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이 모든 것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사람들은 우리의 진실한 역사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치즈와 구더기>에 나오는 문구다. 미시사가들은 진실한 역사를 파헤치려 노력한다. 예컨대, 소작민의 편지에서 19세기 독일의 소작민들의 삶을 읽어내고 17세기의 재판 판결 기록을 통해 당시의 농민들의 역동적인 삶을 조명하기도 한다.

1970년대는 회의(懷疑)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근대화와 산업화가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업과 빈부격차는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었으며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진보하는 줄만 알았던 역사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근대적 사고방식이 근대적 사고가 발전만큼 폐해를 가져오게 되자 그것에 근거한 구조주의적 사학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시사(微示史)가 탄생했다. 미시사를 선구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치즈와 구더기>의 저자 카를로 진즈부르그(Carlo Ginzburg) <마르땡 게르의 귀향>을 쓴 나탈리 지몬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 그리고 까를로 포니(Carlo Poni)와 지오반니 레비(Giovanni Levi) 등이 대표적이다.

미시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역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연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밀하게 관찰하면서도 그 연구대상의 범위는 넓게 잡는다. 미시사에서 강조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의 가능성이다. 이전의 역사연구 방식이 지나치게 실증적이었던 반면에 미시사에서는 역사의 넓은 가능성을 인정한다. 따라서 미시사의 연구서를 보면 마치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한 미시사에서는 고립된 개인이 아닌 사회적 관계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역사를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사회의 관계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연구한다는 것이다. 미시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문화 인류학적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어떤 사회 집단에 편입돼 그것의 문화를 파악하는 인류학자처럼, 사료를 파악하면서 당시의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복원시키려 노력한다. 이는 이전의 연구 방법에서 사료의 수량이나 계량적인 측면만을 강조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양적인 면보다는 질적인 면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미시사는 문화사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미시사는 사회의 ‘작은’ 사람들, 즉 엘리트가 아닌 하층민에게 주목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적다는 이유로, 글을 쓰거나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료의 통계자료나 익명으로만 취급되던 민중들의 역사를 중심으로 끌어낸다. 이 때문에 미시사를 연구하는 역사가 중에는 맑스주의 학자들이 많았다.

신선한 연구 방법으로서의 미시사는 지금까지 주목되지 못했던 실재의 삶을 탐색하도록 해주지만 그 자체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미시사 연구에서 사용하는 인류학적 방법이 과연 역사를 서술하고 사료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타당한지, 그리고 사료 속에서 역사적 가능성을 찾는 과정에서 잘못 해석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역사 연구에 많은 사료가 필요치 않다고 보는 미시사의 관점처럼 소수의 사료가 과연 그것의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지, 비분석적이고 수사적인 이야기체로 서술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이 미시사가 발전하기 위해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한편 한국에서도 예전에 미시사와 비슷한 역사 사조가 있었다. 사학을 연구하면서 민중의 활동에 주목한 사학자들의 연구가 그것이다. 1920~1940년대에 이능화, 백남운 및 손진태 등이 앞장서서 민중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했다. 이들이 만든 민중 연구의 전통은 북한에서 논의가 계속 되었으며 남한에서도 일부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한국사 연구자들이 민중의 역할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 1980년대에 일부 소장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민중사학’을 제창했다. 그들은 역사연구의 주요대상을 민중으로 정했으며 그 연구 성과를 민중에게 널리 알릴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미시사는 그동안 외면돼왔던 개인과 그 관계에 초점을 맞춘 역사 연구라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 또한 미시사의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도 적지 않지만 학자들마다 그것을 정의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이처럼 아직 연구되지 않은 미개척지가 많다는 점, 그리고 학자들마다 미시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미시사의 개방성이 오히려 미시사에 대한 연구를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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