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달라지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길을 걷던 사람을 멈춰 세우고 경례를 받았던 태극기는 이제 응원인파의 옷이 되고, 두건이 되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늬가 돼 일상 속으로 새롭게 파고들고 있다.

국기는 한 국가의 권위와 존엄을 표상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전통과 이상을 특정한 빛깔과 모양으로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 태극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국기 문제가 처음으로 논의된 것은 1875년이었다.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강화도에 정박한 일본 군함 운요호를 조선의 수비병이 함락시킨 ‘운요호 사건’ 때문이었다. 일본은 당시 국기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었던 우리에게 일본 국기가 표시된 군함을 함락시켰다며 조약을 요구했고 조선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국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

대외적으로 처음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한 때는 1982년 8월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인 박영효 일행이 일본에 갔을 때이다. 태극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박영효가 일본을 방문하러 가던 중 선상에서 그렸다는 것, 현재와 모양이 다를 것이라는 설만 존재했다. 그러나 최초의 태극기에 대해서는 이러한 설만 전해졌을 뿐 공식적인 문헌이 발견되지 않은 채 115년이 흘렀다. 그러던 중 1997년 서울시청 총무과 송명호 씨가 최초의 태극기를 개제한 일본의 일간지 ‘시사신보’를 발견해 태극기의 유래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찾았다. 기사에 따르면 최초의 태극기는 고종이 직접 도안한 것으로 현재와는 모양이 다르다.

현재의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 그리고 건곤감리의 4괘가 그려져 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의미한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하늘과 땅의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왼쪽 윗부분의 ‘건’괘, 오른쪽 아랫부분의 ‘곤’괘는 민족의 무궁한 정신을 뜻하고, 왼쪽 아랫부분의 ‘리’괘, 오른쪽 윗부분의 ‘감’괘는 광명의 정신을 뜻한다.

그 제정 배경처럼 한민족의 애환과 고난, 극복의 역사를 상징하는 무늬였던 태극기, 또는 국민들에게 권위의 상징이며 경배의 대상으로 존재하던 태극기는 1990년대 말부터 종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일상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국가 경제가 위기를 겪게 되면서 국산품 사용과 수출 확대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태극기를 소재로 사람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캠페인, 기업광고, 제품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태극기 신드롬’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태극기는 권위와 위엄의 상징에서 친근함의 대상으로 변모했고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광복 60주년을 맞았던 지난 15일(월)에는 태극기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서울시청에서는 이번 달 10일(수)부터 본관에 태극기를 설치했고, 태극기를 친숙한 디자인으로 변형시킨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 한 디자인전문업체에서는 과자나 케이크에 태극 문양을 넣는 행사를 가지는 등 곳곳에서 태극기를 예술품이나 상품에 응용하는 예가 많아졌다.

이렇게 태극기를 친근하게 여기는 현상을 반기는 이도 있지만 이를 경계하는 이도 있다. ‘국기홍보중앙회’의 이래원회장은 태극기의 다양한 응용에 대해 “태극기를 친근하게 느끼는 것은 좋지만 상술에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태극기 모양으로 만든 음식 같은 경우 국기에 칼질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거부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김철규(문과대 사회학과)교수는 “그 동안은 국가 상징물인 국기가 신성시, 절대시 되다보니 국민과 거리가 있었다”며 “최근 태극기가 생활에 밀접하게 응용되는 세태는 국기와 국민과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고 탈권위화를 의미하는 것이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태극기는 우리민족의 해방, 분단, 시련, 성장, 미래 등의 이야기를 상징하는 소중한 국기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태극 문양처럼 힘차게 요동치는 민족의 과거와 미래를 담은 태극기의 의미에 대해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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