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현상의 본질과 그 역동성을 읽는 두 가지 시각은 안정과 변화라 할 수 있다. 안정은 사회구성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계승해 온 가치와 규범 및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이며, 변화는 기존사회를 개선하기 위하여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진보적 성향이다.

이 두 가치 성향은 역사발전의 격류 속에서 때로는 대립·충돌하여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상호 보완적 상황을 조성하여 사회진보에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안정과 변화라는 이 두 가지 성향에 대한 계층별, 지역별, 직업별 등의 선호성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세대별 차이는 주목해야 할 아주 의미 있는 현상으로 보인다.

예컨대, 변화를 선호하는 1020세대, 안정 속의 변화를 기대하는 3040세대, 보수와 안정을 중시하는 5060세대가 비교적 뚜렷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각 세대간의 가치를 구현하고자하는 행동이 다양한 사회적 통로를 통해 분명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점도 예전과 판이하게 다르다. 무엇보다 사회문화 전반의 변화의 폭과 속도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기대수준에서 세대별로 차이가 크다. 이를 세대간 대립과 갈등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많긴 하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난 사회적 가치 선택의 양상을 보다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은 안정과 보수, 변화와 개혁에 각각 거의 절반의 표를 나누어 던졌다. 그 차이가 50만 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선 결과를 안정과 변화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해석하거나, 수구와 급진론자로 서로 배척해서도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표는 크게 두 진영으로 나누어졌지만, 그 표 속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세대별 가치가 일종의 프리즘과 같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진영에 나누어준 세대별 표를 연결하면 안정과 변화의 연속선이 형성될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원화된 가치를 존중하는 개방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이며, 안정과 변화에 대한 세대별 가치의 조율과 조화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참여정부 출범을 계기로 하여 한국사회는 안정과 변화의 역사적 조율과정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새 정부의 핵심 정치세력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의미의 개혁과 변화의 기치를 내 걸고 새로운 정치발전에 시동을 걸고 있다. 매력 있는 일이며, 세련된 방법으로 꼭 이루어냈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실제 최근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긍정적 기대도 이와 같은 바람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성장, 효율, 발전 등과 같은 획일적인 가치나 사회 안정과 진보를 주장하는 일방적 정치구호로 인한 반목과 대립 그리고 투쟁도 적지 않게 경험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세대와 집단들이 갖는 여러 가치들이 사회적 프리즘을 통해 조율되어 투영될 때 그것은 아름다운 사회적 무지개가 될 수 있지만, 그 프리즘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각 가치들이 갖는 고유한 색깔이 사라지고 하나의 어두운 색깔로 획일화된다는 사실도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다 신중하게 이해하고 조화로운 정책방향 설정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편으로는 파격과 개혁의 이미지를 짙게 풍기는 새 정부의 조각 발표와 그에 따른 후유증을 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처음 맞이하는 3·1절 경축행사가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며, 사회 안정과 변화의 조화가 비현실적인 공허한 논리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정치권력의 핵심에 진입한 사람들은 많은 우리 국민들이 지금 우리 사회가 안정과 변화가 조화롭게 통합되는 성숙한 사회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적 선택에 의한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기대와 우려의 시각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영재(인문대 교직·교육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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