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조직과 '네 가지 축'이 필요하다

직원 역량에 맞는 역할을 맡겨야

 고려대 행정 분야 현주소
대학 발전을 논할 때 행정 분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행정조직이기 때문이다.

대학 행정은 학생업무와 교수관리, 그리고 일반 행정으로 나눌 수 있다. 대학의 최종 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에서 총장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이를 부총장 이하 행정부서장과 직원이 행사한다.

염 교수는 우선 고려대 행정 분야를 호평했다. “본교 행정은 국내외 대학의 일반적 행정과 비슷하며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학생지원이 굉장히 우수한 편입니다. 지방대학 일부는 행정 직원이 학생이나 교수에게 권위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죠”

반면 본교 직원이 행정 혁신을 선도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기업과 전통적인 행정조직의 관리분야 업무 성격이 바뀌었다. 단순 관리업무는 컴퓨터가 처리하고 고급인력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획이나 조정을 맡는 추세다. 이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 단순히 맡은 업무를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무엇이 대학조직에 중요한 문제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른 학교에 없는 아이디어로 학사 행정을 선도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역할은 못하고 있죠”

직원 역량에 맞는 역할을 맡겨야
그는 2003년 기획예산처장 시절 행정전문인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직원이 전담 분야에서 석박사과정까지 공부해 전문성을 갖추게 하는 제도다. 현재 이 제도는 개인적 역량보다 직원 전체의 역량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직원이 전문성을 갖춰도 단순 업무만을 처리하면 문제입니다. 전문성에 적합한 일을 맡길 수 있는 전문적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직원은 대기업 수준 인재입니다. 채용 경쟁률이 200대 1에 육박하죠. 실제로 일류 대기업에서 이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이 역량과 수준에 맞는 일을 맡아 잠재력을 발휘한다면 학교가 그만큼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시스템 변화는 처장 이상급 행정가가 이끌어야 한다. 염 교수는 리더의 고민과 리더십을 강조했다. “행정가는 안주하면 안 됩니다. 끊임없이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새로운 제도를 기획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강신청 때마다 학생 불만이 쏟아지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를 기획해야 합니다. 바로 문제해결이 안 되면 소규모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라도 빠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보직교수와 전문성을 가진 행정직원의 역량에 달렸습니다”

행정을 최일선에서 이끄는 처장을 직원이 아닌 교수가 맡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고려중앙학원 정관에는 직원이 처장을 맡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실제 이런 사례는 없다. 직원 사회는 '직원 처장'을 원하고 있다. 염 교수는 직원 처장이 필요하지만 아직 때가 이르다고 말했다. “행정 전문가인 직원이 처장을 맡으면 분명 교수보다 나은 점이 있어요. 하지만 세계 대학과 경쟁할 만한 의사결정능력과 비전창출력이 아직 부족합니다. 당분간은 해외 경험이 많은 교수가 맡고 직원의 전문성이 확보되면 외국대학처럼 직원이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돈 공간 문제 해결안

 

 정부의 대학 지원
정부의 대학 지원 문제로 시야를 확장시켰다. 한국 사립대의 공통 불만이 정부의 규제는 많고, 지원은 적다는 점이다. 이 또한 사실 행정 문제다. “정부가 규제하는 이유를 이해는 합니다. 고려대처럼 알아서 잘하는 대학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학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반적으로 대학 지원 부족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1년 교육예산이 43조인데 초중고교에 40조를 쓰고, 대학에 3조를 줍니다. 국립대 지원금과 ‘BK21’ 같은 사업 운영금이 모두 3조에 포함되죠. 우리나라처럼 학생 숫자까지 규제하면서 지원은 안 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고려대 행정 분야 개선안
지식경제부 국가R&D전략기획단원으로 과학기술정책과 미래전략을 연구 중인 그는 본교 행정분야 발전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우선 행정 조직을 참모조직과 계선조직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정책을 만드는 조직이다. 후자는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조직이다. 현재 본교 기획처나 재무부처럼 본부에서 일하는 조직은 참모조직, 학사지원부는 계선조직에 가깝다. “앞으로 계선 업무는 직원뿐 아니라 근로장학생이나 파트타임이 보조하게 하고 참모조직을 키워야 합니다. 주로 본관에 있는 ‘참모부서’는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이 많고 힘들기 때문이죠. 이는 승진과 연봉 인센티브로 보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시간이 지나면 직급이 오르고 급여가 오르는 단순 호봉 시스템은 부족한 점이 있죠”

행정전문인제도를 발전시킬 방안도 언급했다. “석박사과정 공부만 장려하는 게 아닙니다. 고려대가 전국 200여개 대학의 행정 시스템에 대한 혁신적 모델을 만들어서 사회교육원 등에 대학행정 전문과정을 개설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경험과 학식이 쌓인 전문 행정직원이 강의를 맡을 수 있겠죠. 경험이 쌓인 석박사급 행정직원이 은퇴 후 이런 강의를 맡으면 다른 대학에도 혁신적인 행정 시스템이 파급돼 효율성이 오르지 않겠습니까. 국제하계대학과 같이 교육사업의 일환으로서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 공간 문제 해결안
오늘날 대학의 현안은 돈과 공간이다. 돈과 공간 확보에도 행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염 교수는 현재와 같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기업의 기부를 독려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기업의 투자욕구를 자극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기부금 받는 패러다임이 변해야 합니다. 지금 방식은 소극적이에요. 기업도 점점 주주 중심의 의사결정구조로 발전하기 때문에 오너가 함부로 기부하기도 어렵습니다. 기업이 필요한 기술, 인재, 가치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이 투자할 만하다고 여길 정도로요”

또한 교육사업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4년 국제하계대학을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국내 외국인 대상 여름학기에는 연세대가 약 400명 정도 참가했고 본교에는 35명 정도가 왔다. 염 교수는 국내 최초로 미국 등 유수대학 교수를 초빙하고 전세계 대학생을 유치하는 국제하계대학을 출범시켰다. 2004년 270명 가량이 참석했고, 작년에는 1570명이 왔다. 작년 수입만 18억 정도다. “대학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가 교육입니다.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교육대학원에서 대학행정 관련 대학원프로그램 같은 걸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공간문제에선 ‘개별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단과대가 각자 전용 공간을 차지하고 전용 건물을 짓다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는 여러 단과대와 교수·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할 대형 공간을 짓고 이를 유지하는 행정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공계 분야 공간문제 해결이 절실합니다. 대규모 공동연구 공간을 주어야 합니다. 일부 공간을 연구 실적이 뛰어난 교수에게 할당하는 제도를 보완한다면 연구도 장려할 수 있습니다” 

고려대 4가지 축으로 발전해야

 고려대 4가지 축으로 발전해야
최근 단과대별 행정 독립 추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염 교수는 본부중심 행정을 단과대별로 분리하는 것에 공감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단과대별 독립채산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다. 본교는 세종캠퍼스, 의과대, 간호대, 보과대를 독립채산제로 운영하고 있다.

단과대 간 뷸균형 성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이 때 전체 대학 시스템이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저는 단과대를 크게 네 가지 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첨단공학과 의생명 분야 두 축이 앞에서 이끌고 그 뒤를 법·경영·사회과학 축이 받칩니다. 나머지 축은 순수 자연과학과 인문학입니다. 앞에 있는 세 축은 개별 단과대와 전문대학원이 최대한 자율적으로 발전하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마지막 축은 이익 창출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대학의 주춧돌입니다. 본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 시간이 짧아 염재호 교수의 추후 목표를 묻지 못했다. 대신 나중에 이메일로 받은 그의 좌우명을 소개한다.
“큰 뜻을 품고 작은 일에 충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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