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대중추수주의자들이 아닌가 하는 교조주의자들의 비판도 있긴 하지만 한국 상업 대중음악의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롤러코스터, 또는 박혜경 등의 스타일이다. 모던록과 일렉트로니카를 넘나들면서 '멜로디 지상주의'의 음악을 선보이는 그들은 적어도 거대 자본으로 선정적인 가사를 남발하면서 '새로운 음악이다'를 주장하는 주류의 블록버스터들보다는 몇천배 정도 건강한 상업주의를 지니고 있다.

건강한 상업주의의 또 다른 강자가 나타났다. 그들의 이름은 러브홀릭. '사랑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밴드명부터 벌써 팬시상품적인 느낌이다. 두명의 남성 멤버와 한 명의 여성 보컬리스트로 구성된 그들의 음악적인 핵심은 바로 '일기예보'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강현민이다. 솔로 활동으로도 좋은 반응을 보여줬던 강현민은 이번에 러브홀릭을 통해서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CD를 플레이어 걸자마자 들려오는 첫 트랙 <Easy Come, Easy Go>는 롤러코스터가 대중화시킨 한국적 하우스를 러브홀릭만의 색깔로 풀어낸 곡이다. 중간중간 삽입된 복고적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의 효과음이 재미있는 느낌이다. 두 번째 트랙인 타이틀 송이자 밴드송인 <Loveholic>은 그동안 젊은 여성 보컬리스트가 잊고 있었던 곡의 해석력과 장악력이 돋보이는 의외의 트랙이다. 호소력 짙은 서주부분의 창법은 많은 이들이 생각해왔던 '기교와 꾸밈음 우선의 여성 보컬리스트 난립'의 해결이 등장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여성보컬리스트 지선의 드라이하면서도 뛰어난 표현력이 느껴지는 트랙은 바로 세 번째의 <Rainy Day>다. 강현민 특유의 브릿팝적 감성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 특유의 5도권 진행 멜로디라인이 등장하면 대중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음악이었던 '언더그라운드 모던록'과 주류 상업음악의 절충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곡의 클라이막스, 강현민의 보컬 파트가 등장하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ELO가 2000년대엔 이런 음악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강현민의 그간의 행보, 박혜경의 느낌과 사뭇 비슷했던 타이틀 트랙이 있었다면 러브홀릭만의 감성이 돋보이는 곡이야말로 바로 세 번째 트랙의 <Rainy Day>인 것이다. 강현민은 언제나 그랬듯이 카디건즈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4번 트랙 <Dream>에서 그 기타톤으로부터 리듬, 그리고 코러스에 이르는 모든 부분은 카디건즈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 다른 느낌은 <슈퍼스타>에서 선명해진다. 강현민은 색다른 코드웍으로 다소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자신의 멜로디라인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러브홀릭의 음악은 그야말로 '한번에 귀에 꽂히는' 음악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 '생명이 짧다'는 것은 우회한다. 10대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해서 각종 마케팅 수단을 동원해 수준 이하의 음악을 억지로 판매하고 있는 주류 기획들보다 이렇게 '미들필드'에서 좋은 음악으로 승부하는 뮤지션들이 상업적으로 승리해야 한다. 자신의 귀에 솔직해진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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