건 미군들과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 기지촌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 대상이 한국여성에서 외국여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외향은 많이 변하였어도 여성들의 인권에 있어서는 시간이 멈춰버린 곳. 그곳이 기지촌이다.

기지촌의 가장 번화가처럼 보이는 거리를 따라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그리고  ?We love USA army -all of the residents-‘ 라고 쓰여져 있는 현수막이 가운데에서 펄럭이고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미군들의 폭력과 포주들의 횡포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여성들이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모르는 듯이 말이다.

이곳은 미군들 세상이다. 한국정부의 보호 아래서 그들은 자유롭다. K-6부대 앞을 지키는 사람도 다름아닌 대한민국 군인이다. 언론에 노출되기 꺼려한다는 할머니들과 달리 기지촌의 미군들은 사진 촬영도 흔쾌히 허락했다. 아예 포즈까지 취할 정도다. 자신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정부권력과 폭력으로부터 부끄러워지는 곳. 그곳이 기지촌인 것이다.

SOFA에는 기지촌 여성에 대한 보호조항이 없다. 또한 우리사회는 아직도 기지촌에 대해 회피하려고만 하고있다. 이런 무관심과 무대책 속에서 오늘도 기지촌의 클럽거리는 화려하게 깨어나 미군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 줄 것이다. 그리고 클럽의 여성들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악몽 속에서 눈물을 닦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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