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은 구리시 서쪽과 서울시 동쪽 경계를 이루며 일반적으로 서쪽의 용마봉과 북쪽의 봉화산 등 주변 산지를 포함하는 명칭으로 사용된다.

아차산은 해발 285.8m로 주변의 용마봉(해발 348m)과 함께 인근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때문에 한강 이남의 전 지역을 한눈에 살펴보고, 북으로는 멀리 의정부에 이르는 길목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다.

아차산 일원에는 아차산성을 제외한 16개소의 보루가 분포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홍련봉보루 서남쪽에도 구의동보루와 자양동보루가 위치했었다. 아차산 남쪽 구릉 말단에 홍련봉1, 2보루가, 아차산의 주능선에는 5개소, 용마봉 능선에는 7개소의 보루가 있다.

이 중 본교 고고환경연구소(소장=이홍종 교수 ·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는 홍련봉1보루를 발굴, 조사를 마쳤고 홍련봉2보루, 아차산3보루를 발굴 중에 있다. 

 
보루는 보통 요새라고도 하며 사방을 조망하기 좋은 낮은 봉우리에 쌓은 소형 석축산성을 말한다.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은 고구려가 5세기 후반 한강유역을 진입한 후부터 신라와 백제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는 6세기 중반, 551년까지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정세를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지난 2004년에는 사적 제 45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아차산 일대의 보루들은 대략 400~500m의 간격을 두고 배치돼 있으며 봉우리를 중심으로 원형 또는 장타원형의 성벽을 쌓는다. 내부에는 온돌시설이 포함된 막사용 건물과 저수시설 등의 시설물이 보인다. 한강변에는 소형, 아차산 일원에는 대형의 보루가 있었으며 한강을 경계로 중랑천변과 왕숙천변의 평지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됐다.

홍련봉1보루의 구조는 먼저 발굴된 아차산4보루나 시루봉보루와 동일하다. 이로써 6세기 당시 고구려 군사시설이 정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축 안쪽에 목책열이 돌려진 것으로 보아 석성을 쌓기 이전 목책성을 쌓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목책성은 고구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시설물로 고구려 성곽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연화문와당, 온돌 터, 철기, 토기를 실축하는 모습

   
   
홍련봉1보루에서는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유일하게 기와가 출토됐다. 고구려에서는 기와의 사용이 궁궐이나 관공서, 사찰 등에 제한됐다는 기록과 관련해 볼 때 다른 보루에 비해 홍련봉1보루의 위계가 높았을 가능성이 추론된다. 또 기와들과 함께 연화문와당 4점이 출토됐다. 임진강 유역에서 고구려 기와가 출토된 예는 있으나 남한지역에서 와당이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전체적으로 옅은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태도는 니질이다. 연판 사이에는 8개의 삼각형 주문을 새겼으며 가운데 자방에는 2조의 돋을 테를 둘렀다.


홍련봉2보루의 석축의 내부에는 온돌을 포함해 △건물지 3기 △저수시설 2기 △추정 토기가마 △집수정 △출입시설 등이 발견됐다. 다른 보루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집수정과 토기 가마 등의 배치는 홍련봉2보루가 일반적인 군사주둔지와는 다른, 각종 군수물자의 보급과 관련된 병참시설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 홍련봉2보루에서는 다른 보루에 비해 비교적 많은 양의 철기가 출토됐다. 철기는 △철모 △철부 △철촉 △철준 △철갑 등의 무기류와 △철겸 △철서 △집게 등의 농공구류, 솥 등의 용기류로 구분된다. 특히 집게는 이 유적에서 처음 출토되는 것으로 단조작업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아차산3보루에서는 보루의 외곽과 내부를 연결하는 명확한 형태의 출입시설이 확인됐다. 출입시설은 계단식으로 보루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아차산3보루의 특징은 보루의 내부가 축대에 의해 여러 공간으로 구분됐다는 것이다. 홍련봉1보루를 제외한 나머지 보루들은 하나의 평면에 유구가 설치된 반면, 아차산3보루는 보루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축대를 쌓아 구분하고 있다. 아차산3보루의 지형적 특징과도 관계있겠지만 서로 다른 기능의 건물군이 복합적으로 배치됐을 가능성도 있다.

홍련봉1보루는 이미 발굴이 끝난 상태이며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홍련봉2보루와 아차산3보루는 다음달 초부터 재발굴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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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봉2보루에서 발굴된 명문이 새겨진 토기들

   

   

 

 

 

 


 

왼쪽부터 남아있는 자획으로 보아 ‘○大’, ‘官瓮’, ‘庚子’로 판독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것은 소성 전에 날카로운 도구로 새긴 것이고 세 번째 접시의 명문은 제작 후 사용자가 새긴 것으로 추측된다. 이 중 ‘官瓮’은 ‘관에서 사용되는 항아리’ 또는 ‘관에서 제작된 항아리’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庚子’는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경자년은 서기 400년, 460년, 520년으로, 역사적 정황을 살펴볼 때 520년이 된다. 그동안 아차산 일대 고구려 보루의 연대를 500년에서 551년 사이로 추정한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직접적인 증거다.


   
아차산3보루에서 발견된 방앗간 전경

디딜방아는 고대 생활사를 복원하는 자료가 된다. 황해도 안악군 안악3호분 벽화에 그려진 디딜방아가 이번에 발굴한 디딜방아와 구조가 거의 같다. 고분 벽화에는 357년으로 연대가 적혀있어 아차산 디딜방아와는 160~170년 정도 시간적 차이가 있다 하지만 실물 자료가 발견된 것은 최초다.

방앗간의 규모는 동서 6m, 남북 3.5m 가량이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내부에는 서북쪽으로 치우쳐 방아확이 설치돼 있으며 방아확 동쪽에는 방아채의 쌀개를 걸었던 볼씨가 한 쌍 확인됐다. 이번 발굴에서 볼씨가 함께 확인돼 방앗간으로 추정하는데 무리가 없다.

<사진제공/ 고고환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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