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지난 3월 26일, 성영신(문과대 심리학과) 교수의 ‘아름다움의 심리사회적 권력’과 이상돈(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법의 정의와 아름다움의 관계’ 발표를 시작으로 3달에 걸쳐 매달 금요일 3시부터 6시까지 아름다움에 대한 학제간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본교 학문소통연구회가주최한 ‘아름다움, 그 의미를 논하다’ 4월과 5월 워크숍 현장을 고대신문이 담았다.

<아름다움, 그 의미를 논하다 : 두 번째 이야기>

문학과 아름다움

제 1발표에선 이남호(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이효석의 <메밀꽃필 무렵>의 아름다움을 표했다. 이 교수는 “로맨스 소설을 쓰는 세계적인 작가 중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다”며 “그런 작가가 사랑의 결핍 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희망을 끊임없이 그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인숙(문과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영화나 드라마엔 완벽한 선남선녀만 등장하는데 문학엔 상대적으로 미완성인 존재가 더 많이 등장한다”며 “그런 인물이 일반적인가”라고 질문했다. 이 교수는 “현대문학엔 현실 속에서 소외되거나 늘 문제를 안고 있는 상실의 존재가 작품의 중심인물로 등장한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이런 주인공이 현실 속 어려움과 갈등을 이겨내고 자신의 존재와 삶과 세계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문학이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김욱(생명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하얀 꽃은 쉽게 잊히지만 어둠 속에선 오직 하얀 꽃만이 달빛을 반사해 화사하게 빛난다”며 “9월의 동쪽하늘은 장마 후 가장 달빛이 좋을 때라 메밀꽃도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라고 말했다.

문학이 연극으로 갈 땐 어떤 모습일까. 류태호(사범대 체육교육과) 교수가 “제자가 <메밀꽃 필 무렵>으로 연극을 한다”며 “문학이 연극으로 변할 때 어떻게 그 아름다움이 나타날 수 있을까”를 묻자 신지영(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연극의 대사기능에서 답을 찾았다. 신 교수는 “<메밀꽃 필 무렵>은 끊어 읽기 단위에 맞춰 쓰인 작품으로 낭독을 하면 귀에 딱딱 들어온다”며 “음율의 아름다움이 들려올 것”이라 답했다.

이에 대해 이남호 교수는 “잘 쓰인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는 리듬이 있다”며 “심지어 강의도 리듬감 있게 해야아름답다”고 덧붙였다.

의학적 아름다움

제 2발표 ‘의학적 아름다움’에서 안덕선(의과대 의학과) 교수가 ‘의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왜 의학적 아름다움 인가’란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안 교수는 “인류의 건강과 번영을 추구하는 의(醫)의 아름다움은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면 생명과학인 의학은 삶, 인생의 미학”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사진으로 생물학적 미인의 기준과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미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언뜻 보면 절대적 미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각의 세계에서 만물은 의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며 “인간은 감각을 분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기에 순수 생물학적 미의 존재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성형수술이 급성장한 원인도 언급됐다. 안 교수는 남과 똑같이 만드는 재건성형에서 남보다 튀게 만드는 미용성형이 활발한 이유가 의료상업화와 미용성형광고의 보편화라고 지적했다.

미용성형의 문제는 임인숙 교수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 토론으로 이어졌다.

미의 추구가 본능이라지만 왜 유독 한국 여성들이 성형에 몰두할까.

임 교수는 “한국사회의 대중영역과 일상영역에선 외모차별이 훨씬 노골적”이라며 2PM의 <10점 만점에 10점>곡의 가사와 ‘쌍꺼풀이 없어서 답답한 눈’ 같은 성형수술 광고방식을 예로 들었다. 임 교수는 “성형 전문의가 진단한 아름다움이 상당한 힘을 행사하면서 불필요한 성형수요가 촉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영신 교수는 소비자의 입장을 지적했다. 성 교수는 “성형수술이 의학인지, 서비스 상품인지 소비자들의 사고는 중간쯤”이라며 “성형산업과 성형의술 입장에서만 보면 소비자의 입장과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성형의 기술이 의학이라는 게 문제”라며 “미용에 의학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답했다.

성형수술이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 제기됐다. 박종훈(의과대학 의학과) 교수는 “평생 수절한 여자의 삶을 열녀문을 세워 기리며 아름답다고 했는데 이런 가치는 모든 아름다움을 평준화시킨 탓”이라며 “이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문제로 성형 또한 개인 선택의 가치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아름다움, 극장에서 살내음을 맡다>

영화와 아름다움

제 1발표에서 허철(미디어학부) 교수가 영화를 통한 아름다움의 사회 문화성을 논했다. 허 교수는 “영화란 사운드나 장면이 아닌 영화가 끝난 후 머리 속에 남은 느낌으로 감상하는 매체”라며 “영화의 화면구성은 텍스트가 탄생하는 과정부터 관객과 주고받을 영향까지 서로 교묘하게 얽혀 있어 문화정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영화의 사운드와 촬영 기법은 젠더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허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조명 차이가 나타나는 장면을 보여줬다. 영상물 속 여성의 조명은 얼굴을 부드럽게 만드는 반면 남성의 조명은 근육을 강조하고 굵직한 얼굴선, 심지어 땀구멍까지 드러낸다. 남녀의 비명소리도 영화 속에서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허 교수는 “계획된 사운드와 조명은 성의 선입견을 형성해 관객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박경신(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모 판단기준도 미디어의 영향력을 받는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남자 영화배우 100명과 일반 남성 100명의 얼굴을 각각 합성한 사진을 보여주고 호감도를 실험한 결과, 두 집단의 호감도와 평균 점수를 받은 얼굴이 비슷했다는 내용의 사례를 들려줬다. 박 교수는 “미디어의 영향을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미적 판단 기준이 형성돼 영화배우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의식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패널 토론 시간에 박 교수는 전문 분야인 ‘저작권과 아름다움’을 발제했다. 저작권이 보호되는 저작물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일부 제한적으로 이용하는 공정이용(fair use)의 범위가 최근 화두다. 박 교수는 “개인의 능력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배경에서 예술의 아름다움이 탄생한다면 예술가가 점유한 예술품의 저작권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장르영화의 아름다움도 다뤄졌다. 이상우(문과대 국문학과) 교수는 “영화 감상 전의 기대와 감상 후 느낌 모두 아름다움의 일부”라며 “의도적인 기획단계, 관객의 소비취향과 욕망이 뒤엉켜 장르영화만이 갖는 대중영화의 아름다움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아름다움이 담긴 텍스트도 즐거움과 슬픔 같은 다양한 감정을 충족시켜주는 장르영화의 미학엔 동의하지만 자본의 영향이 영화의 다양성을 차단하는 점이 문제”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면 받는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축, 그 살내음의 미학

김현섭(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의 아름다움은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고전미부터 현대 건축물의 기계미까지 다양하다”며 “지향해야 할 건축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라고 화두를 던졌다.

질문은 현대건축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아름다움 논의 이전에 현대 건축은 우리 삶의 실제 모습을 담아내지 않고 있다”며 “건축가만이 아닌 사용자도 공유하는 미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일(조형학부) 교수는 간판 사업을 예시로 공공성과 미학의 관계에 대한 김 교수의 견해를 물었다. 이 교수는 “간판 사업으로 거리가 정돈됐지만 사용자의 참여 없이 일부 디자이너가 규정한 디자인이 긍정적인가”라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 거리는 개개인이 디자인 영역을 일부 디자이너가 독점하고, 건물엔 건물면(facade) 대신에 자본의 아우성만 가득한 간판뿐”이라며 “건축 문제가 건축이 아닌 사회 문제로 야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간과 건축의 상관성도 논제로 다뤄졌다. 정수연(문과대 심리08) 씨는 “음악이나 회화 같은 예술품은 세상에 나온 뒤 사람들의 평가만 바뀔 뿐 예술품 자체가 변하지 않지만 건축은 사용되며 변한다”며 건축의 제한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물었다. 김 교수는 “시간의 흐름으로 발생한 마모조차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시간의 흔적이 제3의 미학으로서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다”고 답했다.

3회에 걸쳐 진행된 세미나의 마지막 결론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존재하는가’의 물음으로 귀결됐다.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오는 2학기에도 학제간 고민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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