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생태학은 생물학의 한 분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의 생태학은 사회학, 경제학, 행정학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 오면서 생물학의 테두리 속에서 벗어나려고 있다.

생태학의 본 뜻은 생물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생물은 식물, 동물 및 미생물을 가리키고, 환경은 생물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곧 햇빛, 공기, 물, 흙 등을 가리킨다. 물론 한 생물은 다른 생물의 환경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개개의 생물 사이 또는 생물과 여러 환경요인 사이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생태학을 상호관계의 과학이라고도 말한다. 자연계에서 여러 생물과 환경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한 묶음의 자연 단위를 생태계라고 한다. 사람이 간섭하지 않더라도 생태계 내에서는 물질이 순환하고 에너지가 유동하여 스스로 평형을 유지한다. 따라서 햇빛만 비치면 생태계는 파괴되는 일이 없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독일의 생물학자 하인리히 헤켈(E.H. Haeckel)이 약 150년 전에 쓰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생태학은 비교적 새로운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생태학은 어떻게 걸어왔는지 살펴보자. 한국의 생태학은 영국인 콜리어(C.T. Collyer)가 고려인삼에 관한 논문을 1903년에 발표함으로써 테이프를 끊었다. 2002년에 세계생태학대회를 서울에 유치하여 성대히 개최하는 것으로 100년의 기념비를 세우게 된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생태학은 어떻게 발전하였을까. 필자는 한국 생태학을 세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곧 식민기, 준비기 및 성장기가 그것이다. 식민기는 일본 강점기인 1910년부터 광복되던 1945년까지의 36년간이다. 식민기에는 생태학을 연구하는 전문기관이 없이 일본이 한반도의 자연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조사사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기간에 생태학 논문은 246편이 발표되고 있다. 거의 모두가 농업과 임업에 관한 응용생태학 논문이었다. 식민기에 활동한 한국인 생태학자는 겨우 9명으로 총 17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준비기는 1946년부터 한국생태학회가 창립되던 1976년까지의 31년간이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서울대학교에서 생태학강의가 처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일본이 철수한 한반도에는 생태학을 연구할 시설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남은 시설마저 철저히 파괴하였다. 그래도 생태학도들은 실의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연구하여 226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준비기의 생태학 논문은 질적으로 수준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성장기는 1977년부터 2000년까지의 24년간이다. 비록 기간은 짧지만 한국의 생태학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여 19개 전문분야에서 무려 2,628편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질적으로 크게 향상되었다. 이 기간에는 환경오염과 관련하여 국민들이 생태학에 대하여 깊이 인식하게 되고 또한 생태학의 원리가 자연과 환경의 보존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를 걸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의 생태학이 걸어야 할 방향은 전 지구 규모의 환경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산성비, 지구온난화 및 사막화를 저지하는 방안과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 환경문제는 눈에 금방 띄지 않지만 지구권의 모든 생물의 목을 서서히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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