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뜨거운 여름이었다. 월드컵 열풍으로 수은주를 한껏 끌어올리며 시작된 여름은  더위가 한풀 꺾인 지금 이번에는 연일 바다이야기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다. 길바닥에 어지럽게 버려진 당첨되지 않은 로또와 경마권 조각에 서민의 마음이 무참하게 찢기고, 거리에 걸려있는 바다이야기 푸른 간판에 서민의 가슴이 멍들었다. 레임덕의 입구에 들어선 대통령은 결코 정치게이트는 없다고 단호하게 강변하지만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말꼬리에 답답한 국정운영의 안타까움과 무기력함이 배어난다. 국무총리와 여당 의장 그리고 대통령이 차례로 바다이야기의 파문을 수습하려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고개를 숙이지만 책임을 덜고 싶은 마음에 국회와 야당에게도 가시 돋친 곁눈질을 보낸다. 야당은 바다이야기를 정치호재로 삼고 단순한 정책실패가 아닌 정치게이트로 규정하며 정치중심축을 옮기려 안간힘을 쓰지만 야당의원 역시 문광위에서 의정활동을 하면서 바다이야기의 한 챕터를 구성하였기에 바다이야기의 그물 앞에서 완전히 자유스럽지는 못하다.

안전한 운전을 위해 교통신호등이 있듯이 효과적인 정책수행을 위해서는 정책신호등이 매우 중요하다. 운전자가 신호등을 따라 운전해야 하는 것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결정자는 정책의제를 조심스럽게 숙고하고 결정해야 한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다양한 정책대안을 고려한 후 정책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면 정책결정자는 눈과 귀를 열어 여론을 살피고 체계적인 정책모니터링을 실시하면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혹 정책신호등에 노란불이 켜지면 철저하게 정책효과를 분석하고 만일에 켜질 빨간불을 염두에 두면서 필요에 따라 정책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운전자를 바꾸어야 한다. 바다이야기는 현 정부의 정책신호체계에 커다란 고장이 생기고 정책결정자가 폭주족이 되어 정책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해버린 결과가 빚어낸 예정된 비극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 정부가 출범초기부터 정책품질을 강조하면서 명품정책을 만들기 위해 정책품질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각 부처에 배포한 것을 생각하면 바다이야기에 대한 씁쓸함이 더하다. 정책품질관리 매뉴얼은 정책추진 단계별로 필요한 절차와 방법을 체계화하여 정책결정자가 과학적으로 정책의 제반과정을 점검하고 관리해 정책실패를 예방하고 정책품질을 제고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다이야기는 정책품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규제완화를 통한 게임산업 진흥과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이라는 거대한 슬로건 앞에 상품권제도는 장밋빛으로 포장되었고 노란불이 켜져야 할 정책신호체계는 먹통이 되어버렸다. 시장의 반응과 부작용을 면밀히 따지지 못한 정책대안이 로비의 태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바다이야기는 희극의 시나리오로 정책무대에 올려졌다. 그러나 희극으로 포장된 바다이야기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불경기의 늪에 빠진 서민을 멍들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대는 비극의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김대중 정부에서 경험한 카드대란과 벤처대란도 정책신호체계가 무시된 채 정책결단으로 이어지면서 터져버린 비극의 무대였기에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 바다이야기의 상처는 더욱 깊고 아프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망가진 정책신호등의 실감한 현 정부는 두 가지 패러독스를 마음에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그룹 내에서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 가운데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각 참여자들이 대세와 상황에 따라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는 “에벌린 패러독스 (Abilene Paradox)”다. 에벌린 패러독스는 Jerry Harvey교수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텍사스의 시골에 살고 있는 가족이 더운 여름날 에벌린이라는 도시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는 한 사람의 단순한 제안에 모두가 싫어하면서도 남의 눈치를 보며 결국 냉방도 안 되는 차를 타고 고생스럽게 다녀오게 된다는 후회스런 이야기를 빗댄 표현이다. 투명한 정책언로가 막히고 정책모니터링체계가 망가져 정책신호등의 노란불이 무시된 바다이야기 파문은 에벌린 패러독스에 빠지기 쉬운 집단적 정책사고(group policy thinking)의 위험한 단면을 보여준다. 두 번째 패러독스는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이카루스 패러독스 (Icarus Paradox)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달고 날 수 있게 된 이카루스가 너무 높이 날아 태양 가까이 가게 되자 밀랍이 녹아내려 추락해 죽는다는 이야기다. 집권초기부터 제왕적 대통령제의 틀을 깨려는 노대통령의 확고한 원리주의적 소신이 자칫 민주주의 모자를 한껏 눌러 쓴 채 국정의 중심축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주요 국정현안과 정책정보를 꼼꼼히 챙기지 못하고 바다에 추락하는 이카루스 패러독스로 끝나지 않을까 답답한 가슴이 더욱 아파온다.

문명재 (정경대 교수 ·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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