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비전을 제시하면서 엄청난 희망과 감동이 있는 것처럼 거대담론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행사를 화려하게 치르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이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면 어느 누구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지 못하고 쉽게 망각하기 마련이다. 이는 큰 것을 강조하다가 작은 것들을 놓치는 단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이 지배하고 있으며 작은 일에 충실할 때 개인이건 단체건 살아남을 것이다.

근대까지는 인간적 주체와 이성이 중요했고 민중에게는 교훈성이 필요했으며 역사적인 사건에서는 중요한 흐름과 영웅이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근대 후반을 거쳐 20세기 중반이 되면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래서 이성은 해체되고 광기가 주목을 받으면서 단체보다 개인이, 질서보다 무질서가, 거대한 것보다 사소한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사건을 관찰할 때도 작은 것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영웅이나 절대자가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소시민 그리고 약한 자들이 전면에 드러나고 주목을 받는다. 우리의 몸만 하더라도 작은 세포가 이끌어가고 최첨단 자동차는 가장 작은 부품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우리는 작은 흐름에 주목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의 작은 몸동작과 소박한 언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학교, 회사, 가정 등 모든 곳에서 언제나 작은 것이 중요시 되어야 하고 정치행위, 생산행위, 마케팅행위, 대인관계활동, 학습행위, 제작행위 등과 같은 일반적인 행위에서도 작은 일이 세심한 주목을 받아야 한다.

몸에 나타나는 작은 반점 하나가 백혈병의 흔적일 수도 있고, 중국의 농민 하나가 농산물의 수확이 좋지 않아 자살함으로써 거대한 중국의 농업정책이 바뀔 수도 있고,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한강에 뿌려져서 괴물로 변하여 서울이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고, 남미 페루에 있는 작은 나비의 단순한 날개짓 몇 번이 중국 양자강에 홍수를 불러올 수도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태리 축구 수비 선수 마테라치의 작은 욕지거리 한마디가 프랑스와 축구 영웅 지단을 몰락시켰으며, 우주인 훈련을 받던 중 사소한 규칙 위반이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에서 고산 씨를 밀어내 버렸다. 개인의 일이 그럴진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조밀하게 짜여진 극사실적인 단체상황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라도 작은 잘못을 저지르면 사회전체가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진다.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가 그렇고 국보 1호 남대문 방화사건이 역시 그렇게 한 사람의 작은 실수로 생겨난 것이다. 작은 것을 중시하지 않고 작은 흔적을 무시할 때 우리는 엄청난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작은 것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정부는 서민들의 아침 밥상에 나오는 반찬의 가짓수를 세어 보아야 하며, 군대에서 장교들은 부하의 발에 잡힌 물집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사업가들은 작은 트렌드에 세심한 주의를 하여야 하며, 아버지는 자녀의 몸에 난 미세한 상처에 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

대학이 비전을 세워서 세계대학 서열 경쟁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별 학생들의 학업성취 정도와 취업에 관심을 가질 때, 그리고 교수들이 연구에 매진할 뿐 아니라 학생들의 숨소리와 사생활까지 관심을 가질 때 변화무쌍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대학과 교수들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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