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서술하는 방법론으로는 크게 거시사적 서술방식과 미시사적 서술방식이 있다.

거시사와 미시사를 구분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은 그 연구범위에 있다.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한 사회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법률 등의 부문은 ‘역사’를 서술하는 데 기본적인 소재가 된다. 거시사적 서술은 이 부문들 중 다른 영역의 변화를 결정하는 데 최대의 영향력을 끼치는 정치?경제 체제를 중점으로 사회적 흐름을 주로 서술한다. 미시사적 서술은 이 모든 영역, 구체적으론 거시사적 관점에서 배제되거나 축소?왜곡될 가능성이 있는 영역들을 다룬다. 더 넓은 범위에서 살펴본다면 거시사는 사회적 강자, 역사적 지배층 중심의 역사를, 미시사는 민중의 역사, 구조 속에서 소외된 이들의 역사를 기술한다.

거시사는 역사적 흐름의 연속성, 총체성이란 연장선 위에 개별적인 사건들, 즉 연구대상을 적재적소에 놓는 과정을 거친다. 헤겔의 경우 ‘자유의 의식에 있어서의 진보’란 전체 역사흐름을, 맑스의 경우 ‘공산주의 사회로의 도러란 역사목표를 설정하고 특정 사건들을 일정한 연결고리를 통해 연관관계를 성립시킨다. 반면, 미시사에서는 <키스의 역사>, <커피의 역사>, <수레의 역사>와 같은 특정 세부영역, 혹은 갈릴레이의 법정 재판과 같은 개별적인 사건들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이런 하나의 구체적인 부문을 통해 사회전체, 인간역사 전체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려 한다.

거시사는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역사이념’이란 틀을 제시한다. 거시사는 역사학이 그만의 학문성을 가지기 위해 갖춰야 하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방법론으로 ‘일정한 구조’를 제시한다. 그래서 역사학이 자칫 ‘개별적인 사실들의 나열’이나 ‘비실증적 학문’이 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거시사의 특성은 전체 사회의 지배적 담론 서술에 그칠 우려를 내포한다. 소규모의 특정역사, 그만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통시적, 공시적 시각을 기술하지 못해 인간역사의 실재에 가장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이다.

미시사는 소작농들의 삶, 18세기 어느 재단사의 삶 등 특정한 영역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거나, 실명을 가진 한 사람의 인맥, 행정서류, 생활 거슬러 올라가 이런 현상을 가지게 한 사회를 바라본다. 이런 사회상 속에서 인간역사의 의미를 찾는다. 미시사는 지배적인 담론에서 벗어나 인간 개인, 혹은 소외된 영역의 목소리를 밝혀 명확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미시사가 서술하려는 특정부문은 사회의 일부분, 역사 진행의 한 부분으로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서술에 그칠 우려가 있다. 이는 전체 역사 흐름을 제대로 도출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거시사에서도 개별적인, 특정한 사건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 활동을 포함해 ‘미시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설정한 틀을 구성하기 위해 ‘소재’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현상의 연속성, 총체성을 고려해 역사를 서술하지만 정작 특정부문만의 주체성을 가진 역사는 거대 담론 속에 소외되기 쉽다. 헤겔의 경우, 모든 개별적인 사건을 ‘이성의 자유로 향한 활동’이란 틀에 집어넣고 인간행위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사건들, 우연적인 일들을 ‘이성의 간계’라 일컬으며 그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키지 않았다.
거시사와 미시사는 역사연구에서 대립되는 연구방법이 아니다. ‘인간역사의 실재에 어떻게 가까이 접근할 것인갗하는 역사서술의 공통된 문제에 대한 역사가들의 끊임없는 고민 끝에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들은 역사학 연구에 있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8.7매 김성엽 기자 dy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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