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머무는 시간 0.3초, 시각의 범위 20도. 적정 높이 2층 이하(5m). 15자 이내의 글자와 색채의 결합으로 이미지 홍보전략의 결정체를 완성시키는 것. 바로 간판이다.

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작은 상점에서 크게는 기업의 이미지를 대표해 왔다. 그러나 요즘 들어 간판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간판광고가 발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이념과 마케팅 전략의 수행을 위해 간판광고의 역할이 증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10월 국민은행 전 지점은 새단장에 들어갔다. 광고홍보팀 측은 “합병 전의 ‘보수적인 은행’,‘서민적인 은행’등에서 탈피해 통합은행으로서 세계금융의 별을 꿈꾼다”라고 간판교체의 목적을 밝힌다.

강남역  아트박스는  하루 이용 고객이 천여명에 달하고 실제 구매자수는 40%로 하루 매출액이 5백만원을 넘어서는 대형 팬시점이다. 화려한 색채와 알록달록한 무늬로 만들어진 캐릭터의 팬시 제품에 비해 간판은 노란 테두리 안에 까만 글씨로 된 회사로고가 자리잡고 있다. 아트박스 마케팅 측은 “따로 간판작업을 할 경우 소비자에게 낯설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아트박스 로고를 간판화 했다”고 간판제작의 경위를 설명한다. 이렇게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회사로고를 간판화  한 경우가 많다.
 
효과적 정보전달을 원리에 따라 단순해져

대기업들의 간판은 효율적인 간판 효과 원리에 따라 일반적으로 좀 더 단순해지고 디자인을 과학적으로 고려하는 등 최근 간판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모란디자인 대표 이명희 씨는 최근 간판의 추세에 대해 “점점 디자인 전문가의 좋은 간판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올해부터 옥외 광고사 자격증이 국가 공인화 됐다. 즉, 간판제작자들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의무적으로 일정의 교육을 받아야한다. 결국 간판의 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실사출력간판’은 간판시장 발전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간판에 사진이미지를 응용, 삽입한 것이다. 실사출력은 대형출력기가 많이 보급돼 이를 응용해 제작한 것으로 이는 간판이 그 시대의 기술을 반영해 보여주는 매체임을 증명한다.

‘간판쟁이’가 건 마구잡이식 간판이라는 비난을 가장 많이 받아온 소규모 상점에도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기존의 소규모 상점의 간판은 작은 점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홍보수단으로 대부분 무조건 ‘크게’, ‘튀게’ 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제작돼 왔다. 그러나 이들도 간판마케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낙지대학 떡볶이꽈’라는 유별난 이름의 떡볶이 집이 한 사례다. 차별화 전략으로 이 간판을 채택했고, 맛과 재치 있는 광고의 결합으로 성공을 거뒀다.
 
자발적인 형태 제한 통해 시대의 문화간판 창출

그러나 여전히 디자인 개념이 결여된 간판들이 어지럽게 걸려있는  구습은 여전하다. 그러자 과학적ㆍ문화적 요소를 갖춘 간판을 만들려는 노력이 대두됐다.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작년말부터 지난 1월까지 열렸던 〈간판과 디자인〉전은 흉물이 돼 버린 거리간판을 기능적이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숙명여대 기업정보디자인센터 책임연구원 김영미 씨는 “간판 문화의 실질적인 개선에 필요한 디자인, 색채, 관련 조례와 모범적 간판 모델을 제시하면서 공공 디자인으로서 간판의 역할에 대한 새 모형을 제시하고 싶었다”라고 전시의의를 밝혔다.

한편 크고 작은 미술관련 업소가 2백여 개나 모여 있는 전통문화명소 인사동의 간판은 거리의 특성을 반영한다. 고풍스런 옛날 사진 이미지에 붓글씨나 목판체의 문자들이 속속 등장해 한국적인 거리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인사동 전통 문화를 보호·유지하기 위해 설립된 〈인사 전통문화 보존회〉는 자극성 네온사인 간판, 길거리 입간판을  제한하고 있다. 즉 자발적인 제한을 통해 인사동 문화가 탄생하고 지속되는 것이다.

현재의 간판들이 크고, 많고, 화려해서 하나하나 튈지는 몰라도, 원하는 광고효과를 내지않는다. 재료와 색상및 문자체 등을 고려하고 건물은 물론 건물이 위치한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간판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문화간판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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