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무슨 말을 하면 “너 T지?”라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 타인과의 관계를 감정(Feeling)으로 이해하기보다 이성적으로 사고(Thinking)하는 냉정한 성향이라는 비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성향에 대한 분류는 몇 년 전부터 대중적 인기를 얻은 MBTI 유형을 기반으로 한다. MBTI란 개발자인 마이어스와 브릭스(Meyers-Briggs) 그리고 유형 지표(Type Indicator)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말이다. 많은 사람이 MBTI로 직업이나 연애 궁합 등을 예측해 보기도 하는데 학계에서는 MBTI의
고대에서 ‘선생님’이 된 지 30년이 됐다. 고대 물 먹어 본 적 없던 나를 위해 원로 교수님께서 정성껏 신임교수 오리엔테이션을 해 주셨다. 고대만의 전통이라며 아름다운 고대어(高大語)를 알려주셨다. ‘대학’ 대신 ‘학교’라 했으며, ‘동문, 동창’ 같이 그저 그런 표현 대신 ‘교우’라는 정감 어린 말을 썼다. 특히 ‘교수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배웠다. 물론 상식 있고 뼈대 있는 사람은 ‘고연전’이란 우아한 말을 써야 한다는 건 고대에 오기 전부터 진즉 알고 있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고대어는 용어만 다른 게 아
큰 사람일수록 실현 가능한 꿈을 가지고, 갈수록 꿈을 키우며, 못난 사람일수록 애초에 허황된 꿈을 꾸다가, 시간이 갈수록 움츠러든다. 내가 부임한 2004년 졸업반이었던 한 학생은 학자의 꿈을 키웠으나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해서 꿈을 접어야만 한다고 했다. 나는 호되게 그를 꾸짖으며 꿈을 버리지 말라고 했고 머뭇거리던 학생은 이내 MIT, 영화 오펜하이머 때문에 알려진 Los Alamos National Lab 등에서 승승장구하며 지금은 해외 명문대에서 교수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결국 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서 이룬
한국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신흥시장의 하나로 분류되며, 이 지역에 대한 접근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16세기에 대항해 시대가 펼쳐진 이후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을 비롯한 구대륙에 1차 산업자원을 수출하는 주요 공급처이자, 구대륙에서 생산된 공업생산품을 수입하는 소비시장의 역할을 해왔다. 라틴아메리카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연결되는 국제무역 질서 속에 완벽히 편입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령 아메리카, 즉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원주민들과 메스티소(
최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의 갈등과 화해 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 경기 전날 대표팀 내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선수들 몇몇이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고 탁구 치던 것을 주장 손흥민 선수가 제지하는 과정에서 이강인 선수와 충돌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언론에서는 ‘어린 선수의 하극상’과 ‘인성 논란에 광고 모델 손절’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이강인 선수를 비난하는 성격의 기사가 주를 이루었다. 시간을 22년 전으로 되돌려 보면 축구 국가대표팀
1월은 한 해의 시작이다. 한 해는 이렇게 또 시작하고 계절은 무르익어가고 여물고 또 열매와 낙엽을 남긴다. 우리는 뭔가를 계획하고 결심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언젠가 한 해가 저물어가면 뿌듯함과 반성이 함께 온다. 겸허하게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시간도 계절도 세월도 흘러간다. 한 해, 두 해 연속으로 이어지는 작금의 한 시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우리의 일상생활로부터 집과 빌딩, 도로와 교통, 에너지, 다양한 탈 것들, 지구 그리고 우주, 심지어 전쟁과 재난 프로그램까지 모든 것들은 지능화되어가고 있다. 21
디스플레이는 반도체보다 예측이 어렵다. 반도체는 집적도가 높아지고 기억 용량이 커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디스플레이는 성능은 물론 활용성, 즉 모양의 변형이나 크기, 가격 경쟁력 등에서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전 기술의 약점을 파고드는 전쟁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 시장을 주도하는 기술이 드러났다. 지금은 OLED의 시대이다. 밝음과 어두움의 높은 비율과 색깔의 표현, 그리고 얇은 두께와 함께 휘거나 접을 수 있는 변형성으로 모바일부터 TV까지 영토를 점하였다. 왕년의 챔피언인 LCD는 아직은 낮은 가격과 박리다매의
지난 탁류세평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했다. 첫 번째 칼럼은 ‘‘소확행’적 역사가에서 ‘거불행’적 역사가로’였다. 내가 정의한 ‘거불행’적 역사학자란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거대 담론과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탐구함으로써 ‘거대하지만 불확실한 행복’을 즐기는 학자를 말한다. 두 번째 칼럼은 ‘‘약소국의 역사학’에서 ‘강소국의 역사학’으로’였다. ‘강소국’의 역사학은 ‘너머(beyond)의 역사학’이고 동시에 새롭고 거대한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역사학이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구체적으로 나의 연구 테제를 제시하련다. ‘대항해 시대
대한민국 국민의 의료 이용 빈도는 입원과 외래 공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연간 외래 방문 횟수는 탁월하게 1등이고 입원을 통한 연간 입원 일수 역시 압도적이진 않지만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거 국민건강보험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1989년 이전까지는 병원과 의원을 방문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진료 비용으로 인해 의료이용의 제약을 크게 경험한 국민이 드물지 않았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보편적으로 도입되었다. 그 당시 제일 우려했던 지점이 경제적 장벽이 줄어들 때
2001년 9·11 테러를 조사한 미국 의회 진상조사 보고서는 정보당국이 기습공격을 저지시킬 수 있는 기회가 10번이나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뉴욕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국방부 건물을 공격하여 3000여 명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던 항공기 자살테러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사전 징후를 정보당국들이 여러 차례 놓쳤다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장국(NSA)은 테러 발생 9개월 전에 항로를 답사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 테러 분자 3명의 통화를 감청하였으나 각 정보기관에 전파하지 않았다. 중앙정보국(CIA)은 6개월 전에 태국으로부터 테
전자 디스플레이의 경연장은 TV(텔레비전) 시장이다. 프리미엄급 TV를 대상으로 하여 크기와 화질, 그리고 가격을 두고 메이커들 간에 치열한 다툼이 펼쳐지고 있으며, TV 시장을 석권하였다는 건 예를 들어 씨름에서는 천하장사를 움켜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즉 시장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 디스플레이의 역사가 100년에 달하고, 수십 종의 다양한 기술들이 전자 디스플레이 분야에 명함을 내밀었어도 지금껏 TV 시장에 제대로 들어선 기술은 브라운관(CRT)과 플라스마 디스플레이(PDP), 액정 디스플레이(LCD) 그리고 유기
아침부터 ‘라떼’ 한 잔 시켜 놓고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태어난 1972년, 대한민국에서 함께 출생한 친구들은 95만 명이었다. 2022년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한 학급의 수는 60명 전후였다. 교실은 늘 북적거렸고 맨 뒤에 앉으면 칠판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키가 크지 않아 대부분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2022년은 20명 전후로 떨어졌다. 1972년 대한민국의 국민총생산(GDP)은 108억 달러로, 사상 처음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대한민국의 GDP는 1985년 10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매년 발간하고 있는 라는 책자를 보면 OECD 회원국들의 건강 수준과 관련된 비교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대부분의 지표에서 평균을 넘어 상위권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일례로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 암으로 인한 사망률 등 신체 건강과 관련된 지표는 거의 우수한 수준이다. 그런데 마음 건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단위 인구당 자살률은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마음 건강과 연관된 다른 지표인 주관적 건강 인식 역시 OECD 평균이 약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프로이센의 장군 클라우제비츠는 1832년 발간된 저서 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의 개입으로 정치적인 교섭을 계속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쟁은 국제정치의 정책 수단이라는 의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차대전 후 성립된 유엔에 의한 국제질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을 공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바그너 그룹의 용병대장 프리고진을 비행기 폭발로 제거하였다. 9월 들어서 “새 친구 두 명을 사귀는 것보다 오랜 친구 한 명이 낫다”며 극동의 독재자 김정은과 전격 손을 잡았
‘디스플레이(display)’의 어원은 라틴어인 ‘displico’ 혹은 ‘displicare’로, 그 의미는 ‘보이다’, ‘펼치다’, ‘진열하다’이다. 흔히 쓰이는 의미는 ‘전시 및 진열’이지만, 전자공학에서 뜻하는 디스플레이는 ‘표시 장치’라는 뜻으로 다양한 정보를 우리 눈으로 전달하는 출력장치, 즉 화면을 의미한다. 물론 화면에 터치 기능까지 더해져 손가락으로 정보를 입력하는 역할까지 하므로 입출력 장치가 더 걸맞은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유비쿼터스한 세상에서 만일 디스플레이가 없다면 불편을 넘어 문명의 존속 자체가 흔
2018년에 한국에서 유행어 1위로 등극한 ‘소확행’이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확행(小確幸)’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약칭으로, 일상에서 실현될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성을 대변했다. 나 역시 코로나 팬데믹의 3년을 경험하면서 ‘소확행’적 삶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소확행’적 삶의 태도가 모든 분야에 긍정적일까? 가령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들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논문이나 담론만 생산한다면 어떨까? 내가 요즈음 느끼는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소확
대한민국 보건정책은 이제 사회정책 분야에서 가장 갈등이 첨예한 분야가 되어 가고 있다. 최근의 간호법 파동, 의사 인력 증원 정책에 따른 갈등, 진료 지원 인력(physician assistant, PA) 문제, 건강보험 수가 및 보험료 인상 문제 등 주요 언론의 중심 갈등 주제에 보건의료 정책분야가 자리 잡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는 매년 조정하는 수가 (정확히는 환산지수) 결정을 2년마다 진행하고 그 과정조차도 매우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보험료를 납부하는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들과 의료서비스를
'타임루프물’은 특정 시간대로 리셋(reset)된 상황을 무한반복 하는 영화, 소설, 만화 등의 장르를 말한다. 루프물의 등장인물들은 스스로 혹은 강제로 되살아나고(revival)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과거를 되돌아보고(review) 이런저런 시도를 통해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다. 등장인물들은 다른 시도를 반복해 점점 ‘더 나은’ 내가 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입력창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이 현재형의 질문들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실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만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 유년 시절의 폭력과 학창 시절의 폭력으로 인해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은 ‘문동은’(송혜교)이 자신을 괴롭힌 반성 없는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치밀하고 처절한 복수극이다. 2022년 12월에 오픈한 과 2023년 3월 가 오픈하면서 드라마가 갖는 화제성은 차치하고 한국 사회의 학교폭력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의 종방 이후 드라마 기간 내내 뜨거웠던 학교폭력 문제의 반향이 현시점에서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실제로 UN에서는 5월 15일을 ‘가정의 날’로 정하고 있는데 같은 날을 한국에서는 ‘스승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승의 은혜’(작사 강소천, 작곡 권길상) 가사에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라고 했으니 스승을 가족으로 보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 스승의 날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9월 21일에 ‘은사(恩師)의 날’이 되었다가 1964년 현재의 ‘스승의 날’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듬해인 1965년부터 5월 15일이 기념일로 고정되는데, 세종대왕의 음력 탄신일을 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