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토) 고위관료회의를 시작으로 공식적인 APEC 행사가 시작됐다. 아시아 · 태평양 지역 21개 회원국들의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만큼 회의장 안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공식회의 전부터 반세계화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반대 시위를 예고하는 등 부산에는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부산을 찾아 회의장 밖 시민들의 모습과 APEC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시위 현장을 찾아가 봤다.  

“정신 없심니더”

부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APEC) 자원봉사단을 접하게 된다. 이들은 APEC 기간 동안 부산 시내 모든 지하철역등 주요 장소에 배치돼 APEC의 원활한 진행을 도왔다. 노포동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김명숙 씨(여· 42세)는 “외지 사람들이 부산을 많이 찾아 길 안내를 주로 돕고, 오늘의 APEC행사가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APEC주최국으로서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해 부산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무척 분주한 모습이었다.

화려함과 허전함

지난 16일(수) 저녁 APEC환영 불꽃놀이 행사가 있었던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에는 10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 각종 진기록들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APEC 기념공원 조성, 연예인들의 축하 공연과 더불어 시민들은 다함께 불꽃놀이를 즐겼다. 이 날 불꽃놀이에 쓰인 폭죽은 무려 8만발로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으며, 액수로는 15억원을 들였다고 한다. 불꽃놀이에 참여했던 부산 시민 조명환 씨(남· 38)는 “이런 행사야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모습 아니겠느냐”며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APEC이었다”고 좋아했다. 불꽃놀이가 벌어졌던 16일, 발 디딜 틈 없었던 광안리 일대의 횟집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평소 때보다 장사가 잘 되냐고 묻는 질문에 한 횟집 주인은 “APEC을 일주일만 더 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부산 전체가 활기를 띄는 것은 아니었다. 불꽃놀이가 진행됐던 광안리 일대를 제외하면 다른 곳들은 평소보다 허전했다. 자동차 2부제 시행으로 거리의 차들은 절반으로 줄었고, 반APEC 시위가 격렬해질 것을 우려해 거리로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어서오이소! 많이 사이소!’라는 자갈치 시장의 간판이 무색하게 남포동 주위는 썰렁했다. 자갈치 시장의 상인들은 “일단 사람들이 이리로 와야 뭐가 되도 될 것 아니냐”며 울상을 지었다.

반대 시위 전야제

17일(목) 부산의 중심가 서면에서는 다음 날 있을 ‘APEC 반대 범국민대회의 전야제’가 열렸다.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부산국제민중포럼’에서 반대의 결의를 다지고 서면에 모여든 인파는 3000여 명. 서면역 출구서부터 롯데백화점, 서면 교차로 앞까지 다수의 전경들이 주요 길목마다 서있었다. 전야제가 열린 밀리오레 앞까지 배치된 경찰 차량들만 해도 수십 대였고, 얼핏 보기에도 전경들의 숫자가 시위대보다 많아 보였다. 오후 7시 행사가 시작되자 △APEC 반대영상 상영 △율동 △사물놀이 등 각종 행사가 펼쳐졌다. 전야제에는 3000여 명의 참가단과 거리를 지나던 많은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지켜봤다. 전야제에서 무대 공연을 했던 울산 노동자 노래패의 송은주 씨는 공연이 끝나자 “비정규직이라 월차도 못 냈다”며 “내일 출근을 위해 울산에 갔다가 범국민대회에 참가하러 또 와야 한다”고 걸음을 재촉했다.

전야제에서의 특이점은 APEC을 반대하는 외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는 점. 법무부가 반세계화 시위에 참가했던 외국 인사들의 입국을 막았다고는 하지만 완전한 봉쇄는 불가능했다. 이들은 대부분 자비를 들여 방한해 부산대학교 학생회관에 숙소를 마련해놓고 APEC반대 행사들에 참여했다. "NO Bush!"를 외치며 피켓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던 워렌 뷔렐(Warren Builel)씨는 “보수적인 자유당이 집권하고 있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호주의 금속연맹노조를 대표해 APEC을 반대하러 왔다”고 방한 이유를 설명했다.

전야제가 막바지로 흐르며 다음 날 열릴 범국민대회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됐다. 전야제 사회를 맡았던 윤순심 노동문화예술단 대표는 “모든 공연이 출연료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공연 중 쉬는 동안에는 ‘나도 올라가 한 마디 하고 싶다’며 성원을 보내준 많은 시민들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을 이야기했다.

격렬한 시위? 경찰의 완승

18일(금)에는 부산 전역의 초· 중· 고등학교들이 학교장 재량으로 휴교했고, 오후 2시 10분부터 △센텀시티역 △시립미술관 △동백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부산시측은 ‘성공적인 APEC개최를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려는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전경들의 충돌을 국내외 손님들에게 보여서 좋을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정오부터 광안리· 망리 등을 중심으로 열렸던 부문별 집회는 오후 2시경 끝났다. 부문별 집회에서부터 시내 방향으로의 차량 진입이 통제됐고, 집회가 열렸던 곳 주변에 사는 시민들이 시위대와 전경들을 상대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후 집회 장소를 떠나 가두행진을 벌이며 수영교를 건너 BEXCO로 향하려던 시위대는 다리 앞에서 준비중이던 전경들과 부딪혔다. 수영교 앞에서의 대치는 2층으로 쌓아 뒀던 컨테이너가 무너지며 전경들과 시위대가 충돌해 양 측에서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이후 컨테이너가 1층으로 낮아지면서부터는 시위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시위대가 컨테이너 2개를 강으로 던지는 등 답답함을 호소하기 위해 발버둥쳐 봤지만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했다. 언론을 통해 시위대와 전경의 충돌 소식을 전해들은 여론은 시위대에 냉담해졌다. 전야제와 부문별대회까지 평화적 시위가 계속됐지만 수영교 앞에서의 충돌로 인해 시위대의 평화적 이미지가 실추된 것이다.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국민들의 따가운 지적들이 많이 올라왔다. 당초 BEXCO앞까지 가고자 했던 계획도 이루지 못하고 민심도 차가워지자 시위대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다리 건너 BEXCO 앞에서 기다리던 전경들도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시위대가 해산하자 수영교 앞에서 대치했던 전경들은 모두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끝나 다행”이라며 헬멧과 방패를 이어 만든 그들만의 벤치 위에서 식사를 했다. 한 전경은 “대규모 반대 시위를 예상해 한 달 전부터 휴가도 반납한 채 훈련을 했다”며 “시위대의 이동 경로가 미리 파악돼 양측 모두 큰 피해 없이 비교적 잘 마쳤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21개국 국가 원수들이 부산에 모이다보니 국가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회의장 밖에서도 다양한 생각과 이해들이 얽혀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국민들이 보냈던 관심만큼이나 바빴던 부산의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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