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진 음식과 만두만 먹을 것 같지만 밥상엔 매일같이 김치와 된장이 오르고, 억지로 쓰는 중국어보다 한국어가 익숙한 사람들…. 그들은 한국 화교(이하 한화)이다. 그러나 그들의 법적 지위는 외국인이다. 그들은 영주 거주 자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법적 지위는 돈을 벌기 위해 1∼2년 간 우리나라에 장기 체류하는 영어회화강사와 별 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단순히 외국인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들은 6·25 전쟁에도 참가해 남한을 위해 싸웠으며 ‘한국음식’ 자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조흥윤(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화교는 역사적 뿌리를 우리나라에 내리고 살고 있다.”며 “잠깐 돈벌러 들어온 외국인과 화교를 비교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화는 지난 4월 18일, 영주 자격 비자(F-5)가 생기기 전까지는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체류 자격 거주비자(F-2)를 받아 생활했다. 그러나 F-2는 외국 체류 기간에 제한이 없지만, F-5는 체류 기간을 1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화들 중 많은 수가 5년마다 갱신을 해야 하는 불편함에도 F-5로의 전환을 망설이고 있다. 이는 유학이나 연수를 생각하는 한화 2, 3세대에겐 큰 불편함이 아닐 수 없다.
 
한화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외국인등록증을 발급 받아야 한다. 외국인등록번호는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앞자리는 비슷하지만 뒷자리 번호는 다르다. 남자는 뒷자리가 5로 시작하며 여자는 6으로 시작한다. 최근에 이에 대한 정비가 있었음에도 아직 정착이 돼지 않아, 한화는 실명 회원가입을 필요로 하는 인터넷상의 여러 사이트에 가입을 할 수가 없다. 또한, 휴대폰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보증금으로 20만원 정도의 돈을 더 내야하며 몇몇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출국에 있어서도 한화의 어려움은 크다. 대만 국적자인 한화는 대만의 수교국이 한국보다 적기 때문에 비자 발급에 불편을 겪는다.
또한 한화는 토지 소유에 제한으로, 개인 당 200평 이상의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다. 상점도 마찬가지. 한화는 50평 이상의 상점을 갖지 못했다. 덕분에 한화의 상업은 영세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1998년 외국인 토지소유제한이 사라지면서 이러한 어려움은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한화에게 남아있는 생활의 고충은 많다.

한화들에겐 참정권의 문제도 빠질 수 없다. 몇 해 전부터 장기 거주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화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화교, 한반도 유일의 소수 민족
 
해결책은 귀화 ‥ 조건 충족 어려워

 

이러한 이유로 많은 한화들이 귀화를 생각한다. 한성화교 중고등학교 학생주임인 장성위(55) 씨는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생활하며 느끼는 불편 때문에 귀화를 고려하는 것 같다.”며 “기왕에 한국에 살 것이라면 귀화해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 쉽지만은 않다. 제도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히, 보증인 제도는 ‘대한민국 5급 이상 공무원이나 언론기관, 금융기관, 국영기업체의 부장급이상의 간부 2명’의 추천이 있어야하는 제도인데 한국사람도 아닌 화교가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한국화교경제인협회의 임비항(37) 씨는“일반 한국인도 그런 사람을 알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는 더욱 어렵지 않겠나?”며“특히 한화 중에는 중화요리 음식점 주인 등 비롯한 자영업자들이 많아 귀화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요건의 완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무부 법무과의 한  검사는 “한국에 잘 정착하여 살고 있다면 그 정도 사람의 동의는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막 늘어나는 귀화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한화의 귀화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게다가 일부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중국적은 국내에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한화의 한국국적 부여는 멀게만 보인다.

한국인 아닌 한국인, 그러나 한국인과 같은 한국인, 한화의 한국인 되기는 아직 요원하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