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두만은 새끼줄을 따라 걸으며 기지개를 켰다. 안개가 끼어 한강은 흐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했다. 이 산동네에 사는 유일한 맛이 있다면 아침마다 한강을 한눈에 바라보는 거였다. 그는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기차로 처음 한강을 건널 때의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는 했다. “그려, 기연시 성공얼 혀야제. 당당허니 고향에 내래가게 돈 많이 벌어야제.”
-조정래의 <한강> 中-

작가 조정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장편소설을 포함해 그의 소설은 40여권이 넘는다. 그 중 <한강>은 10권짜리 대하장편소설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이다.

‘한강’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진짜 한강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서 한 몫 잡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지닌 나삼득과 천두만이 그들이다. 그들은 판자집 한 채 엮을 돈이 없어 옥수동 산동네의 움막촌에 자리를 잡는다. 동네 통장이 새끼줄을 둘러 터를 잡아준 천두만의 움막. 연탄 하나 피울 돈 없는 그가 푸들푸들 떨며 움막 입구를 나오자 밤새 그의 움막 뒤로 새로 자리잡은 더 보잘것없는 움막들이 당시 가난했던 서민들의 상황을 말해준다. 춥고 황량한 서울에서 천두만에게 유일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은 움막 앞에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한강 뿐이다.

천두만이 자리잡았던 산동네는 아마도 지금의 매봉산쯤일 것이다. 옥수역에서도 꼬박 20여분을 언덕배기를 걸어올라야 매봉산 초입에 다다를 수 있다. 지금 매봉산 입구에는 아파트가 잔뜩 들어서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아파트로 재개발 중이거나 허름한 연립주택이 가득 들어선 공간이었다. 재개발 기간을 제외하고는 20여 년 전부터 옥수동에 거주했다는 오도임(여·51세)씨는 “지금의 옥수동은 옛날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라며 “지지리도 가난했던 동네가 어느새 말끔해졌다”고 말했다.

▲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지만 옥수동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은 여전하다. 사진=조은경 기자

매봉산에서 바라보는 한강은 아름답기만 하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모든 아픔을 강을 따라 흘러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매봉산은 해발 200미터 정도의 야트막한 작은 산이다. 하지만 성동구, 중구, 용산구에 걸쳐 있어 꼭대기에서는 서울 여러 곳을 바라보는 묘미가 있다. 한강에 좀 더 다가가고 싶다면 다시 옥수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옥수역 바로 옆에는 작은 근린공원이 있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고즈넉하게 한강을 즐기기엔 제격이다.

한강 둔치 쪽으로 내려가면 최근 서울 시민의 새로운 쉼터로 자리 잡은 서울숲으로 직행하는 길이 나타난다. 서울숲까지는 30~40여분을 걸어야 하지만 한강을 바로 옆에 끼고 걷다보면 어느새 서울숲에 도착한다. 또 강북 쪽 둔치는 강남 쪽 둔치와 달리 그다지 화려하게 조성되지 않아 인위적인 느낌이 덜 묻어나기 때문에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면 조정래의 <한강>과 지금 흐르는 한강이 같은 강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가을, 좋은 소설 한편과 함께 서울의 중심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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