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결속' '현실적 목표' '2C형 인재'

 

 

세계경영대학협의회(AACSB) 재인증, 교육과학기술부 BK21사업 MBA 평가 4년 연속 1위, 세계 1000개 경영대학장 평가 국내 1위, 한국최초 유럽경영학인증(EQUIS) 획득…. 경영대가 거침없이 발전하고 있다. 지칠 줄도 모른다. 올 상반기 착공 예정인 신경영관(G50관)을 내년 말까지 완공하고, 2015년 아시아 1위·세계 50대 경영대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엘지포스코관과 신경영관
장하성 학장은 경영대가 발전한 계기를 엘지포스코관, 경영대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신경영관(G50관)으로 설명했다. 그는 엘포관과 신경영관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경영대의 비전이 담긴 공간이라고 말했다. “우선 엘포관은 경영대 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단순히 공부하고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최적화된 첨단 공간을 만들어 이용자가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새로운 대학 공간 패러다임을 제시한 셈이죠”

신경영관은 경영대가 제시하는 또 다른 대학 건물 모델이다. 강의실 몇 개, 휴게실 몇 개 더 짓자는 개념에서 탈피해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강의실, 사무실이 전혀 없는 학생 공간으로 할애했다. “가운데가 다 뚫려서 보이기 때문에 소통이 쉽습니다. 신경영관은 학생들이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통하며 리더로 성장하는 전초기지입니다”

신경영관에 쏟아지는 모금 행렬에도 비결이 있었다. 그는 기부하는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고려대 교우라고 기부하지 않습니다.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결과를 보고 그게 자신과 맞을 때 기부를 고민하게 되죠. 그 후엔 대학의 끈질긴 설득이 필요합니다. 기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보여줘서 동참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액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장하성 학장은 천원을 기부한 사람에게도 감사 메일을 보낸다. 지금까지 이렇게 보낸 메일만 천 통이 넘는다. 또한 기부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으며 일정액 이상 기부자에게 특별히 제작한 기념품을 준다. “기부하기 전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어요. 돈의 크기가 고민의 크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다 존중해야 합니다. 기부금에 상관없이 기부자 이름을 신경영관에 새기는 것도 같은 이유죠”

한국은 좁다
현재 경영대의 객관적 역량은 어떤 지표를 대더라도 아시아 5, 6위 정도다. 연구업적은 세계 100위권이다. 장하성 학장에게 2015년 아시아 1위, 세계 50대 경영대가 가능한지 물었다.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 아시아 1위는 홍콩과학기술대며 세계 30~50위를 오간다. “우리가 홍콩과기대나 싱가폴국립대 경영대에 밀리는 부분이 교수 숫자와 국제화 분야입니다. 이 두 부분은 개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절대 우리를 못 따라오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똑똑한 학생들입니다. 거기다 우린 산업기반이 탄탄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국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요. 충분히 치고나갈 수 있습니다”

그는 ‘몇 위’보다 ‘몇 위권’인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50대 경영대가 되겠다고 한 뒤 70, 80위까지 올라간다고 실패한 걸까요? 미국에 주립대만 몇 개입니까. 50~80위권을 오갈 수 있다면 이미 목표를 달성한 겁니다. 서울대 경영대의 목표가 세계 10위라는데 그건 사실 안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 이야기가 나온 김에 광고 이야기를 꺼냈다. 장하성 학장은 “선배, 정말 고려대 경영대가 서울대보다 하나 빼고 다 좋아요?”라는 파격적 광고로 연세대까지 ‘열 받게’ 만든 장본인이다. “대학에서 굳이 서열을 매긴다면 입학하기 전보다 졸업한 후를 따져야 합니다. 물론 입학 전 점수로도 우리가 밀리지 않아요. 얼마 차이도 안 나는 입학생 점수로 이 좁은 땅에서 1, 2위를 다투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서 광고를 냈어요. 이제 세계에서 경쟁하자는 겁니다. 우린 분명히 자신이 있고요”

 

 

무엇이 경영대를 발전시켰나
경영대가 단기간 급성장한 원동력은 뭘까. 장하성 학장은 장기적 비전 설정과 구성원간 합심을 꼽았다. 경영대는 1990년 이후에 여러 차례 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외부 컨설팅도 받았다. 또 끊임없이 배우고 받아들여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신경영관 설계 전에 교수와 건축전문가를 파견해 미국과 유럽 경영대를 11일간 탐방했다. 경영대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던 한 건축팀은 도중에 교체됐다. 이런 노력은 서서히 나타났고, 엘포관 건립을 기점으로 경영대는 확실하게 선도대학 이미지를 굳혔다.

그는 또한 교수진이 경영대 발전이란 공동 목표에 공감하기 때문에 혁신에 반대하는 내부 세력이 없다고 했다. 서울대 경영대는 양당제, 연세대 경영대는 다당제, 고려대 경영대는 일당독재제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른 대학 사정은 몰라도 일당독재는 장하성 학장의 3연임을 일컫는 말이다. “원하진 않았지만 세 번째 연임했습니다. 저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텐데 세 번이나 학장을 하니 얼마나 학장이 보기 싫겠습니까. 재임 때는 추진하던 사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안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재임이 끝나고 학장실 짐까지 다 뺐었죠. 이번 연임을 신경영관 건립을 완수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총장께서 임명한 뒤 교수들이 동의해야 학장이 되니 일당독재라고 할 수 없지요(웃음)”

대학이 발전하려면
장하성 학장은 고대 밖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학장이 되면서 참여연대 활동을 그만뒀고, 기고나 국제기구 활동도 포기했다. 경영대학장직을 수락하면서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외부활동을 그만뒀다기보다 학장 일에 충실하다보니 시간이 없어요. 이 일이 끝나면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고려대 발전을 위한 경영학적 조언을 구했을 때도 경영대학장으로서 다른 곳 일을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신 장하성 학장은 한국 대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비판에 대해 길게 언급했다. “인풋(Input)이 있어야 아웃풋(Output)도 있는 법인데 우리나라는 아웃풋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투자는 안하고 왜 교육 결과가 없냐고 묻는 꼴이죠.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인의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 대학은 등록금 외에 재정 출처가 많아요. 수백억원씩 기부하는 사람이 있고 정부 지원도 풍부하죠. 우린 등록금 아니면 ‘떡볶이 할머니’ 같은 분처럼 마음이 따뜻하신 분의 기부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나마 고려대는 나은 편이죠. 뼛속까지 ‘붉은’ 사람들이 학교 발전하라고 돕는 편이니까요”

그는 대학 내에서는 단과대별 개별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영대와 문과대를 평가하는 방식이나 발전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경영학은 그야말로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초를 다투며 진화하지만, 문과대 쪽 인문학은 굉장히 신중하게 변합니다. 같은 궤도로 가면 안 되죠. 기초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에요. 자연의 진리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이런 분야에서 논문 숫자만 요구하는 건 무리죠”

장하성 학장은 대학과 대학에서 클 인재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고대생에게 ‘2C’를 강조했다. 대학생이 비판(Critical)하고 창조(Creative)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힘들게 최근 경영대를 떠난 한 여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대학이 경쟁을 강요하는 현실을 어느 정도 수긍했다. 그녀의 어마어마한 고민과 비판정신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고민의 깊이에 비해 창조한 ‘대안’이 아쉬웠다고 했다. 그는 교수가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지식(knowledge)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끼리 비판하고 창조하면서 성장해야 하며 이 때 2C가 C²이 된다고 덧붙였다.

 

 

인간 장하성
그가 또 한 번 연임하지 않는다면 임기가 2011년 7월에 끝난다. 임기 후의 목표는 다시 ‘학자’다. 그는 인터뷰 도중 종종 학장직을 오래 맡으면서 행정만 하다보니 자신이 ‘깡통’이 됐다고 푸념했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과연 자본의 가치와 역할이 무엇인지 연구하려고 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은 자본이 정직해야 세상도 바르게 변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나온 논의들은 국지적이고 소규모 공동체에서만 성립되는 한계가 있었어요. 국가나 대규모 공동체는 자본주의로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릴 수 없다면 자본의 가치를 생각하고 고민해서 올바르게 고쳐야죠”

사촌인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장하석(런던대) 교수에 대한 질문도 던졌다. 고려대에서 두 분을 볼 여지가 있냐고 묻자 장하성 학장은 고개를 저었다. “하준이는 방문교수로 잠시 왔던 적도 있습니다. 하준이가 연구하는 분야는 개발도상국의 서러움을 대변하는 거시적인 개발경제학이라 우리나라 상황에 맞지 않아요. ‘사다리를 이미 걷어차’는 입장이죠. 하석이가 공부하는 과학철학 분야는 아예 국내에서는 연구할 여건조차도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고대에서 연구하고 강의를 해보라고 권하고는 싶은데 쉽지 않겠죠. 물론 둘 다 한국에 올 생각만 있다면 당연히 고려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른 대학에 빼앗겨선 안 되죠”

그는 인터뷰 제의를 한 차례 거절했다. 누구보다 ‘빨간’ 고대인인 그가 고려대 발전안을 묻는 자리를 마다했던 까닭을 물었다. 최근 교직원 사이의 ‘이슈’ 때문이란다. 비록 그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경영대 발전 전략과 비전은 고려대 전체가 지향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집무실에는 경영대 일을 맡으며 만든 좌우명 ‘추로첨류(墜露添流)’가 걸려 있다. 이슬 한 방울을 강물에 떨어뜨린다고 무슨 변화가 있으랴마는 작은 물방울이 없으면 강물도 없는 법. 경영대 발전으로 검증된 장하성 학장의 관조와 의지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