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과 인상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은 검정이다. 마법을 상징하는 색이 검정이라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간다. 마법을 상징하는 검정은 호기심과 기대감을 주는데, 이는 가벼운 상상보다 깊이 있는 사고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인상파가 검정을 사랑한다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설명하자면, 초기의 인상파에는 큐비즘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몬드리안(Mondrian)이 있는데, 초기에 이들은 강한 색채대비를 사용하였지만 말기에는 흑백의 그림 특히 검정이 주조색을 이루는 그림을 그렸다. 그 이유는 검은색에 그만큼 많은 내용과 상상력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밖에도 검은 색의 이상론을 펼친 화가로는 인상파의 거두인 르노와르(Renoir)가 있다.

검정은 또한 연륜을 상징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일수록 더욱 검정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자신들의 젊음에 쉽게 연륜을 더해서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속셈도 있다. 그러나 연륜을 상징하는 검정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과 침묵이 동반되기 때문에 오히려 기피하는 색이 된다.

20세기 후반인 1970년, 샤넬(Chanel)과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 베르사체(Versace), 입셍로랑(Yves Saint Laurent) 등은 검정을 ‘최고의 단순함과 최고의 아름다움의 결합.’이라고 선언하였다. 최고의 패션디자어너들이 언급한 덕분에 검정은 이제까지 있어 온 예술사조의 주조색, 심지어 빈센트 반고호(Vincent van Gogh)의 노랑까지 제치고 최고의 유행색으로 자리 잡게 된다. 즉, 검정은 여성의 우아함과 남성의 정중함을 모두 대표하는 색이 됐으며, 신사와 숙녀의 가장 보수적이며 품위 있는 색이 되었다. 쉬운 예로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는 기본적으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다.

한편, 에바 헬러(Eva Heller)가 조사한 결과 독일의 이름 중 우리말의 ‘검정씨’ 에 해당하는  ‘슈바르츠(Schwarz)’가 우리나라의 김씨나 이씨에 해당하는 것만큼 많다고 한다. 이는 독일의 중세 봉건시대에 남성의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색인 검정을 좋아한데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검은색은 매우 나쁜 의미의 색이었다. 검정은 우선 가장 추운 겨울과 북쪽을 상징하며, 인생의 끝을 의미한다. ‘검은 물을 건넜다.’는 바로 죽음을 뜻하며, 저승사자 역시 검은색의 도포를 입고 있다. 그밖에도 검은 색은 속세에 물든 색으로도 알려져 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은 검은 색이 타락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한국화의 한 종류인 묵화는 이름은 묵화이지만 사실은 여백의 흰색을 강조하고 있으며, 여백을 그림에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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