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시인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이다. 백석의 사랑을 받았던 이 시의 나타샤. 그 주인공은 1999년 타계한 기생 김영한이다. 요정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김씨는 백석의 시가 빛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의 연인으로 세상에 걸어 나왔다.
그녀가 기생의 길로 들어선 것은 열여섯살 때로 집안이 몰락한 뒤 조선 권번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녀는 해관 신윤국의 후원으로 도쿄에서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유학 중, 신윤국이 일제에 의해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의 면회를 위해 함흥으로 향한다. 김씨는 유력인사를 만나 특별면회를 부탁하기 위해 함흥권번에 들어간다.

김씨는 끝내 스승을 만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함흥영생여고보의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백석을 만나게 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여의 동거를 했지만, 백석이 만주로 떠난 후 영영 이별하게 된다.
백석 시인이 지어준 이름 ‘자야’로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그녀는 현재 백석의 연인을 뛰어넘어 많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천억원대의 부지와 건물을 당시 길상사 회주였던 법정스님에게, 122억원을 카이스트(KAIST)에 기증한 것이다. 창작과 비평사는 그녀가 기증한 2억원으로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백석이 죽으며 시를 남긴 것처럼, 그의 연인 자야도 많은 것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한 시인의 연인이자 사회의 기증자인 그녀는 기생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바꾸며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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