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온 헤레나(Helena, 가명)씨는 마석 가구단지 뒤에 있는 성생 공단에서 5년째 사출 제조업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주·야간에 걸쳐 하루 13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지만 한 달 임금은 고작 75만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 이주노동자에 비해서도 10만원 가량 적은 금액이다.

1991년 입국해 가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베티(Betty, 가명)씨는 1998년 한국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 신세에 IMF 사태로 인해 경기까지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아이를 양육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700달러를 들여 아는 사람을 통해 아이를 본국으로 보내야 했다. 베티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낳은 지 한 달로 안돼 피붙이와 생이별을 해야 했던 때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외국인 고용허가제(이하 고용허가제) 실시로 인해 올해 3월에 체류 기간이 만료되는 리사(Lisa, 가명)씨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과 사별한 후 두 자녀를 혼자 양육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한국에서 더 일하고 싶지만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한국에 일하러 들어올 수 없다는 생각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처럼 우리나라로 이주해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임금 △의료복지 △성차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이하 외노협)에서 이주노동자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들은 월 53만원에서 100만원 사이의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이는 남성 노동자들에 비해 평균 30% 정도 낮은 임금 수준이다.

여성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출산?생리 휴가 등은 꿈도 꿀 수 없다. 업주들이 월급을 체불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그들의 노동 현실은 열악하다. 일을 하던 중 노동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 6개월부터 출산 후 2개월까지 일을 할 수 없고 출산 후 다시 일을 다시 찾기도 힘들다. 산모가 불법체류자일 경우 아기를 1개월 내에 본국으로 보내지 않으면 자동으로 아이가 불법 체류자가 된다.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자식을 제대로 길러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여성 이주노동자는 전체 이주노동자의 37%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등 최근 이주 노동자의 여성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구조적으로는 여성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루트가 늘어났지만 그만큼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작업장 내 성폭력이나 성 산업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외노협 통계에 따르면 이주 여성의 12.1%가 직장 내 성폭력을 경험했고, 10.9%가 성매매 관련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또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아무런 대책 없이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거나 피해 사실을 알림으로써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고 밝혔다.

정숙자 외국인 노동자 여성센터 소장은 “이주 노동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용허가제의 개정이 절실하다”며 “80%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인 관계로 그 신분상 불안정에 때문에 각종 인권 침해를 당해도 제대로 호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해 8월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권한이 사용자에게만 있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작업장 이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등 사용자 중심의 법률 구조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외노협 고기복 사무국장도 “장기적으로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실시해야 한다”며 “고용허가제가 법의 적용을 받는 이주 노동자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 여성노동자들은 정부의 미비한 이주 정책과 일반인들의 편견 속에 2중 3중의 차별을 받으며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라도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국제적 기준에 맞는 노동 허가제를 실시하고 성폭력 특별법, 생리 휴가 등의 제정으로 이주 여성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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