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영 소설집 <루이뷔똥>
남자는 코엑스몰 광장 앞에 앉아서 쉼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저 쇼핑몰이 거대한 유리동물원 같지 않냐고 했었다. … 남자는 기다리는 데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하며 광장 앞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 남자를 스쳐지나갔지만 그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김윤영의 <유리동물원> 中-

서울 강남, 그곳의 중심지에 코엑스몰이 위치하고 있다. 하루 평균 14만 명의 인구가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주말이면 그 숫자는 25만 명에 달한다.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인파로 북적이는 코엑스몰은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공간을 대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가장 전형적인 다이내믹 서울, 그 자체다.

유능한 직장인이지만 동시에 신경쇠약과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유리동물원>의 주인공 남석희는 코엑스몰에 자리한 여행사 사무실에 근무한다. 그녀는 자주, 코엑스몰의 밀레니엄 광장을 관통해 출근하기를 즐겼다. 남석희는 ‘출근길에 지나는 쇼핑몰은 동물원과 같다’며 지루하지 않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그녀의 분주한 출근길을 따라가 봤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으로부터 연결된 밀레니엄광장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딪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가끔 눈빛이 마주쳐도 물끄러미 바라볼 그뿐이었다. 모두가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진 데다 각자의 일에 너무도 바쁜 탓이다.

밀레니엄 광장의 한 커피하우스. 남석희가 앉던 곳은 바로 이 집의 유리창 앞자리다. 그녀는 매일 창가에만 앉아서 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녀처럼,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그리 집중하지 않은 눈길을 바깥으로 옮겼다. 밀레니엄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바깥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실제로 동물원의 동물들을 구경하는 그것과 같았다.

커피하우스를 나와 밀레니엄 광장 한복판에서 잠시 고개를 들었다. 남석희의 시선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온통 유리창인 코엑스몰의 외벽에 햇살이 투명하게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저마다의 표정으로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매끈하고 차가운 유리벽. 그녀가 표현한 ‘유리동물원’의 의미가 한순간에 와 닿았다.

▲ <유리동물원>의 남석희는 이 창가에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듯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사진=김진석 기자

코엑스몰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상점의 번쩍이는 조명이 낮과 밤의 분간을 소용없게 만드는 그곳. 미로처럼 복잡한 그 길의 끝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 있다. 이곳의 토요일 심야프로 두 장씩을 예매해놓는 것이 남석희의 습관이었다. 같이 갈 사람이 있으면 같이 보고, 아니면 혼자 봤다. 여의치 않으면 보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도 오래된 습관이라 두 장을 사지 않으면 이상하다던 그녀의 발자국을 좇아 도착한 그곳. 새빨갛게 빛나는 ‘박스 오피스’ 네온사인 밑에는 영화표를 사기 위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잔여좌석을 알리는 스크린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영화 시작 1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합니다’는 헤드라인 아래 여러 개의 상영관이 들어찬 입구는 누군가를 집어삼킬 듯 괜스레 동굴처럼 깊어 보였다. 함께이고 싶었으나 혼자이곤 했던 남석희는 토요일 밤이면 소리도 내지 않고 이곳을 지나 어두컴컴한 상영관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그녀가 커피 마시러 갈 때마다 늘 마주쳤던 근처 노숙자. 남석희가 잃어버렸던 책을 건네며 그녀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는 그 남자에 대해 남석희는 ‘교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군복을 입고 낡은 테니스화를 신고, 구레나룻 있고 턱밑에도 수염이 많았다는 그는 밀레니엄 광장 한복판의 돌 벤치에 앉아 있곤 했다. 실제로 밀레니엄 광장의 돌 벤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 중의 누군가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건다면, 당신 또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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