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보다가, 지난 해 호주 유학 당시, 같은 반 학우가 교내 학보에 기고했던 컬럼 하나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이란 출신인 그는 중동 문제에 남다른 의식을 갖고 있던 친구였다. 그 때가 미국이 대이라크전을 ‘성공리’에 이끌고, 사담 후세인 동상을 철거하는 ‘역사적’ 이벤트가 벌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완성되지 않은 그의 글 옆에 사진이 하나 있었다. 얼굴을 뒤덮을 듯 한 큰 눈망울을 가진 어린 남자아이가 상처투성인 얼굴을 손으로 반쯤 가리고 카메라를 향해 피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컬럼 제목은 이러했다. “Smile! You've been liberated."(웃어-! 넌 해방된거야.)


“Operation Freedom Iraq(?)” (이라크 해방 작전이라고?)

지난 해 3월, 미국은 이라크 국민에게 해방과 인권보장을 약속하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전 세계에는 후세인 독재 정권의 테러 위험과 대량살상무기를 소멸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같은 이유로 우방국들에게 파병을 요구했다. 하지만, 끝내 유엔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이는 엄연히 국제법상 위반되는 ‘침략’이었다. 그래도 조지 W 부시는 당당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의 든든한 어깨에 기대어 더욱 당당한 태세로 전쟁을 시작했다.

움직이는 물체는 무조건 다 쏴라

그 후로 1년 9개월. 현재 이라크는 원점으로 돌아오기는커녕 오히려 역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불붙은 듯 거세지는 민중 봉기세력의 저항과 늘어가는 민간인 사상자, 파괴와 폐허라는 단어만이 공존하는 도시의 거리들, 비참하기 짝이 없는 국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며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폭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군과 이라크 저항세력의 최접전지, 팔루자(Fallujah)-. ‘분할’, ‘경계선’을 뜻하는 지명의 어원을 그대로 반영하듯 반미 저항세력의 주 무대가 돼 왔다.


비극의 도시, 팔루자

   
팔루자는 바그다드에서 서쪽 60km정도로, 요르단에서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서쪽으로는 라마디와, 북쪽에는 티크리트, 동북쪽의 바쿠바를 꼭지점으로 하는 수니 삼각지대 안에 있으며, 저항세력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는 30만명정도로 이 중 90%가 사담 후세인 집권당시 기득권층에 속했던 수니파들이다.

이들은 지금도 후세인을 맹종하며 철저히 반미 저항태세를 지키고 있다. 이에 반해 이라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는 후세인 독재시절 탄압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 국민의 자유와 인권수호를 외치며 이라크를 침공 했을 때 그들을 가장 반겼던 것도 시아파였다.

저항세력이 장악해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팔루자 지역을 놓고 미국도 초기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저항세력이 전투 능력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유였거니와, 궁극적으로 백악관은 그들을 공격할 결정적 핑계가 부족했다. 그러던 지난 3월말 불씨가 던져졌다. 이라크 게릴라 세력이 미국인 경비업체 직원 4명을 무참히 죽이고 불에 태워 그 시신을 차에 매달고 다니며 발로 차고 때리는 ‘엽기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 언론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미국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때를 놓칠 미국이 아니었다. 부시 행정부는 팔루자 탈환 작전을 공포했다. 4명을 죽인 범인을 찾고자 팔루자 안의 저항세력을 모조리 소탕하겠다는 목적으로 4월 내내 미군은 무차별적 폭격을 가했다. 미국인 4명의 무고한 죽음으로 팔루자 주민들이 치룬 대가는 혹독했다. 4월 한 달 간 총 731명(동아일보 2004년 11월 9일자)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그 중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미국에게는 팔루자 거주 민간인 모두가 범인이었다.

분열된 이라크 국민 - 갈팡질팡하는 시아파 vs 수니파, 어설픈 과도정부

미국은 시체훼손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또다른 골칫거리를 안고 있었다. 이라크 점령 초기 자신들의 든든한 지지세력이었던 이라크 다수인 시아파가 돌연히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이는 주둔 미군이 시아파의 극(極)반미주의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를 추종하는 잡지를 정간 조치하고, 그의 측근 무스타다 알야쿠비를 체포한데 따른 저항이었다.

그러면서 시아파는 친(親)후세인 수니파와 손을 잡았다. 미군이 나자프의 이슬람 성지를 공격했을 때 시아파 진압작전을 펼치자 수니파 성직자들이 적극 나서서 시아파를 감싸면서 두 민족간의 해묵은 증오는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달 초 미군이 수니파의 거점인 팔루자 점령에 나서 맹공격을 가했을 때 시아파가 이를 외면하자 양측 사이는 다시 예전의 앙숙으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이하 과도위)는 자체적인 이라크 정부 수립을 계획하고 있다고는 하나 미국의 압력과 감시 아래 제대로 된 임시정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예정보다 이틀이나 앞당겨져 서둘러 치뤄진 이라크 주권이양식은 그야 말로 ‘깜짝 이벤트’였다. 새로 만들어진 이라크 국기 대신 기존 후세인 시절의 국기가 단상 뒤에 즐비해 있었고 미국측 대표는 식이 끝나자 신변보호를 위해 허둥지둥 이라크를 떠나기에 바빴다.

   
미국에게 우호적인 과도위는 해외파 의원들로 채워져 있어 정작 이라크 국정을 세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4월에 이어 지난달 미국이 다시 팔루자 대공세를 시작, 억울한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자, 과도정부 의원중 다수가 직위를 사임하고 나섰다. 현재 이라크 재건을 도모하는 정치인들의 혼란을 잘 반영하는 대목이다.

움직이는 물체는 무조건 다 쏴라

영국의 의학주간지 ‘랜싯’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 침공이후 전쟁의 희생양이 된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10만 여명이 되고 그 중 15%정도가 1살 미만의 아이들일 것이라는 통계치가 발표 됐다.(조선일보 2004년 10월 30일자) 더군다나 이 수치는 팔루자를 제외하고 나온 결과라니, 팔루자까지 더해지면 20만명은 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여전히 강경입장을 내세우며 팔루자는 ‘반드시 제거돼야 할 “암”과 같은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번 팔루자전에 앞서 미군은 주둔병들에게 ‘움직이는 것은 다 쏘라’고 지시했다. 저항세력의 뿌리를 뽑자는 의도는 ‘팔루자의 학살’로 묘사된다. 과연 이들이 이라크 국민들의 자유해방과 인권을 위해 나타난 것인가. 중동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기 위해, 친미정권을 세우고자 하는게 이들이 말하는 자유와 정의의 실현인가. 초강대국 미국이여- 속 보이는 야심은 버리고 이제 좀 솔직해져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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