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화는 건국신화에서부터 창세신화까지 다양한 신화소를 담아낸다.

무속신화는 그 각각의 기원, 형성이 다르고 오랜 세월 전승돼면서 변형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떤 무속신화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단군, 주몽 등의 건국신화가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전승되던 무속신화 중 우세한 집단의 것이 채택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무속신화의 형성연대는 고대 건국신화의 형성시기까지 올라간다. 이처럼 무속신화는 고대서부터 한민족의 세계관을 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무속신화가 건국신화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속신화들 중 많은 것들이 국가가 형성된 이후 여러 가지 다른 원천의 소재로 만들어졌다. 무속신화는 무속의례 중 다신성의 굿의 형태로 전례된다. 굿 중에서도 마을 굿은 마을을 수호하는 기능이나 농사의 생산력을 높이는 기능을 맡았기 때문에 무속신화는 수호신, 생산신에 관한 내력을 풀어낸다. 수호신신화로는 <성주풀이>, <칠성풀이>가 있으며 생산신신화로는 <제석본풀이>, <세경본풀이>가 있다.

또 실재했던 인물들 가운데 비장한 최후를 맞은 인물, 기이한 행적을 남긴 인물, 인덕을 높이 살 만한 인물 등은 무속신으로 숭앙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예가 관우신이다. 그 외에도 망자의 혼령을 편안히 인도한다는 저승신신화 <바리공주>, 창세시조에 관한 신화소를 보유한 <셍굿> 등이 있다.

무속신화는 한민족의 원초적 우주관, 인간관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무속신화는 구비돼 전승되기 때문에 전승과정에서 많은 변모를 거친다. 따라서 무속신화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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