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함께해오던 친구와 무작정 서울을 떠나면서 생각했던 키워드는 오직 두 가지, ‘젊음’과 ‘땅끝마을’. 늙기 전에 해보자며 항상 손꼽아오던 국토순례와 앞뒤 가사는 싹둑 잘라버린 채 마치 주술처럼 읊조리던 ‘땅끝마을 찾아가는 거야~♪♬’ 라는 노랫가사가 그것이었다.

이에 우리는 ‘경비는 극소로, 경험은 극대로’를 구호 삼아 지역 간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되, 한 지역 내에서는 무조건 걷는 것과 숙식비에 최대한 인색하게 구는 것에 합의한 채 첫 번째 목적지인 대천에 도착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군산, 전주로 이어지게 됐다.

군산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돈을 버스 안에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하게 정류장 내의 직원 휴게소를 찾았지만 이미 우리가 탔던 버스기사 아저씨는 퇴근한 후였다. “참말로 워쩐다잉.” 결국, 돈은 찾지 못했으나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시던 아저씨 두 분이 택시타고 가라며 손에 쥐어주셨던 5000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상 인심 아무리 각박하다 하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얘기였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는 삼각김밥 좀 달라며 무작정 찾아갔던 진주의 한 편의점 아저씨는 빵과 음료수 등 이것저것 싸 주셨고, 비수기라 이미 문을 닫아버린 땅끝마을의 찜질방에서는 우리의 사정을 듣고 하루동안 공짜로 개방해 줬다. 너무 감사해하고 있을 무렵, 배고프지 않냐며 가져오신 먹을거리에 우리는 또 한 번 감동했다. 이 외에도 지리산 매표소 직원, 일지암에서 만난 스님, 구례 막걸리집 아주머니, 땅끝마을 빵집 주인 아주머니.....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도움을 줬고 그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떠났던 선배가 말했었다. 다녀오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될 거라고. 가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가끔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그 때를 생각한다. 고마웠던 사람들, 함께 떠났던 친구, 눈부셨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며 훈훈해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외로움 속에 갇혀 모든 걸 잃어버리는 경우를 본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에게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지하철의 한 여인에게서 외로움의 그늘을 읽는다. 외로움은 또 다른 외로움을 낳는다. 더 외롭기 전에, 떠나자. 그러면 아마 보일 것이다. 자연이, 길벗이, 마주치는 사람들이,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이. 그리고 나면 다시 한번 그들의 손을 잡은 채 어디로든 내딛고 싶어질 것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