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김소희 선생은 “판소리란 참 묘한 것이다. 밟아도 밟아도 풀이 살아나는 것처럼 판소리에는 마력같은 것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판소리는 아무에게나 자신의 마력을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에 젖어들고, 그 깊이에 동참하는 자에게만 판소리는 자신의 진수를 살짝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럴 것이다. 한 존재나 세계에 진지하게 들어가고자 할 때, 그것은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들어가는 존재이고 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판소리가 인권환 교수에게 자신의 문을 열어준 이유는 현대와 고전, 그리고 장르를 넘나드는 해박한 시야와 경륜을 지닌 저자의 다양한 지적 편력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가 펴낸 업적들은 하나같이 당시 학문의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것이었다. 그리고 『토끼전』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하려니 『수궁가』가 앞에 놓이고, 그래서 『수궁가』를 포함하는 판소리로 시야를 넓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때로는 넓게, 때로는 좁게 연구의 시각을 조정할 줄 아는 그와 판소리의 만남은 그래서 즐거운 잔치처럼 느껴진다. 판소리가 자신의 속내를 이처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를 찾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이 책은 △판소리 총론 △판소리 창자론 △실전(失傳) 판소리의 실상과 원인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론에서 다져진 그의 진면목은 판소리 창자(이 용어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다. 우선 그 어감이 뱃속의 장기를 연상시킨다는 점, 그리고 놀이를 위주로 하는 연예인을 ‘희자(戱者)’가 아니라 ‘연희자’로 부르는 것처럼, 필자는 창을 위주로 하는 연예인은 ‘연창자’로 부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과 실전(失傳) 사설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판소리 창자의 장인 정신과 예술성은 고금을 넘나든 넓이와 지적인 깊이가 전제되지 않고는 서술되기 어려운 부분으로 생각된다. 일곱 가지의 미적 범주에 신명미를 포함시키는 과감성도 민속학에 대한 풍부한 조예가 있어 가능하다. 이를 통하여 서구적 시각에 바탕을 둔 미학으로 드러날 수 없었던 판소리의 섬세함이 포착될 수 있었다. 또한 열두 마당 중 음악이나 사설을 잃은 판소리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은 저자의 실증적이고 분석적인 학문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실전의 원인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정리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일례로 음악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 것은 판소리에 대한 연구가 음악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판소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학문적 태도를 느끼는 즐거움을 갖는다. ‘아, 대상을 이렇게 보니 갑자기 넓어질 수 있구나.’하는 깨우침과, 기존의 논의를 날카롭게 재단하지 않고 너그럽게 포용하는 넓은 가슴을 이 책에서 발견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 즐거움에 동참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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