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18일을 어찌 잊겠는가. 고대인 4000여 명은 이날 부패한 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상아탑을 박차고 나갔다. 이는 4.19 혁명이란 거대한 횃불의 불씨였다.

4.19의 산물인 안암총학은 시대의 부름을 외면하지 않았다. 6.3 항쟁의 도화선이 된 6.2 시위(1964년)로 박정희 군사정권에 맞섰고 △전국학생총연합 창립(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1985년) △건국대 사태(1986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결성(1987년)처럼 굵직한 현대사 현장마다 최전선에 나섰다.

제도적 민주화가 완성된 1990년대에 안암총학은 시대를 바꾸기보다 시대에 따라 변했다. 연세대 사태(1996년)를 계기로 학생들은 운동권의 과격한 투쟁방식에 등을 돌렸다. 고려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2001년 첫 비운동권 총학(35대) 탄생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안암총학은 어떤가. 2001년 이후 총학의 노선은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오가고 있지만 더 이상 시대를 바꾸지도, 시대에 따르지도 못하고 있다.

시대가 아니라 학교 안에서도 영향력이 미미하다. 학생 대부분이 총학에 관심이 없다. 총학생회장선거 투표율 50%를 채우지 못해 연장선거에 들어가고,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는 마당이다.

이런 논의가 나올 때면 화살이 안암총학으로 향한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우리의 무관심이다. 총학생회 뿐만 아니라 소규모 학생회에서 점점 학생이 사라지고 있다. 저마다 현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바빠 학생회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대학생은 기성세대가 보지 못하는 사회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정의를 추구할 책임이 있다. 대학생의 뜻이 모여야 총학생회가 이를 결집시켜 사회에 표출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고대인과 안암총학의 호안(虎眼)과 포효(咆哮)를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

안암총학 설립 50년을 맞아 고대인에게 성찰을 촉구한다. 학생회의 부진이 학생의 부진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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